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런치북 감정 정리 01화

팔자 좋은(?) 주재원 아내의 실상

나는 여기서 무엇을 해야할까

by 하루

이스탄불 주재원의 아내로 사는 나의 일상은 그리 낭만적이지 않다. 먹고사는 이야기부터 해보자. 집에서 먹는 대부분의 음식은 내가 만드는데 일단 식재료 공수부터 난관이다. 터키는 세속주의 이슬람 국가다. 식료품 수입 시 GMO 수치 0을 요구하고 있기 때문에 통관이 매우 까다롭다. 요즘은 어느 나라를 가든 흔하게 찾을 수 있는 '한인 마트' 자체도 귀하지만 가 봐도 구할 수 있는 것이 거의 없다. 김치와 두부를 전문적으로 취급하는 **플라자와 워낙 구비된 상품이 없어서 한국인에게도 별 인기가 없는 **마트뿐이다.


누린내가 덜한 소고기와 신선한 야채는 글로벌 마트 체인인 메트로에서 구하고 돼지고기는 탁심에 있는 비무슬림을 위한 정육점까지 가야 살 수 있다. 해산물도 따로 구해야 한다. 터키인은 게를 잘 먹지 않아 파는 곳이 드물다. 꽃게 한 번 먹겠다고 고기잡이배 선장에게 지인이 따로 부탁을 해서 흑해에서부터 공수해 온 적도 있다. 한 번에 몇 키로 씩 구입해서 냉동했다가 꺼내 먹는다. 지인들이 이스탄불에 방문할 때마다 아름아름 가져다주는 김, 들기름, 스팸, 냉동만두, 라면, 어묵 등...... 이런 것들이 우리 가족을 기쁘게 하는 양식이다.


이렇게 한국과 다른 상황 때문에, 한국을 떠나오기 전에 가졌던 우아한 해외생활의 환상은 이미 깨진 지 오래다. 한국에서 너무나 쉽고 편하게만 해결해 오던 일들이 여기서는 일일이 내손을 거쳐야 하는 수고스러운 일이 되어 버렸다. 금요일 저녁에 주문하면 토요일 아침으로 맛집 브런치를 먹게 해 주던 마켓컬리의 특급배송 서비스도, 아파트 앞 상가만 나가도 입맛대로 골라잡게 해 주던 반찬가게도, 엄마와 시어머니표로 넘쳐나던 밑반찬과 김치도 모두 사라졌다. 어떤 누구의 도움 없이 오직 내 힘만으로 우리 가족의 밥상을 책임져야 하는 일은 나에게 처음이었다. 이스탄불 생활의 시작과 함께 부모님의 도움과 소비에 의지해 온 나의 식생활 방식이 막을 내린 것이다. 하루아침에 나는 그동안 누려왔던 서비스들과 결별하고 스스로 밥을 해결해야 하는 삶에 놓였다.


요즘 들어 매일 요리를 할 수밖에 없는 나를 보면서 남편은 내심 좋아하는 것 같다. 맞벌이를 하면서도 거의 대부분의 집안일을 내가 컨트롤하며 살았던 까닭에 남편은 나에게 전폭적으로 맞춰주며 살았었다. 그러던 그가. 요즘은 꽤 큰소리도 치고 의기양양하다. 자기 혼자 벌어 온 식구를 먹여 살리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비롯된 태도로 보인다. 배달치킨이 없으니 집에서 손수 튀긴 닭강정을 먹는 아들은

" 엄마가 웬일이야? "

" 음~ 맛있다! " 속도 없이 부쩍 이런 말을 자주 한다.


내가 손을 놓고 있으면 집에 먹을 것이 없으니 일삼아 밥할 궁리를 하게 된다. 살림 일자무식인 나도, 블로그와 유튜브의 정보를 총동원해서 김치를 담그고, 단무지도 만들고, 숙주도 키우고, 말린 대추를 꿀에 절여 차로 만들며 5개월을 지냈다. 누군가는 사 먹으면 안 되냐고 반문하겠지만, 하물며 해외여행을 가도 고추장을 싸 가는 게 한국 사람이다. 잘 구워진 양갈비를 먹을 때도, 고소하고 기름진 터키 케밥을 먹을 때도, 먹을수록 '김치' 생각만 간절해지는 마음을 터키에 사는 한국 사람이라면 누구나 공감할 것이다.


상황이 이러한 것을 깨닫자, 그럼 나는? '이렇게 밥만 하다 한국으로 돌아가야 하나?' 덜컥 겁이 났다. 내 직장은 휴직을 하고 선택한 이스탄불행이다. 남편의 해외근무 경력과 아이의 영어교육 다 좋지만 나는 여기서 밥만 하면서 세월을 다 보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이 들었다. 5개월간 집에서 마늘을 까고 파를 다듬으며 생전 처음으로 해물탕도 끓이고 닭강정도 해봤다. '나는 밥 말고 여기서 무엇을 할 수 있을까?' 다시 말해 '여기서 나는 어떻게 살 것인가?'를 자연스레 묻게 되었다. 오늘따라 이 물음에 대한 해결책이 밥보다 더 시급한 문제로 다가온다. 다행스러운 점은 내가 작금의 사태를 나름 소상히 쓰고 있다는 사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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