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의 배경으로 떠난 여행
“양 박사의 옛날 목장은 어디에 있어요?”라고 그녀가 물었다.
“산 위에. 차로 세 시간이 걸리지.”
“지금 바로 가는 거예요?”
“아니”라고 나는 말했다.
- 무라카미 하루키 『양을 쫓는 모험』 중에서
모험을 준비하다
무라카미 하루키의 초기 삼부작 중 마지막 소설 『양을 쫓는 모험』을 따라 홋카이도의 겨울로 떠날 준비를 마쳤다. 소설에 묘사된 목장에 가볼 예정이었다. 한국에서 접한 정보에 따르면 10월 이후에는 접근이 불가능한 곳으로 되어 있다. 이미 한겨울에 들어서 있었고, 날이 풀리기까지 기다리고 싶지 않았다. 목장에 메일을 보내보았다. 겨울에도 숙박이 가능하며, 다만 눈길이 익숙하지 않으면 오기 어려울 수 있으니 비후카역에서 전화를 주면 마중을 나가겠다는 답신이 왔다. 일단 가보겠다고 메일을 보내고, 『양을 쫓는 모험』의 배경으로 들어갔다.
소설 『양을 쫓는 모험』에는 얼마 전 이혼을 한 주인공 ‘나’와 ‘나’의 친구 ‘쥐’, 귀가 아름다운 ‘여자 친구’, 그리고 지하에서 정치, 경제를 움직이는 검은손 ‘선생님’이란 인물이 등장한다. ‘나’는 ‘쥐’로부터 받은 사진 속 풍경을 찾아내라는 ‘선생님’의 의뢰(협박?)를 받고, 여자 친구와 함께 등에 별 모양의 얼룩이 찍힌 양을 찾아 홋카이도로 떠난다.
양을 쫓기 시작하다
양을 찾는 ‘나’와 여자 친구의 여정은 우선 삿포로 시내에서 시작된다. 둘은 어딘가 기묘한 느낌이 감도는 이루카 호텔에 머물며 양에 대한 조사를 시작한다. 그리곤 호텔 안에서 양에 관해 많은 것을 알고 있는, 그러나 성격은 다소 괴팍한 ‘양 박사’를 만나게 된다. ‘양 박사’의 설명을 듣고 두 주인공은 삿포로에서 260킬로미터 떨어진 마을로 향한다. 그들처럼 우리 부부도 삿포로에서 출발해 비슷한 거리에 위치한 마을까지 가는 길에 우선 비후카 역에 도착했다. 역 1층에 있는 ‘무라카미 하루키 문고’에 들어갔다. 비후카정 관광협회에서 만들어둔 공간인 이곳에는 무라카미 하루키 작품들이 책장에 꽂혀 있다. 책은 자유롭게 볼 수 있으며 벽면에는 『양을 쫓는 모험』의 묘사와 닮은 풍경이 액자 안에 갇혀 있었다. 작은 공간이지만 무라카미 하루키 팬이라면 즐겁게 시간을 보낼 수 있다. 가장 잘 보이는 곳에 세워 있는 『양을 쫓는 모험』에는 중간중간 포스트잇이 붙어 있었는데, 비후카 풍경이 담긴 문장들에 표식을 해둔 것이었다. 나는 이 문장들을 낳은 배경 위에 서 있었다.
주인공 ‘나’는 열차를 여러 차례 갈아타고 작은 마을인 주니타키에 도착한다. 주니타키에서 목장 관리인을 만나 설명을 듣고 ‘쥐’가 있는 것으로 예상되는 산 위의 목장까지 올라가게 된다. 그곳은 한 때 양박사가 머물기도 했고 ‘쥐’의 아버지의 별장이기도 한 곳. 비후카 사람들은 하루키가 ‘주니타키’라 이름 붙인 마을이 ‘니우푸’라 추측하고 있다.
