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봄날은 간다'에 담긴 삼척과 동해
라면을 끓이게 되는 영화가 있다.
"라면 먹을래요?"
이제는 질릴 만도 한 이 대사는
여러 차례 다시 들어도, 설레고 고프다.
'봄날은 간다' 촬영지 삼척 신흥사는
음향기사 남주인공과 잘 어울리는 공간이었다.
영화는 서울에서 할머니와 아버지, 고모와 함께 사는 주인공 상우(유지태)와 지방 방송국 라디오 PD이자 아나운서인 은수(이영애)가 녹음 일로 만나며 시작한다.
둘은 자연의 소리를 채집하기 위해 강원도의 이곳저곳을 돌아다니다 사랑에 빠지게 된다.
은수와 상우가 눈 내리는 사찰의 소리를 녹음한 삼척 신흥사에 도착하니, 물소리와 바람소리…
그리고 멀리서 뻐꾸기 소리가 들려왔다.
영화에서도 뻐꾸기 소리가 선명하게 들렸기에 반가웠다.
인적이라곤 찾아볼 수 없는 사찰에서
영화 속 소리들을 마주 하고 있자니,
여러 감흥이 뒤섞이기 시작했다.
신흥사는 신라의 44대 왕 민애왕 때 동해시 부근에 지어졌던 절인데, 1674년에 현재 장소로 옮겨 왔다고 한다.
2년 전 아궁이에 불을 지핀 채 월드컵 경기를 보러 나간 스님의 실수로 큰 불이 나, 세간의 화제가 되기도 하였다.
승려들이 거처하는 요사채와 창고가 탔다고 하는데,
영화 속 풍경과 다른 점을 전혀 찾기 어려울 정도로 잘 복원되어 있었다.
신흥사 가까이엔 폐교가 하나 있어,
인적 드문 이곳 풍경에 운치를 더해주었다.
폐교 전에는 이곳도 아이들 웃음소리가 가득했을 것이라니... 감이 잘 오지 않는다.
신흥사에서 멀리 떨어지지 않은 대나무 숲으로 향했다.
강화순 할머니의 사유지라고 하는 이곳은 영화 속 장면과 사뭇 달랐다.
강화순 할머니 (당시 72세)는 ‘봄날은 간다’의 등장인물이기도 하다. 상우와 은수는 할머니가 차려준 고봉밥으로 함께 첫 식사를 한다.
비록 영화 속 한옥 이었던 집은 양옥으로 바뀌었지만...
집으로부터 텔레비전 소리 등 생활의 소리가 나고 있어 다행이란 생각을 하며 앞을 조용히 지났다.
대나무 숲은 경사가 심하게 져 있고 생각보다 우겨져 있지도 않았다. 다만, '삭삭' 들리는 소리가 15년 전 영화 속이나 지금이나 한결같았다.
서울로 올라가기 전, 삼본 아파트를 찾았다.
영화에서 이곳은 많은 일들이 벌어진 곳이다.
은수와 상우가 함께 라면을 끓여 먹었고,
사랑을 시작했고,
너무 보고 싶다며 서울에서부터 친구 택시를 타고 온 상우를 아파트 앞 길가에 서서 기다리기도 했고,
다른 남자를 만나는 은수를 알게 되기도 했다.
그리고
둘은 이곳에서 이별을 했다.
해질 무렵 바다의 기운이 쓸쓸하게 느껴지는
한적한 아파트는 많은 사랑 이야기가 켜켜이 쌓여 있는 듯 괜스레 애잔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