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스탄불에서 마흔
에르메스는 셀러가 고객을 선택한다고?
사고 싶은 사람은 많은데 물건은 드물고 귀하기 때문이라고?
이 기묘한 역전 현상에 사람들은 오히려 열광한다.
프랑스 파리를 갔을 때다. 동양인이라면 하나씩 어깨에 메고 다니는 주황색 쇼핑백이 있으니, 바로 루이비통이다. 명품에 별 관심 없이 살던 나였지만, 비슷한 외모를 가진 아시안은 하나씩 사서 들고 다니는 명품 쇼핑백을 보게 되자, 나도 같은 무리에 합류하고 싶다는 사회적 인간의 본능이 꿈틀댔다. 결국 나도 보통의 아시안처럼
명품 쇼핑백을 하나 둘러매고 이스탄불로 돌아온 것이 개미지옥의 시작이었다. 이스탄불에 살게 되면서 유럽을 내 집 앞처럼 드나들 수 있게 되자 나타난 부작용이라면 부작용이다. 유럽에선 한국보다 가격이 저렴한 데다가 구할 수 없는 제품이 많기 때문에 형편만 된다면 안 살 이유가 없었다는 건 내 핑계였다.
유럽 여행을 갈 때마다 뻔질나게 명품을 사 나르던 어느 날, 나는 또 다른 주황색 쇼핑백에 시선이 꽂혔다. 내 눈을 사로잡은 H 로고, 명품 중에 명품이라는 에르메스였다. 에르메스 쇼핑백은 오렌지빛이 많이 도는 주황색이라 눈에 확 띈다. 쇼핑백 한가운데 로고 플레이를 하는데, 원 모양을 상단과 하단을 나눠서 상단에는 에르메스의 시작이 마구 용품이었음을 암시하는 그림을, 하단에는 에르메스의 로고인 H를, 브라운톤으로 새겨 넣었다. 오렌지색 바탕에 브라운톤의 심벌 프린트가 어우러진 로고 플레이는 '에르메스가 얼마나 세련된 조합을 추구하는가'를 시각적으로 잘 보여준다.
유튜브에서 에르메스 언박싱 영상을 보면, 에르메스를 상징하는 로고와 말 그림이 그려진 주황색의 박스를 보는 것만으로도 사람들은 그 순간 황홀경에 빠진다.
처음에 나는 "저게 머라고 저리 호들갑이야? 그냥 가방 산거잖아. 근데, 다들 왜 저렇게 난리야?" 했었다.
그러다 드는 생각이, '사람들이 바보인가?' 인간들이 저렇게 열광하는 데는 뭔가 합당한 이유가 있겠지! 하며
명품백을 탐닉하는 사람의 욕망을 그저 물욕으로 단순화시키려는 나의 태도를 제고해 보기로 했다.
뭐가 다를까? 사람을 저렇게 황홀경(ecstasy)의 상태로 몰아넣는 이유는 무엇일까?
호기심에 발동이 걸렸고, 그다음엔 나도 저걸 사면 저런 엑스터시의 상태가 될까 궁금해졌다. 그리곤 핸드폰으로 가방 가격을 검색해 봤다.
"아니. 이게 가방 가격이야 자동차 가격이지. " "미쳤네, 미쳤어."
에르메스를 대표하는 가방인 켈리백이나 버킨백은 경차 한 대는 살 수 있는 가격이었고 그 외의 가방도 H로고만 박혔다 하면 수백 만원은 우스운 수준이었다.
"근데, 이걸 돈이 있어도 못 산다고? 사고 싶은 사람은 넘치는데 가방이 너무 귀하다고?"
에르메스 장인 학교를 수료한 가죽 장인만이 수작업으로 만들기 때문에 가방 생산량을 늘릴 수가 없단다.
장인이 가방을 제작한다는 의미는 필연적으로 생산량의 한계를 낳게 되고 공급량을 제한하게 된다. 적은 수의 공급은 희소가치를 높이고, 가치 있는 상품은 희소하다는 럭셔리 시장 가격 형성의 논리를 아는 소비자를 더욱 자극하는 요인이 된다.
https://www.youtube.com/watch?v=g6HOhqaVXW0&feature=share
버킨백이나 켈리백을 받고 싶어서 필요 없는 에르메스 가구나 의류까지 사주고, 가죽의 색깔이나 종류도 제대로 선택할 수 없는데도 버킨백이나 켈리백이라면 아무거나 상관없다는 식으로 가방을 구매하는 사람들이 생기는 이유도 럭셔리는 희소성에 있다고 생각하는 인간의 심리가 작용하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의 황홀함에 나도 빠져볼까?