하루키가 탔을 때도, 소설 속 묘사에도, 적자노선으로 그려진 비후카역에서 니우푸역까지 가는 열차는 이미 없어졌기에 우린 렌터카를 타고 니우푸로 향했다. 오후 네 시면 해가 지는 이곳에서 가로등도 없는, 눈이 30,40 센티미터는 족히 쌓인 길을 가야 했다. 소설 속에서 믿고 의지한 동행 ‘나’와 ‘여자 친구’처럼 나도 남편의 운전실력을 믿을 수밖에 없다. 큰 도로(이것도 그리 크지도 않지만)가 끝나고 산길로 접어들자 건물이 한 채도 보이지 않았다. 양 옆 풍경은 눈이 모든 것을 하얗게 지워두어 무엇이 있는지 알 수 없다. 새카만 하늘, 그리고 새하얀 눈. 두 개의 색 만으로 표현된 풍경이 2.3킬로미터 정도. 그 길 끝에 저 멀리 노란 불빛이 반짝였다. 반가웠다. 드디어 목장에 도착한 것이다.
양 사나이가 있는 건물에 도착
사실 우리가 도착한 곳은 양을 키우는 곳이기도 하지만 ‘마쓰야마 농장(松山農場)’이란 이름을 갖고 있다. 광활한 농장 안에 있는 '팜 인 톤토(ファームイントント)’란 나무집에서 숙박을 할 수 있다. 팜 인 톤토는 하루키가 묘사한 ‘쥐’의 아버지 별장과 분위기가 꽤 닮아 있었다. 당연 하루키가 이 건물을 보고 글을 쓴 것이 틀림없다 생각했다. 물론 예상은 철저하게 빗나갔다.
농장 주인 부부의 따뜻한 환대를 받고 짐을 푼 뒤 목욕을 했다. 그리고 농장 아주머니가 정성스레 준비해주신 양고기 칭기즈칸 요리와 양젖을 넣어 만든 그라탱을 먹기 시작했다. 조금 떨어진 자리에 앉은 농장 주인 야규 요시키 씨가 이야기를 시작했다. 야규 씨가 이곳에 건물을 세운 것은 1995년. 『양을 쫓는 모험』은 1982년도에 쓰인 소설이다. 따라서 하루키가 이 건물을 보고 ‘쥐’의 아버지 별장을 이야기했을 리 없다. 그렇다고 야규 씨가 소설 속 묘사대로 건물을 재현한 것 역시 아니었다. 야규 씨가 소설을 읽은 것은 팜 인 톤토를 세운 이후였는데, 처음에는 이곳에서 소를 키우다가 여러 사정이 있어 양 사육으로 전환을 하게 되었다고 한다. 그때 주변 사람들이 『양을 쫓는 모험』은 양을 키우는데, 바이블과 같은 소설이라 권해서 읽게 되었다고. 그리고 야규 씨 스스로도 굉장히 놀랐다. 소설 속 묘사와 농장 분위기, 건물의 모습이 흡사했기 때문. 물론 별장 앞에 그려진 마을 모습도 니우푸와 닮은 점이 많다. 그때부터 니우푸는 무라카미 하루키 팬들의 성지가 되기 시작했다고 한다. 건물이 나중에 세워졌단 이야기를 듣고 누군가는 실망했을지 모르지만, 나는 하루키가 팜 인 톤토를 보고 쓰지 않았단 사실에 괜히 안도했다. 진짜로 똑같은 건물이 있어버리면 시시해지니까.
마치 ‘쥐’가 정돈해 둔 것 같은 공간에서
『양을 쫓는 모험』 속 개성 있는 캐릭터 ‘양 박사’가 실존인물일 수 있단 사실을 아시는지. 하루키가 실제로 인터뷰를 한 인물이 있었다. 히라야마 슈스케 (平山秀介) 할아버지. 야규 씨는 홋카이도 농업회(北農会) 기관지 북농(北農)에 실린 히라야마 씨의 글을 나에게 보여주었다.
