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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Jul 24. 2017

호수는 그의 삶과 닮아 있었다

드라마 '그래도 살아간다' 속 그곳, 일본 나가노와 시즈오카

친구의 여동생을 쇠망치로 때려죽인 오빠를 둔 여자가 있다. 학창 시절엔 따돌림을 당했고, 제대로 된 직장을 구하기 어렵고, 연인으로부터 ‘전화 번호를 지워달라’는 말과 함께 차였다. 25살의 예쁘장한 얼굴이지만 옷차림은 후줄근하고 어깨는 굽어있다.

호숫가에 살고 있는 한 남자. 친구와 야한 비디오를 빌려보고 싶어서 연날리기를 하며 놀자던 여동생을 집에 혼자 두고 나갔다. 여동생은 그날 밤 호수에 시체로 떠올랐다. 사건이 있고 15년이 지났다. 머리는 산발에 식사는 제대로 챙겨 먹지 않는다. 호숫가에서 낚시도구를 빌려주며 살고 있다. 어머니와 남동생은 오래전 집을 떠났고 딸을 잃은 아버지는 건강도 정신도 온전하지 못하다.


이 두 명의 남자와 여자가 만나는 호수를 찾아가는 길. 비가 추적추적 내리고 있었다. 이들은 내가 이제까지 가장 감명 깊게 본 드라마의 두 주인공, 히로키와 후타바다. 2011년 일본 후지 TV에서 방영된 '그래도 살아간다 それでも生きて行く’는 가해자 가족과 피해자 가족의 삶을 이야기한다. 사카모토 유지가 쓴 시나리오, 시나리오 속 대화를 주고받는 배우들의 연기가 현실감 있다. 실제로 ‘그런 일을 겪은 사람들은 저렇게 살아가겠구나’ 생각하게 만들 정도로. 게다가 오다 카즈마사가 부른 드라마 OST도 스토리와 굉장히 잘 어우러져서 기운이 없을 때면 자주 듣곤 한다.



드라마에선 다른 이름으로 등장한 뉴카사 호수 入笠湖 주변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있었다. 건물 한 채는 아예 무너져 형체를 알아볼 수 없었고, 사람의 흔적은 보이지 않았다. 가까이 가면 위험하다는 경고문만이 여기저기 붙어 있었다. 이곳에 살던 남자 주인공 히로키의 생활과 닮아 있었다. 여러 크기의 새들이 날아다니고, 오랜만에 맡은 사람 냄새에 흥분한 벌레들이 눈 앞에서 윙윙 거렸다. 갑자기 비가 퍼붓기 시작했고, 드라마의 어두운 분위기가 한껏 전해져 왔다. 남편과 차에 앉아 드라마를 다시 돌려보며 장면을 겹쳐 보았다. 그러다 보니 어느새 비가 그쳤고, 호수를 둘러싸고 있는 녹음이 짙어져 있었다.


호수를 찾아가기 전 날, 우린 한 농장에 다녀왔다. 농장은 살인자 소년 A가 소년원에서 나와 일을 한 곳이기도 하고 다시 사건을 일으킨 장소이기도 하다. 그리고 소년 A의 여동생 후타바는 농장에 가서 자신의 오빠 때문에 깨어나지 않는 엄마를 두게 된 아이를 돌보기로 결심한다. 오빠의 속죄를 대신하는 장소. 나는 이 농장에서 찍은 드라마의 마지막 장면을 잊을 수 없기에 꼭 한 번 찾아가 보고 싶었다. 비록 다른 계절 다른 시간대라 드라마 영상 속 아름다운 그림을 그래도 얻을 순 없었지만 그래도 괜찮았다. 소년 A 가 따던 과실이 영글고 있었고, 후타바가 바라본 풍경이 그대로 남아 있었다. 관광으로 갈만한 곳은 아닌 시골마을. 나의 외갓집 풍경과도 닮아 있었다.



 



드라마에는 흔한 키스신 하나 등장하지 않는다. 둘은 호감을 느끼지만 절대 함께 할 수 없는 사이란 사실을 잘 알고 있다. 더 이상 만나지 않기로 결심한 밤, 한 차례 포옹을 하고 이별한다. 마지막 대화를 애틋하게 나눈 배경을 찾아 도착한 곳는 후지노미야에 있는 공원. 근처에 신사가 하나 있었다. 우리는  나가노현에서 시즈오카현까지 달려오느라 배가 꽤 고팠다. 드라마에 야키소바까지 등장해서 더욱 배가 고파졌다. 후타바가 배가 고프다고 하자 히로키가 컵라면으로 된 야키소바를 내온 것이다. 도착하면 야키소바를 먹기로 했다.


공원 옆에 있는 신사가 꽤 유명한 곳인지 외국인 관광객이 많았다. 우린 드라마 배경을 보러 온 것이었으므로 신사엔 들어가지 않고 공원에서 시간을 보냈다. 날 수나 있을까 싶은 뚱뚱한 비둘기가 구구 울고 있었다. 후타바와 히로키가 앉아 있던 벤치를 찾고, 서로를 떠나보내며 손을 흔드는 모습을 재현해 보기도 했다. 둘은 그 길로 헤어지지만 우리는 나란히 걸어 야키소바를 먹으러 갔다. 신기하게도 공원 바로 앞에 야키소바 거리가 있었다. 드라마를 보고 우연하게 떠올린 메뉴였는데 마침 야키소바로 유명한 곳이라니.


우연의 일치였을까. 아니면 ‘그래도 살아간다’를 쓴 작가 사카모토 유지의 장치였을까.


 



INFORMATION


#히로키가 사는 그곳 - 뉴카사 호수 (入笠湖)

마쓰모토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에서 1시간 반 정도 소요된다. 관리되고 있지 않아 위험할 수 있다.

주소 : 長野県諏訪郡富士見町富士見 入笠湖


#후타바가 일하게 되는 그곳 - 시오다히가시야마 관광농원 (塩田東山観光農園)

마쓰모토 시내에서 자동차로 1시간 정도 소요된다. 관광지가 아니라 일반 농장이다.

주소 : 長野県上田市富士山 塩田東山観光農園


#후타바와 히로키가 헤어지는 그곳 -  간다가와후레아이 광장 (神田川ふれあい広場)

걸어서 10분 거리에 니시후지노미야 역이 있고, 가까이에 센겐신사(浅間大社)도 있고, 야키소바 거리도 있어 가볼만하다.

주소 : 静岡県富士宮市大宮町 神田川の御手洗橋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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