사기 힘든 가방, 가방은 드물고 사고 싶은 사람은 많은 물건이기 때문에 에르메스 가방을 살 수만 있다면 무조건 사야 한다는 사실을 알게 되자, 결과적으로 나도 고매한 에르메스 가방이 정말 사고 싶어 졌다. 인간이 탐내는 것엔 합당한 이유가 있다는 아주 인간 중심적인 논리에 따라, 대부분의 사람들이 갖기를 원하는 그 가방의 정체가 무엇인지 몹시 궁금해지고 있었다. '유혹을 이겨내기 위한 유일한 방법은 유혹을 받아들이는 것'이라고 한 오스카 와일드 말처럼, 나도 가지고 싶다는 욕망을 순순히 인정했다.
사람들은 왜 그렇게 에르메스에 열광할까?라는 수수께끼를 풀어 보겠다는 구실로 내 물욕을 채우려고 해야 할까? 밥 하는 중간중간, 아이가 혼자 공부하는 짬짬이, 나는 시간 나는 대로 에르메스 공식 홈페이지에서 어떤 상품이 있는지도 알아보고, 브랜드의 역사를 써치 하기도 하고, 언박싱 영상을 보며 눈이 동그레지기도 하며, 물욕에 뽐뿌질을 하던 중에, 내가 사기에 적합한 가방 하나를 찾아냈다.
그 이름은 가든파티. 지퍼 없이 똑딱이로 잠금을 하는 토트백이었는데, 사이즈도 큼직하고 심플한 디자인이 마음에 들었다. 수 천만 원이 넘는 버킨이나 켈리는 가격적 부담도 컸지만 구매이력이 전무한 나에게 '그림의 떡'이었다. 기회가 생기는 데로 매장을 방문하다 가방이 있다고 하면, 가든파티 정도는 나도 소장할 수 있겠다는 결론을 내렸다.
유럽 여행을 갈 때마다 나는 묶는 호텔 근처에 에르메스 매장이 있는지 살폈다. 참새가 방앗간을 그냥 못 지나가는 것처럼 에르메스 매장을 기웃거리며 호시탐탐 가방 살 기회를 노린 끝에, 지난 겨울 드디어 그리스 아테네 매장에서, 네곤다 가죽 에토프 칼라의 가든파티 36을 만났다.
'이건 무조건 사야 해. 남편 동의 필요 없음. 나는 내돈내산이 원칙인 여자니까. 마흔까지 열심히 살아온 나에게 내가 주는 선물이야. 속으로 나에게 말하곤, 그동안 아껴둔 비상금으로 나는 가든파티를 샀다. 가방값을 결재하고 포장까지 한 참의 시간이 걸렸다. 그동안 매장을 돌아봤는데, 매장 곳곳에는 시계, 가구, 그릇 등 다양한 에르메스 제품들이 전시되어 있었다. 그중에서도 내 눈길을 끌었던 것은 벽면을 장식한 화려한 스카프였다. '카레'라고 불리는 꽃, 동물, 곤충 무늬가 그려진 세련된 사각 스카프가 매장 벽면을 화려하게 장식하고 있었다. 한 점의 미술 작품 같은 까레의 무늬는 1837년 창립 이후로 긴 역사를 지닌 에르메스가 사 모은 고유의 도판에서 탄생한 것이라고, 가든파티에 어울리는 트윌리를 추천해 주던 아테네 매장의 셀러는 에르메스 카레의 특별함을 에르메스 입문자였던 나에게 전했다.
나는 아직도 정성껏 포장된 에르메스 쇼핑백을 건네받았을 때를 기억한다. H 로고와 말 그림이 박힌 오렌지색 쇼핑백을 받아 본 순간, 유튜브에서 언박싱 장면에서 본 사람처럼 오렌지 박스 홀려 신이 났었다.
나도 에르메스가 주는 자본주의적인 황홀경에 매료되던 순간이었다. 많은 돈을 쓴 자에게 극진한 정성을 경험하게 해주는 그들의 이름은 에르메스.
원하는 물건을 손에 넣었다는 얄팍한 쾌감에서 벗어나 이 물건을 고요하게 볼 수 있기까지, 여러 달의 시간이 지났다. 딱 한번 외출할 때 들고는 코로나 19 팬데믹에 따른 lockdwon 조치로 외출할 곳이 없게 되자, 황홀해하던 에르메스 가방도 더스트백 속에서 넣어 두고 잊고 있었다. 오렌지 박스의 황홀함도 그리 오래가지는 못한다.
'이게 뭐라고?' 내가 시간 들여, 돈 들여 샀을까?
그냥 물건 넣어, 들고 다니는 가방일 뿐이데 하며 의구심을 품다가,
'그래, 어디 한 번 꼼꼼히 봐보자'하는 생각이, 불현듯 들었다.