부부가 같이 반다나를 이마에 감고, 당시 젊은이들 사이에서 유행하고 있던 히피 스타일로 방문했다. 나는 양 사육에 관심이 있어 어쩌면 면양 생산자가 되어줄 것이라 생각해 열심히 답해주었다. 일 년 후 『양을 쫓는 모험』을 기증받을 때까지 그리 생각하고 있었다. 결과적으로 신초신인상에 약간은 기여를 했다고 생각한다.
- 북농회 기관지 ‘북농’ 제76권 제 2호
‘와. 하루키는 정말로 『양을 쫓는 모험』을 쓰기 위해 이 지역에 와 있었구나.’
글을 보여주고 나서도 야규 아저씨는 수다를 이어갔다. 이곳을 방문한 무라카미 하루키 팬 이야기라든지(러시아, 브라질 사람도 왔다 갔다고 한다.), 내후년 있을 무라카미 하루키 관련 행사라든지, 몇 년 동안 해온 노벨문학상 행사(하루키가 수상할 것을 기대하며 팜 인 톤토에서 노벨상 수상 소식을 듣는 이벤트) 등을 설명해주었다. 그리고 최근에는 한 방송국에서 나와 이곳을 근사하게 담아간 프로그램이 있으니 밥을 다 먹고 양젖 아이스크림을 먹으면서 같이 보자고 했다. DVD는 『양을 쫓는 모험』 속 배경을 여행한 ‘여행을 빌려주다 (旅、貸し出す)’란 다큐멘터리로 삿포로에서 시작해, 비후카, 니우푸, 팜 인 톤토까지 상세히 담겨 있었다. 중간중간 소설 속 음식도 등장하고, 1부, 2부로 나뉘어 1부에선 주로 삿포로를, 2부에선 주로 비후카 일대를 담았다. 1부를 한참 보다가 옆을 보니 야규 아저씨는 이미 숙면 중.
난로 뒤에 앉아 있던 아주머니가 침묵을 깼다.
“이거 이렇게 길었던가?”
잠에서 깬 아저씨가 답했다.
“그러게 굉장히 기네.”
나는 혼자 생각한다.
‘다 봐야 하는 거겠지……?’
내가 걱정 어린 목소리로 묻는다.
“혹시 너무 늦어지는 것 아닌가요?”
아주머니가 환하게 웃으며 답했다.
“전혀 전혀 괜찮아요.”
아무도 이 상황을 끊을 자 없다. 모두가 끝까지 봐야 하는 것이었다. 2부 가장 끝에 아주 잠깐 드론으로 찍은 팜 인 톤토가 보였다.
“가을도 근사하군요!”
어쨌든 2시간 넘는 시간을 통해 ‘가을에도 이곳은 아름답다’는 정보를 얻었다. 가을이야말로 하루키가 묘사한 배경과 똑같은 모습이니까.
눈이 소리를 다 흡수해 버려 고요하고 깊은 밤 방으로 올라왔다. 소설 속 별장은 ‘쥐’가 일주일 전 깔끔하게 정리해 두어 쾌적한 공간으로 묘사되어 있다. 팜 인 톤토는 야규 아주머니가 정리해두신 것이겠지만, ‘쥐’가 매만져둔 것 못지않게 깨끗하고 편안했다. 농장이라고 해서 크게 기대하지 않았는데 목욕탕도 따로 있고, 방 안도 료칸 못지않게 갖춰져 있었다. 딱 한 가지 아쉬운 점은 냉장고가 없어 사온 맥주가 미지근해지지 않을까 했는데, 그것은 걱정할 필요가 없었다. 방에 딸린 테라스에 이미 눈이 한가득 쌓여 있으므로 꽂아 두기만 하면 되는 것이다. 맥주(나는 하루키 글만큼 맥주를 부르는 글은 쓰는 작가를 아직까지 보지 못했다.)를 마시고 침대에 누워 누가 어디론가 사라져도 모를 법한 깊은 잠에 빠졌다. 『양을 쫓는 모험』에서는 주인공이 잠든 사이 여자 친구가 사라져 버린다. 밤새 눈이 더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