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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moonee Nov 02. 2017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이태준 소설 <달밤> 속 그곳, 서울 성북동

나는, "수건인가?"하고 아는 체 하려다 그(황수건)가 나를 보면 무안해할 일이 있는 것을 생각하고 휙 길 아래로 내려서 나무 그늘에 몸을 감추었다. 그는 길은 보지도 않고 달만 쳐다보며, 노래는 그 이상은 외우지도 못하는 듯 첫 줄 한 줄만 되풀이하면서 전에는 본 적이 없었는데 담배를 다 퍽퍽 빨면서 지나갔다. 달밤은 그에게도 유감한 듯하였다.

- 이태준, <달밤>의 끝



“이게 소설이라고? 일기 아니야?”

남편이 물었다.

“황수건이란 사람. 진짜 있었던 사람 같지?”


황수건이 실제로 성북동에 살았는지 아닌지 잘 모르겠지만. 어쨌든 우린 반달이 환하게 밝은 밤.

성북동에 닿았다.


주말에 어딜 가볼까 고민하다가 느지막이 일어나기도 했고, 단풍이 예쁜 곳이야 사람들이 많을 것 같아서 그동안 가보길 별러 온 성북동을 택했다. 사실 난 4년 여동안 종로에서 일을 했기 때문에 성북동이 꽤 익숙하다. 한 땐 그쪽에 있는 칼국수 집에 꽂혀, 또 다른 한 때는 돈가스 집에 꽂혀 한 달에 한 번 이상은 저녁을 해결하러 가곤 했던 동네. 그렇게 뻔질나게 드나든 곳이 어느 날 갑자기 달리 보이기 시작한 것은 회사에서 국내외 작가와 관련된 자료를 모으다 발견한 이태준(1904 ~ 미상)의 이야기 때문이었다. 그가 성북동에 살았고, 또 실제 살았던 집이 여전히 남아있단 사실을 알게 되었다. 그래서 몇 달간 성북동에 저녁을 먹으러가 아니라, 밤 산책을 하러 꼭 한 번 가봐야지 별러 온 것이다. 어서 밤이 오길 기다리며 이태준의 소설 <달밤>을 읽었다. 매우 짧은 단편이라 오래 걸리지 않았다.



<달밤>엔 황수건이란 아둔한 인물이 등장한다. 문안에서 성북동으로 이사 온 주인공 ‘나’(작가 이태준 자신 같다는 느낌이 강하게 든다.)는 황수건이란 인물을 만나게 된다. 그는 신문배달 보조일을 하고 있는데, 그의 소원은 정식 배달원이 되는 것이다. 원래 학교에서 급사 일을 했지만 쫓겨났고, 지금은 형님 집에 얹혀살고 있다. ‘나’는 눈치가 없고 미련하지만 세상의 때가 묻지 않은 황수건과 이야기를 나누는 시간이 싫지 않다. 어느 날 황수건은 ‘드디어 내일부터 정식 배달원이 된다’고 신이 나서 집에 찾아왔다. 그러나 결국 보조 배달원 자리마저 잃고, 실패는 거듭된다. ‘나’에게 삼 원을 받아 시작한 참외 장사도 망하고, 아내까지 집을 떠난다. 이토록 답답하고 슬픈 인생이 있나 싶지만, 나는 소설을 읽는 내내 주인공과 같이 ‘황수건’의 순진무구함에 빠져들었다. 요령 없는 그가 조잘조잘 떠드는 이야기를 계속 듣고 싶어졌다.


지금은 ‘수연산방’이라고 하는 전통찻집이 된 이태준의 집은 내가 이제까지 다섯 번은 족히 갔을 돈가스 집 바로 곁에 있었다. 돈가스를 먹으러 그렇게 자주 와놓고 이런 곳이 있단 사실을 이제야 알았다니. 조금 부끄러운 생각이 들었다.




달밤의 수연산방은 아름다웠다.


어린 시절 부모를 잃고 친척집에 맡겨진 이태준은 가난에 허덕였다고 하는데… <달밤> 속 묘사와 달리 이젠 부촌이 된 동네에 위치한 탓인지, 아니면 집을 물려받은 자손들이 잘 가꾸어 온 덕분인지 굉장히 근사한 모습을 하고 있었다. 이곳에서 이태준은 1933년부터 1946년까지 살았고, <달밤>(역시!), <돌다리>, <코스모스 피는 정원>, <황진이> 등의 작품을 썼다고 한다. 그러다 1946년 7, 8월경에 월북해서 초기에는 평양조선문화협회 방문 사절단의 일원으로 소련도 다녀오고 좋은 대우를 받았다. 그러다 1956년 친일적인 작품을 썼단 죄목으로 함흥까지 쫓겨났다. 그곳에서 콘크리트 블록 공장의 노동자로 전락했다고 하는데, 이후 삶은 묘연하다. (참고 : 20세기 한국 문학의 탐험) 우린 수연산방에서 차 두 잔과 인절미 떡 하나를 시켰다. 이렇게해서 25,000원. 이곳의 높은 찻값이 이태준의 삶과 대비되어 거북한 마음이 들었다. 유감하였다.


수연산방의 밤에서 빠져나와 와룡공원까지 올라갔다.


반짝이는 서울땅 위로, 높이 솟은 서울 성곽 위로,

반만 차오른 달이 하얗게 빛나고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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