꽤 오랜 시간 동안 가방을 앞에 놓고 관찰을 해봤다. 스티치 하나하나를 보다 보니,
'역시 장인이 한 땀 한 땀 바느질했다는 에르메스네' 하며 감탄을 했다.
'과연 이것이 인간의 바느질이란 말인가!'
일정한 간격을 완벽하게 유지하고 반복되는 흰색 스티치의 질서 정연함, 감탄을 자아내기 충분했다. 그러다 나는 유난히 바늘구멍이 크고 못생긴 한 땀의 스티치를 발견한다.
삐뚤어진 한 땀, 못난이 스타치 한 땀은 , 파격(破格)이었다.
아! 이 가방은 정말 사람 손으로 만들었구나! 나는 그 한 땀의 못생긴 스티치에서 에르메스 장인이 바느질을 하는 과정에서 느꼈을 '아찔함'같은 것을 느꼈다. 이 한 땀의 스티치에서 나는 무언의 메시지를 건네받은 듯했다. 완성에 도달하고자 하는 장인의 목적과 성취하는 과정의 한계, 완전함을 향해 나아가는 인간의 창조 과정을 말해주는 것 같았다. 가지런한 질서를 깨뜨리는 아찔한 한 땀. 이 한 땀의 못난이 스티치가 다음 한 땀으로 이어지는 순간, 아마도 이 가방을 만들던 이는 식은땀을 흘리며 안도하지 않았을까?
에르메스 가방에 열광하는 사람들은 단순히 물건에 열광하는 것이 아니었다. 한 명의 장인이 하나의 가방을 완성해 나가는 몰입의 과정을 상상하며 환호했던 것이 아닐까? 이것은 한 명의 인간이 무엇인가를 완성해나가면서 느끼는 창조적인 힘을 연상케 한다. 처음부터 끝까지 자기 스스로의 힘으로 무에서 유를 만들어 가는 인간이 느끼게 되는 기쁨의 정서와 관련되어 있다. 스피노자는 '기쁨은 더 작은 완전성에서 더 커다란 완전성으로의 인간의 이행'이라고 말한다. 가죽 장인이 자신의 목적인 가방을 완성하는 과정은, 어찌 보면 꽤나 지루하고 반복적으로 보이지만, 지난한 작업의 루틴을 통해서 '가장 솜씨 좋은 인간'이라는 더 큰 완전성을 향해 자신의 역량을 닦으며 숙련되어 간다. 즉 에르메스의 가방은 웰-메이드 상품일 뿐만 아니라 한 명의 솜씨 좋은 인간이 더 큰 완성을 향해 나가는 기쁨의 정서, 장인정신을 포함한다.
에르메스는 단순히 최고급 가죽 가방을 파는 것이 아니다. 인간이 존재 역량을 꽃피울 때 생기는 정서, 창조의 환희가 배어 있는 상품을 생산한다. 하나의 완성을 목적으로 총체적인 일을 하기보다 파편화된 일을 담당하는 것에 익숙한 우리에게, 장인의 손에서 오롯이 완성된 에르메스 가방은 낯설고 드물게 보일 수밖에 없다. 평범치 않고 드문 물건에 최고의 가치를 매김으로써, 우리가 일상적으로 쓰는 상품에서는 찾아볼 수 없는 '무엇인가를 완전하게 만들어냄으로써 느끼는 기쁨의 정서'가 얼마나 값진 감정인가를 일깨우는 경험을 하게 되는 것이다.
생산효율을 중시하고 화폐의 증식을 최고의 가치로 여기는 자본주의 사회에서 물건이란 그저 많이 팔아 이윤을 남기고 소모되는 대상에 지나지 않는다. 에르메스는 이런 양적 원리를 거부한다. 에르메스의 선택은 오히려 양적 한계를 만들어 상품을 질적으로 생산함으로써 자본주의 안에서 최후의 승자로 자기매김 할 수 있었다. 명품이란 모름지기 장인의 영혼이 깃들어 있어야 한다는 질적 완성을 고집했던 에르메스는 사람들에게 '평생 소장하고 싶은 가방'이라는 표상을 각인시켰다. 더 솔직히 말하자면, 자동차 한 대 값을 치르더라도 에르메스 가방이라면 사고 싶다는 마음을 사람들에게 불러일으키고 싶었을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는 장인정신도 돈으로 환산해 주니까!
