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즈의 무희'의 배경, 시즈오카 후쿠다 료칸과 시모다 항구
무희 일행을 따라잡으려 빠른 속도로 걷기 시작한 ‘이즈의 무희’의 주인공을 따라, 우리는 차를 타고 열심히 달렸다. 아마기 고개를 곁에 두고 뻗어 있는 도로를 달려 도착한 한 료칸. 시즈오카 유가노 온천 湯ヶ野温泉 에 위치한 이곳은 무희들과 일행이 된 주인공이 머문 숙소, 후쿠다야 福田家 다. 료칸 바로 앞으로 하천이 흘러 물소리가 크게 들리는 운치 있는 공간이었다. 하천 건너에 족욕탕이 하나 있었는데, 이곳에서 재미난 이야기가 피어났다.
“저쪽 탕에 우리 애들이 와 있네요. -저기 좀 보세요, 이쪽을 봤는지 웃고 난린데요.”
그가 가리키는 손가락을 따라 나는 냇가 건너편 공동탕 쪽을 보았다. 김이 오르는 와중에 일고여덟 명의 나체가 어렴풋이 떠올라 있었다.
어둠침침한 욕탕에서 갑자기 알몸의 여자가 뛰어나오는가 싶더니 탈의장 끝에서 냇가로 뛰어들기라도 할 것 같은 자세로 서서 양손을 쭉 펼치고 무엇인가 외치고 있다. 수건도 걸치지 않은 알몸이다. 그 무희였다. 어린 오동나무처럼 다리가 쭉 뻗은 흰 나체를 바라보며 나는 마음에 샘물을 느껴 후우 깊은숨을 내쉬고 나서 쿡쿡 웃었다. 어린애잖아.
-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즈의 무희’ 중에서
소설의 주인공 ‘나’는 무희가 벌거벗은 모습을 보기 전날 밤, 료칸에 앉아서 늦은 시간까지 그치지 않던 유흥의 소리를 들었다. 그 자리 있던 무희가 더럽혀질까 봐 초조해한다. 아이 같은 무희의 모습을 보고 안도하는 장면 안에 서있으니 나도 괜히 쿡쿡 웃음이 나왔다. 소설을 읽으며 상상했던 것보다 냇가 건너편이 가까웠기 때문일까.
소설 ‘이즈의 무희’는 여러 차례 영화로 제작되었는데, 내가 본 1960년 개봉작에도 후쿠다야의 모습이 고스란히 담겨 있었다. 원작자 가와바타 야스나리는 물론이고, 무희를 연기한 여배우들이 후쿠다야에 머물렀다고 한다. 우린 ‘두 번째 밤은 이곳에서 머물 것을 그랬다’고 아쉬워하며 료칸 옆에 세워져 있는 문학비의 문구를 읽으러 걸어갔다. 문학비에는 ‘이즈의 무희’ 중에서 이곳 지명이 남긴 문장이 새겨 있었다. 물론 가와바타의 문장과 달리, 유가노의 집들엔 더 이상 초가지붕이 얹어 있지 않았다.
유가노까지는 가와즈 천의 계곡을 따라서 삼십 리쯤 내리막길을 가야 했다. 고개를 넘고부터 산은 물론 하늘색까지가 남쪽 지방답게 느껴졌다. 나와 남자는 쉴 새 없이 이야기를 주고받아 매우 친해졌다. 오기노리, 나시모토 같은 작은 마을들을 지나 유가노 마을의 초가지붕이 기슭에 보이게 되었을 무렵 나는 시모다까지 함께 여행을 하고 싶다고 작심해서 말했다. 그는 무척이나 기뻐했다.
- 가와바타 야스나리, ‘이즈의 무희’ 중에서
문학비 바로 곁에 빨간 지붕을 쓰고 있는 작은 집이 눈에 들어왔다. 사람이 살지 않는 듯했다. 위치가 너무 근사해서 남편에게 ‘이곳에서 카페 하나 차리고 싶다’고 말했다. 남편은 “아무도 안 올 것 같은데?”라고 화답했다.
음 그건 그렇지.
그래도 11월에는 문학제도 열리고 하는 것 같은데?
이미 무희 일행과 매우 가까워진 주인공을 계속따라 우린 시모다 下田 로 향했다. 그곳에서 소설 속 ‘나’는 무희와 활동사진을 보러 가기로 한다. 시모다로 향하는 길 옆에 커다란 공장 굴뚝이 하나 보였는데, 그곳에도 무희가 그려져 있었다. 페인트 색이 이미 많이 바래고 뜯겨 있었지만. 가와바타 야스나리가 노벨상을 받았을 때 이곳이 얼마나 들썩였을지 상상하게 하는 풍경이었다. 주인공 ‘나’는 여비가 다 떨어져 시모다 항구에서 도쿄로 돌아가는 배를 타야 했다. 무희 일행에게는 학교에 일정이 있다며 둘러댄다.
무희가 허락을 받지 못했기 때문에, 둘의 활동 사진전 데이트는 이뤄지지 않는다. '나'는 배에 오르고, 마지막으로 무희를 보지 못하고 떠나는 것을 아쉬워한다. 그때 배가 출발함과 동시에 멀리서 손을 흔드는 무희의 모습을 보게 된다. 무희가 손을 흔들던 항구는 이미 굉장히 세련된 모습이 되어 있었다. 나는 떠나는 배가 아닌 화려한 크루즈선이 들어오는 모습을 만났다. 소설과는 사뭇 다른 풍경. 그 풍경에 서서 소설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무희의 마지막 모습을 보고 배 안에 들어온 ‘나’는 부끄러움도 잊고 눈물을 흘렸다.
INFORMATION
후쿠다야
료칸 바로 옆에 가와바타 야스나리의 문학비가 있고, 하천 건너에 무료로 즐길 수 있는 족욕탕이 있다. 이곳은 이즈의 무희 하이킹 코스의 거점이기도 하다.
- 주소 : 静岡県賀茂郡河津町湯ヶ野236
- 홈페이지 : http://fukudaya-izu.jp/
시모다항
유람 섬을 타지 않으면 항구 주변에서 특별히 즐길 거리는 없다. 가까이에 해수욕장이 많다.
주소 : 静岡県下田市外ヶ岡1番地の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