일상적 글쓰기의 시작
브런치에 글을 쓸 수 있다는 메일을 받고 다음 글을 게재할 때까지 2주가 걸렸다. 어떤 글을 써야 할지 생각만 무성했다. 일주일이 지나고 도저히 안 되겠다 싶어 아침부터 책상에 앉아 컴퓨터를 켜놓고 백지와 면담을 시작했다. 한 문장을 쓰고 지우고 다시 쓰기를 반복하며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정확히 하기 위해 여러 번 수정을 하고 나서야 지난 글을 완성할 수 있었다.
나는 글솜씨가 좋아 빠르게 자판을 두드리며 후다닥 쓸 수 있는 그런 사람이 아니다. 브런치에 글쓰기를 시작해보겠다고 마음은 먹었지만 그렇다고 글이 바로 써지는 것이 아니었다. 며칠을 머릿속으로 아무리 고민해 봤자 소용이 없었다. 차라리 아침부터 책상 앞에 앉아 있었더니 글의 틀이 잡히면서 하고 싶은 말이 나왔다. 결국 브런치에 꾸준히 글을 쓰기 위해서는 하루 중 일정 시간을 할애할 방법을 찾아야 했다. 규칙적으로 의자에 엉덩이를 붙이고 앉아 있어야 한다. 백지의 화면 앞에서 단어와 단어 사이를 헤매는 과정을 거쳐야만 글이 나올 거라는 결론에 이르렀기에.
한국에서 직장에 다닐 때처럼 우리 집 서재로 9시까지 출근하기로 했다. 직장을 다녔을 때와 휴직한 지금, 한국에 살 때와 해외에서 사는 지금을 각각 비교해보면 상황과 조건은 바뀌었지만 일상을 대하는 나의 태도는 그리 변한 게 없었다. 한국에서 직장맘으로 살 때는 시간에 쫓기면서 많은 사람과 업무에 시달려 하루가 피곤했다. 휴직을 하고 해외에서 생활하고 있는 지금은 만날 사람이 없고 집안일로만 채워진 일상이 심심했다.
“인간의 불행의 유일한 원인은 자신의 방에 고요히 머무는 방법을 모른다는 것이다.”
<파스칼의 『팡세』 단장 136>
남편과 아이를 먹이고 입혀서 회사로 학교로 보내면 대략 9시. 제대로 씻고 입고 나의 작업 공간에 들어가 내 일을 해보기로 했다. 지금 내 상황에선 집에서 하루를 완성해나가는 방법이 최선이다. 생활에 밀도를 높이기 위해서 시간을 정해서 일부러 나를 예속시킨다. 글도 일정한 규칙과 습관의 산물이다. 회사 다닐 때처럼 생활해야 글이 나올 것이라는 생각이 자연스럽게 든다. 전에는 너무 많아서 어떻게 덜어 낼까 가 문제였다면 지금은 너무 궁해서 어떻게 채워나가야 할까 가 고민이다. 무료함도 과로만큼이나 부정적인 감정이라니. 이렇게 일상을 구멍 난 느낌으로 살 바에야 규칙적으로 책을 읽고 글을 쓰며 집중해서 살고 싶다.
나는 스스로 서재로 출근 명령을 내렸다.
그렇다면 나는 앞으로 어떤 글을 쓸 수 있을까? 일단 내가 살고 있는 터키에 대해 써보고 싶었다. 동로마제국에서부터 오스만 제국에 이르기까지 천오백 년 이상 제국의 영광을 누린 이 땅은 역사, 예술, 철학, 종교부문에 공부 거리가 무궁무진하다. 터키뿐만 아니라 주변 국가로 여행을 떠나 언어와 문화에 관한 체험을 확장해볼 수도 있다. 이스탄불 아타튀르크 국제공항은 유럽과 중동의 허브 공항이다. 어지간한 유럽과 중동 국가는 2~3시간이면 도착하기 때문에 한국보다 저렴한 비용으로 여행을 할 수 있다. 내가 경험을 기획하고 실행한 만큼은 글로 풀어낼 수 있을 것이다. 글로 써야겠다는 마음을 먹으니 내가 살고 있는 이스탄불의 지정학적 위치도 새롭게 보인다.
느슨했던 하루가 촘촘해지며 리듬이 생겨나길......
글을 쓰면 내 일상을 면밀하게 드려다 볼 수 있지만 사실 이 작업은 지난하고 버겁다. 살면서 생기는 갖가지 생각을 쳐내고 중심생각을 고르고 맥락에 맞게 언어로 치환해야 한다. 그래도 한국에서는 글 쓰는 공간에서 만난 친구와 선생님이 있어 괜찮았다. 아무도 없는 이스탄불에서 나 혼자 글을 쓰고 있는 지금이 더 안쓰러운 상황임은 분명하다. 혼자만의 의지로 무엇인가를 해보겠다고 하는 것은 작심삼일로 끝날 공산이 크다는 것을 이미 나는 알고 있기 때문이다.
다행히 지난 글 <팔자 좋은(?) 주재원 아내의 실상>을 쓰고 나에게도 구독자님이 생겼다. 누군가 내 글을 보고 나눈다 생각하니 나 혼자 글을 쓰는 게 아니라는 생각에 고마웠다. 아무도 읽어 줄 사람이 없다면 그 글은 혼자만의 메아리일뿐이다. 이런 글은 계속해서 쓸 수 있는 힘을 얻지 못한다. 머릿속 내 생각을 내 손으로 쓰는 글이지만 글은 시작할 때부터 읽는 사람을 고려해서 쓴다. 구독, 댓글, 라이킷을 보내주신 분들을 보면서 브런치는 나만의 공간이 아니라 함께 하는 공간이라는 생각에 힘이 난다. 서재 출근은 누군가와 내 삶을 글로 공유하겠다는 나의 다짐이다. 내 글에 공감하든 반론을 제기하든 글을 쓰는 사람이라면 읽는 사람과 생각을 나누겠다는 마음으로 글을 써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