에르메스를 사는 행위는 자본주의가 도래하기 이전, 과거에 솜씨 좋은 인간(Homo habilis)이 누리던 기쁨에 대한 향수를 달래는 일이다. 지금의 자본주의 사회에서 수백, 수천의 돈을 대가로 치른 사람은 우리가 잃어버린 '창조하는 인간의 영혼'에 대한 향수를 에르메스라는 최고의 상품으로, 가죽 장인의 정신이라는 표상을 통해, 간접적으로 달랠 수 있다. 오랫동안, 인간은 공예품이든 농기구든 생활에 필요한 물건을 처음부터 끝까지 스스로 만들어 내는 기쁨을 누리며 살아왔다.
19세기 이후 영국에서 발현된 산업화와 자본주의는 인간의 노동 생산성 극대화를 중시하면서 분업화를 촉진했고, 우리가 하는 일의 범위를 협소하게 만들어 왔다. 에르메스의 상품은 인간의 힘만으로 무엇인가를 창조해 낼 수 있다는 완성을 향한 본래적 욕망을 자극한다.
아이러니한 것은, 원래 우리가 가지고 있는 창조적 역량을 발휘함으로써 완성에 대한 욕망을 추구하기보다 모든 가치를 돈으로 환원하는 자본주의의 논리에 따라 고가의 상품을 소비하는 방식으로 우리의 근원적 욕망을 해소하려 한다는 점이다. 인간의 영혼이 깃든 고가의 상품을 사는 행위는 과거 인간이 창조인으로써 누리던 기쁨에 대한 그리움을 달래는, 수동적으로 위안하려는 방식이라는 것이다. 자본주의 사회에서 인간은 '과거 솜씨 좋은 인간이 느끼던 환희'를 '솜씨 좋은 인간이 만든 상품'을 소비함으로써 해소하려 한다. 나도 그랬던 것처럼.
어찌했든 에르메스의 전략은 적중했고, 에르메스가 표방하는 '인간의 역량으로 만들어낸 최고의 상품'은 물건값이라고 하기는 터무니없이 비싼 가격이 책정되는 고부가가치의 상품이 되었다. 자본주의의 핵심인 대량생산 대량소비라는 프레임을 거부하고 자기만의 전략을 고수한 에르메스 가방의 리셀가는 오늘도 고공행진 중이다. 중고품이 새 제품보다 더 비싼, 중고품의 고가 거래가 성행하면서 '사서 쓰다가 되팔아도 손해가 아니라는 계산'이 성립하게 되자, 무조건 사고 보자는 심리가 더해져 파리의 에르메스 매장은 매일 문전성시를 이룬다.
범람하는 상품의 시대에, 사람들은 지쳐있다. 사실 코로나 19로 사상 초유의 위기를 겪고 있는 요즘, 인간의 무한 욕망을 부채질하는 무한 상품의 시대가 저물어 가고 있는 것은 아닐까? 조심스럽게 점쳐 보기도 했지만.
이것이 얼마나 어려운 일인가! 다만, 이제 정체성 없는 상품은 간소한 삶을 지향하고 싶은 사람들의 소비 심리는 자극하기 어렵다. 요즘 사람들은 소모품이라 생각하는 상품에는 가성비를 따지지만, 아이덴티티를 가진 상품에는 가심비를 적용하기 때문이다.
에르메스의 마케터들은 외친다.
"우리는 인간이 스스로 만들어 낼 수 있는 최고의 상품을 만들어."
"에르메스를 가질 수 있는 사람은 에르메스가 정해."
"Our gestures define us."
에르메스의 이런 태도가 영혼 없는 상품에 지친 사람들을 에르메스에 열광하는 만드는 것은 아닐까?
여기 비슷한 태도를 지닌 사람이 한 명 더 있다. 선풍적인 인기를 끌었던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의 주인공 박새로이다. 그는 드라마 속에서 “내 가치를 네가 정하지 마.” 내 가치는 내가 정한다고 당당하게 말한다. 박새로이의 말이 멋지게 들렸던 이유도 그의 삶에 대한 태도에 있다. 결국 우리 안에는 자신만의 아이덴티티 만들어가는 사람, 드문 것에 대한 동경이 존재한다.? 자신의 가치를 자기 스스로 규정함으로써, 자기만의 길을 만들어 간다는 건, 매우 희소성 있는 일이기 때문에 우리는 자기만의 정체성을 가지고 있다고 생각하는 물건이든 사람이든 그 가치를 인정하고 열광하게 되는 것이 아닐까?
나를 매료시킨 에르메스 가방도,
열광하던 드라마 <이태원 클래스>의 주인공 박새로이도,
내 영혼의 안내서 <에티카>를 쓴 스피노자도 모두 나에게 같은 말을 건네는 것 같다.
마흔 살, 지금부터 너의 길을 만들어 가 보라고,
솜씨 좋은 인간(Homo habilis)이 느끼는 '능동적인 기쁨'을 느껴보라고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