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월 상동 이끼계곡
제대로 찾아갈 수 있을까.
걱정되는 마음을 안고 오후가 돼서야 출발했다.
영화 ‘옥자’를 보고 나서는 ‘돼지고기를 먹고 싶지 않다’는 마음보다 ‘어떻게 저렇게 맑은 곳이 있지?’란 생각이 앞섰다. 영화 ‘옥자’의 주인공은 강원도 산골에 살고 있는 소녀 ‘미자’와 그녀의 가족 ‘옥자.’ 깊숙한 산골에서 할아버지와 둘이 살고 있는 미자에게 옥자는 친동생보다도, 친구보다도 가까운 존재다. 옥자는 사실 ‘미란도’라는 기업이 프로젝트의 일환으로 만들어낸, 슬픈 운명을 갖고 태어난 돼지다. 미란도 기업은 전 세계 26개 농가에 옥자와 같은 슈퍼돼지를 한 마리씩 보내 친환경적인 방법으로 키우도록 한다.
옥자는 강원도의 맑은 공기를 마시고, 투명한 물에서 헤엄치며, 야생에서 자라는 열매를 먹고 건강하게 자랐다. 미자가 ‘매운탕이 먹고 싶다’고 소리치면 못에 ‘풍덩’ 하고 뛰어들어 물고기를 잡을 수 있게 도와주고, 데굴데굴 굴러 감나무에서 감을 떨어뜨려 준다.
모두가 비슷한 생각을 한 것 같다. ‘옥자’의 촬영지가 당연 외국일 것이라 예상했는데, 강원도 화천, 영월, 삼척, 정선 등지에서 촬영했다는 사실에 놀라워하는 리뷰가 많았다. 나도 그토록 아름다운 자연이 남아있는 곳이 어디인지 궁금해졌다. 무엇보다 옥자가 폴짝폴짝 뛰어다닌 계곡 풍경을 실제로 보고 싶었다. 옥자가 미자에게 물고기를 선물한 계곡은 삼척에 있는 이끼계곡이라고 한다. 그곳은 당분간 탐방로 조성으로 접근이 어렵다는 소식을 접했다. 삼척 말고도 영월의 계곡도 옥자에 담겼다고 하니 그곳에 가보기로 했다. 대부분의 기사에 촬영지가 ‘영월 칠량이 계곡’이라 나와 있었다. 칠량이 계곡은 캠핑장까지 마련되어 있는 곳. ‘옥자’ 속 자연을 상상하기 어려운 풍경일 듯한데…….
칠량이 계곡에 도착하니 아니나 다를까. 옥자와는 사뭇 다른 풍경이 펼쳐져 있었다. 옥자 속 계곡은 돌에 이끼가 잔뜩 낀 초록빛 풍경이다. ‘헛걸음을 하고 돌아가야 하나’ 슬퍼졌다.
“오늘 뭐하니?”
“저희 강원도 가고 있어요.”
“지금 출발하는 거니? 강원도 어디 가는데?”
“… 우리 어디 가지?”
라며 부모님과 통화를 하던 남편이 칠량이 계곡에 도착하고 나서야 검색을 하기 시작했다. 근처에 ‘이끼계곡’이라는 다른 계곡이 하나 더 있단 중요한 사실을 알아냈다. 우린 그곳에 접근하는 방법을 같이 찾기 시작했다. 관광지로 개발되어 있지 않은 곳이었다. ‘국토 재해대비 비상숙소’란 곳에 차를 대고 산길을 걸어 올라가니 왼쪽으로 이끼계곡이 보였다. 이곳이야 말로 옥자가 뛰어놀던 풍경이다. 사진을 찍는 사람들 사이에서는 꽤 인기가 있는 곳인 듯했다. 중간중간 계곡이 잘 보이는 곳에서 한 두 사람이 튀어나오곤 했는데, 모두 삼각대를 세워두고 사진을 찍고 있었다. 나야 삼각대도 없고, 오래도록 기다리며 사진을 찍을 정도의 인내와 기술도 없기 때문에 그곳에서 바라보는 풍경은 포기하고 앞으로 걸어갔다. 하지만 ‘대체 얼마나 좋은 스폿이길래 선점을 하고 있을까’ 궁금했다. 옛날에는 지금보다 이끼가 더 빽빽하게 덮여 있었다고 한다.
과거의 모습을 본 적이 없어 비교할 수는 없지만 지금도 충분히 신선하고 맑은 곳이었다. 마스다 미리의 ‘주말엔 숲으로’란 만화를 읽고 몇 해 전부터 숲 앓이를 해온 나는 드디어 제대로 된 숲을 만난 것 같다. 잘 정비된 휴양림이 아닌, 수목원이 아닌, 국립공원이 아닌 진짜 숲. 풀과 나무가 자라고 싶은 대로 자라고 있는 야생에 가까운 풍경. 오랜만이었다.
맛있는 공기는 말할 것도 없고, 주변이 온통 초록빛이어서 눈의 피로가 녹아내렸다. 초록뿐이라고 생각했는데, 바닥을 자세히 들여다보면 들여다볼수록 새로운 것이 보였다. 버섯 머리를 하나 발견하자, 다른 버섯이 보이고, 또 다른 색의 버섯이 보이고. 붉은색이 앙증맞은 뱀딸기가 보이고, 혹시 뱀이 나오면 어쩌지 걱정하고. 도시에서도 흔히 볼 수 있는 개망초이지만 이곳의 개망초는 분홍빛이 살짝 돌아 더욱 예뻐 보였다. 매연에 시달리지 않아서 일까.
자연을 그대로 느낄 수 있어 좋았지만, 삼척처럼 제대로 된 탐방로가 조성되면 좋겠다.
작은 식물들이 밟힐 걱정 없도록. 방문객들이 밟을 걱정 없도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