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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Aug 06. 2016

그들만의 작은 궁전을 엿보다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에 담긴 중국 푸젠토루

왕조가 바뀔 때마다 힘없는 백성들은 혼란스럽다.


전국 각지에서 난이 일기도 하고, 숨죽이고 있던 북방 민족(거란, 여진, 몽골 등)이 침략해 내려오기도 한다. 혼란기 때마다 중국 대륙에서는 북에서 남쪽으로 삶의 터전을 옮기는 유민이 발생하였다. 중국 역사상 총 5차례가 있었던 대규모 유민은 ‘객가인’이라는 새로운 형태의 민족을 만들었다.


객가인들은 사실상 중원에 살던 한족 汉族이지만 거주지를 남쪽으로 옮겨 살아간 사람들을 칭한다. 객가인의 규모는 7,000만 명 정도라고 하는데, 장시성, 푸젠성, 광둥성 일대에 많이 정착했다. 대만과 해외로 진출한 화교들도 상당수 객가 출신이다.



침략과 약탈에 넌더리가 났던 객가인들이 세운 폐쇄적인 건축양식인 토루(土樓). 2008년에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된 푸젠토루를 방문할 기회를 얻었다. 현재 남아 있는 토루는 약 3,000여 개로 그중 총 46채가 유네스코 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유네스코 유산으로 지정된 토루는 주로 푸젠성의 장저우시 漳州市, 룽옌시 龙岩市 등지에 분포해 있는데, 내가 간 곳은 유네스코로 지정된 토루가 가장 많이 있다는(20채) 장저우시 난징 현 南靖.




매정하게도 도착하자마자 폭우가 쏟아졌고, 카메라와 함께 비를 맞으며 셔터를 누를 수밖에 없었다.


유네스코 문화유산 등재 기록을 읽어보니, 이 토루라는 건물은 사실 객가인들만의 전유물은 아니었다고 한다. 원래부터 동남부 지역에 살던 민난인들 역시 이러한 형태의 건축물을 지었던 경우가 많이 있었다고 한다. 그러나 현재 남아 있는 토루들의 많은 부분이 객가인들이 살았던 건축물이기 때문에, 객가인과 토루 문화를 결부시켜 논하는 경우가 많다.


전라갱토루 ©istandby4u2





네 가 지 반 찬, 국 하 나


가장 먼저 찾은 곳은 전라갱 토루 田螺坑土樓. ‘4채 1탕’이라는 귀여운 이름이 붙어 있는 이 토루는 원형 토루 4채와 방형 토루 1채가 붙어 있어, 4개의 반찬과 1개의 탕과 같다. 산 위에 이 5개의 토루를 함께 내려다볼 수 있는 전망대가 마련되어 있었다.



비가 내려서 아쉬웠지만, ‘귀퉁이에 있는 작은 건물은 수저’라는 가이드의 추가 설명이 더해져 더욱 흥미로운 토루 여행의 막을 열었다. 600여 년 전에 황씨 일가가 이 일대에서  살면서 우렁이를 먹인 오리를 키웠다고 해서 밭 전 자에 우렁이 라를 써서 '전라갱'이라 이름 붙었다.





유창루 ©istandby4u2




소 간 지 는 없 지 만


다음으로 난징 현에서 가장 오래된 토루인 유창루 裕昌楼로 향한다. 무려 705년이나 된 유창루는 1308년부터 1338까지 30년 동안 지은 집이다. 1층과 2층은 스승이 짓고, 3층부터는 제자에게 맡겼다고 한다. 이 제자는 스승에게 자신의 기술력을 과시하기 위해, 기둥을 비스듬히 세워서 완성시켰다는 전설이 전해진다.


유창루는 269개 방이 있는 데 현재는 59개를 사용하고 있다고 한다. 토루는 보통 두 개 기둥 사이 한 줄(4층)을 한 가족이 쓰게 되어 있다.



1층은 주방, 2층은 식량 창고, 3층은 침실, 4층은 침실 겸 창고다. 가운데 큰 마당에는 조당을 지어 조상을 모시는데, 소농 경제 사회의 종법 제도에 따른 것이다.


- p.120 윤태옥, <당신은 어쩌자고 내 속옷까지 들어오셨는가> 中



요즘에는 1층 앞에 상점을 열어 지역 특산물과 토산품을 팔고 있다. 유창루는 sbs 드라마 <카인과 아벨>의 촬영지로 국내에 잘 알려져 있다. 드라마에서 의사로 나오는 소지섭이 의료봉사활동을 한 장소가 바로 유창루였다고 하다. 실제로 방문해보면 중국 할머니들이 많고, 소간지는 찾을 수 없다. (기대는 마시길...)



화귀루 ©istandby4u2



울 렁 울 렁 울 컹 울 컹


둥그런 토루들은 실컷 보았으니, 방형의 토루를 방문해 보기로 한다. 청나라 때 만들어진 화귀루는 지반이 견고하지 않은 늪지 위에 방형으로 지었는데, 외관만 보더라도 곧 무너질 것처럼 보였다.


가이드 말에 따르면 가장 위험한 토루라고 한다. 하지만 사람들은 거주하고 있다. 가운데 공간에 땅을 밟아 볼 수 있게 해 두었는데, 정말로 발로 밟아보니 울렁울렁, 울컹울컹. 당장이라도 지반이 내려앉을 것 같은 공포가......


회원루 ©istandby4u2



책 을 읽 는  방 이  한 가 운 데 에


마지막으로 다른 토루보다 비교적 젊은 회원루怀远楼를 돌아보기로 했다. 회원루 가운데엔 사시실斯是室이라는 조당祖堂이 하나 있는데, 이곳에서 가족들이 책을 읽었다고 한다.


객가인들은 원래부터 교육열이 대단했다고 하는데 중국 현대문학의 선구자 궈모뤄, 지도자 쑨원, 싱가포르 전 수상인 리콴유, 중국 정치가 덩샤오핑 등이 객가 출신이다. 모두 객가인들의 뛰어난 교육열 때문에 태어난 인재들이었다.


한 채 한 채 깊은 역사와 재미난 이야기를 담은 토루를 둘러보면서, 중국 역사의 깊이를 다시 한 번 느껴 볼 수 있었다.


조금 날씨가 맑았더라면 더 신이 났을 텐데......



전라갱토루 색칠과정 ©istandby4u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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