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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Jun 25. 2017

콩쥐팥쥐는 잔혹했다

전라도 완주 앵곡마을


한 때 크레이지 아케이드(줄여서 크아)라는 게임이 유행했다. 나는 게임을 좋아하지 않아서 좀처럼 하지 않는데, 크아는 캐릭터가 귀여워서 여동생과 몇 번 해본 적이 있다. 우린 모니터와 키보드를 사이에 두고 나란히 앉아 게임을 시작했다. 닉네임을 만들어야 한다길래, 설화 ‘콩쥐팥쥐’에서 착안하여 나의 닉네임을 '콩주세요', 동생의 닉네임을 '팥주세요'라고 정했다. 내 성격이 팥쥐에 더 가깝기 때문인지 로그인할 때마다 누가 ‘콩주세요 였지?’ 서로 헷갈려하곤 했다.


조선 시대 중엽, 전라도 전주 서문 밖에 최만춘이라는 한 퇴직 관리가 아내 조씨와 이십여 년을 같이 살아왔건만 슬하에 자식이 없어 근심하며 기도와 불공도 하고 곤궁한 사람에게 적선도 하였는데, 그러는 사이에 하늘이 감동하였는지 하루는 부부가 신기한 꿈을 얻고 이내 부인에게 태기가 있었다.

- ‘콩쥐팥쥐전’의 시작



동생과 '내가 콩쥐다, 아니다 내가 콩쥐다' 낄낄대며 놀았던 기억도 있고 해서 나는 콩쥐팥쥐 이야기를 좋아했다. 그래서 실제로 설화가 탄생한 곳으로 추정되는 마을이 완주에 있단 이야기를 듣자마자 콩쥐팔쥐마을에 가보고 싶어 졌다.



토요일 오후 전라북도 완주로 향했다. 완주군에 있는 앵곡마을은 콩쥐팥쥐 안에 들어있는 문장대로 ‘전주 서문 밖 30리 정도’ 떨어진 곳이다. 또한 검은 소의 이야기를 듣고 콩쥐가 ‘하탕에 가서 발을 씻고, 중탕에 가서 손을 씻고, 상탕에 가서 낯을 씻은’ 세 개의 못이 근처에 있다.



출발하자마자 비가 내리기 시작했지만, 너무나도 오랜만에 만나는 비라 아쉬움보다는 반가움이 컸다. 마을 입구에 들어서니 신기하게도 비가 잠시 그쳐주었다. ‘위치가 콩쥐팥쥐 배경일뿐 평범한 시골마을이겠지’란 생각으로 기대 없이 간 탓인지 생각보다 알차게 그려있는 벽화에 놀랐다. 마을 벽에는 콩쥐팥쥐전의 전체 내용이 입구부터 차례대로 그려져 있었다. 또 중간중간 전혀 다른 화풍으로 그린 콩쥐의 실루엣 그림이나, 꽃 그림도 볼만했다. 팥쥐는 참 못생기게도 그려놨고, 콩쥐는 착해 보였다. 게다가 비가 한 차례 지나간 덕분에 마을에서 자라고 있는 식물들이 더욱 맑은 색을 내고 있었다.


(콩쥐팥쥐 이야기가 이어집니다 )



마지막 벽화를 보며, “이야기가 너무 갑작스럽게 마무리되는데?”라고 말하는 나에게 남편이 콩쥐팥쥐의 원작 이야기를 들려주었다. 내가 아는 콩쥐팥쥐 이야기는 ‘팥쥐와 계모는 개과천선하고, 콩쥐는 원님이랑 결혼을 해서 행복하게 살았다’였는데… 원작에서는 팥쥐가 콩쥐를 연못에 빠뜨려 죽이고, 콩쥐 행세를 한다. 그러다 콩쥐가 다시 살아 돌아와 감사(원님)에게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화가 난 감사가 팥쥐를 찢어 죽이고 송장을 젓갈로 만들어 팥쥐 엄마에게 보내버린다. 잔혹하고 충격적인 결말이었다.


한 편 김감사는 콩쥐에게 자기의 밝지 못했던 허물을 사과하고 이웃 노파에게 상급을 후히 내린 다음 다시 콩쥐와 더불어 다 하지 못한 인연을 이으니 아들 셋을 낳고 딸도 낳아 화락한 나날을 보냈다.

- ‘콩쥐팥쥐전’ 중에서


아무리 의붓동생이라지만, 동생을 이렇게 잔인하게 죽인 남성과 행복하게 살았다는 콩쥐란 여자를 어떻게 이해해야 할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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