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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Mar 21. 2018

돌은 저 안에 있네. 문을 열게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의 배경, 가가와현 사카이데

어두운 오솔길을 천천히 앞으로 나가자, 큰 떡갈나무 아래 조금만 사당이 있었다.
샌더스는 손전등으로 그 사당을 비췄다.
“돌은 저 안에 있네. 문을 열게.”

- <해변의 카프카> 중에서


 


그곳에 해가 지기 전에 도착해야 했다. 물론 해가 진 후에 도착해야 정답이지만 (호시노 청년도 늦은 밤에 방문했으니) 내게 그럴만한 담력은 없었다. 깊은 밤에 신사라니. 생각만 해도 오싹하다. 신사란 곳은 한낮에 방문해도 서늘한 기분이 들 때가 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시로미네 산기슭에 위치한 다카야 신사 高屋神社 경내를 가득 메우고 있었고, 저무는 해가 신사 입구에 서 있는 도리이부터 오렌지빛으로 물들이기 시작했다. 신사를 가운데 두고 옆에 놓인 길들은 숲으로 이어져 있는 듯했다. 소설 <해변의 카프카> 속에서 호시노 청년은 이곳에서 만나야 하는 돌이 있다. 나 역시도 그 돌을 마주하고자 이곳까지 왔다. 물론 이 신사가 정말 <해변의 카프카>의 배경이라면 하는 말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해변의 카프카>의 주인공 카프카 소년은 15살 생일을 맞으며 가출한다. 그의 아버지가 예언한 언젠가 ‘아버지를 죽이고, 어머니와 누나와 육체관계를 맺는다’는 저주로부터 벗어나기 위함이었다. 그는 시코쿠 다카마쓰란 곳에 도착하여 고무라 도서관에서 시간을 보내게 된다. 도서관에는 성동일성 장애를 가진 사서 오시마가 있다. 오시마는 도서관을 관리하는 사에키 씨와 논의하여 카프카 소년이 도서관에 머물 수 있게 돕는다. 사에키는 어릴 때부터 늘 함께 지내던 연인을 스무 살 때 잃은 50대 여성이다. 그녀는 카프카 소년의 ‘가설 상’의 어머니. 한편, 소설에는 또 한 명의 중요한 인물이 등장한다. 도쿄 나카노구에서 보조금을 받으며 생활하는 나카타 노인.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어떤 사고를 겪은 후 글을 읽지 못하게 되었으나 고양이와 대화를 나눌 수 있다. 나카타 역시 다카마쓰로 향하는데, 길 위에서 만난 호시노 청년과 ‘입구의 돌’을 찾고, 여닫는 일을 하게 된다.


 

어디에 있을까.  

어디에 있을까.  


 

<해변의 카프카>에서 가장 중요한 물건으로 등장하는 ‘입구의 돌’. 호시노 청년은 커낼 샌더스의 도움으로 신사에 있던 입구의 돌을 들어 올린다. 물론 다카야 신사에 있는 돌은 ‘입구의 돌’이라고 추정되는 돌이다.* 우선 왼쪽에 있던 관음사부터 샅샅이 뒤지기 시작했다. 돌을 찾다가 잠시 허리를 펴고 위를 올려다보니 돌만 찾으며 시간을 보내기엔 아쉬울 정도로 분위기가 꽤 근사했다. 꽃이 슬슬 피기 시작한 날씨지만 아기 돌부처는 앙증맞은 빨간 모자를 쓰고 있었다. 석양은 구석구석에 내리 꽂혀 건물의 빛깔을 더욱 곱게 만들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나는 나카타 노인과 호시노처럼 열심히 돌을 찾는다. 그리고 마지막에 올라선 공간에서 돌을 발견했다. 소설 속 묘사와 같이 모양이 아주 둥그스름하지 않아도 크기가 딱 LP레코트판 정도에 하얗고 넓적한 돌이다. 호시노 청년은 다른 세계로의 통로를 의미하는 이 돌을 나카타 노인에게 가져간다. 입구의 돌을 보고 난 나는 이미 이곳이 <해변의 카프카>의 배경임을 확신하기 시작했다. 돌을 이렇게 가둬 둔 것은 어느 신사에나 있는 일이 아니지 않은가!


 

다카야 신사
가마다 공제회 향토박물관


사실 이 확신은 앞서 다녀온 장소의 영향일지 모른다. 우리는 네 시를 살짝 넘긴 시간에 사카이데에 있는 가마다 공제회 향토박물관 鎌田共済会郷土博物館 에 도착했다. 네 시부터는 관람객을 받지 않아 내부를 관람하지 못했지만, 박물관 외관과 바로 옆에 있던 정원 고후엔 풍경만으로도 이곳이 <해변의 카프카> 속 고무라도서관의 모델일 것이란 믿음이 생기기 시작했던 것이다. ‘문학적인 것에 돈을 아끼지 않은 고무라 가문’이 세운 도서관이라는 소설 속 설정처럼 이곳은 일본의 실업가이자 귀족이었던 가마다 가쓰타로란 사람이 자선, 사회교육을 목적으로 설립한 건물이다. 정원 역시 가마다의 별장이었다. 고후원에 놓인 돌에 앉아 점심 도시락을 먹었을 카프카 소년의 모습이 머릿속에서 맴돌았다. 이곳은 지역 주민들에게도 꽤 사랑을 받는 공간인 듯 저녁 무렵이 되자 생각보다 많은 사람들이 하나둘 정원을 채웠다. 그중 몇 명은 정자에 앉아 석양을 기다리기 시작했다.



그날 밤은 다카야 신사를 입구에 둔 시로미네 산 높은 곳까지 올라가 잠을 잤다. 전 날까지만 해도 날이 맑아 나카타 노인이 건너온 커다란 다리가 저 멀리 보였는데 아침에는 구름이 빠른 속도로 몰려와 비를 뿌리고 있었다. 비가 내리는 아침에 들어간 노천 온천에서 나는 숲의 향기를 더욱 깊이 들이마실 수 있었다. 온천물의 표면을 멍하니 보고 있으니 투명한 면봉이 속속 솟아오르는 것처럼도 보였다. 그리고 시로미네 산을 내려가며 길을 가로질러 건너는 꿩을 한 마리 만났다. 파란빛의 몸통에 붉은 얼굴은 가진. 이곳 풍경에 있으니 꽤나 화려한 생명체였다.  


저멀리 세토내해대교
고치로 향하는 길




그리고 우리는 카프카 소년이 잠시 몸을 숨겨야 할 때마다 향했던 장소를 찾아 빗속을 달린다. 목적지가 있는 것은 아니다. 방향만이 정해져 있을 뿐.





*) 다카야 신사도 가마타 공제회 향토박물관 정보도 <산책으로 느끼는 무라카미 하루키 さんぽで感じる村上春樹>(다이아몬드 사) 라는 책을 통해 알게 되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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