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쿠다 히데오『항구마을 식당』따라 왓카나이로
낼 수 있는 주의보는 거의 다 낸 듯했다.
적설 주의보, 강풍 주의보, 풍속 주의보, 파랑 주의보, 눈사태 주의보, 천둥 주의보
더 낼 것 있나요?
오쿠다 히데오의 『항구마을 식당』을 읽은 남편이 몇 달째 레분 섬에 가고 싶어 했다. 그리고 우리가 레분 섬에 간다면 12월이어야 했다. 오쿠다 히데오도 12월에 갔으니까. 눈이 3,40센티미터는 가볍게 내리는 홋카이도의 겨울. 게다가 삿포로도 하코다테도 아니고 홋카이도 최북단에 있는 레분섬까지 간다. 숙박할 곳을 알아보았다. 고를 것도 없다. 그 시기 레분섬에 문을 연 숙박업소는 단 한 곳. 물론 현지에 가서 알아본다면 더 있을 수도 있지만 인터넷으로 예약이 가능한 곳은 펜션 우니 ペンション う〜に〜 란 곳 딱 한 곳뿐이었다. 선택지가 없으니 편하다. 펜션을 예약하고, 도착 예정인 페리 시간을 알려두었다. 그리고 이미 드문드문 기억이 나는 오쿠다 히데오의 항구마을 여행기, 『항구마을 식당』을 다시 펼쳤다.
원래는 렌터카를 이용하려고 했는데 겨울철에는 못 빌려 준다고 해서 택시를 대절한 것이다. 택시가 출발한 지 얼마 안 돼서 납득했다. 눈이 쌓이지는 않았지만 길이 여기저기 얼었다. 익숙하지 않으면 금세 미끄러질 것 같다.
- 『항구마을 식당』 중에서
갈 수 있는 거 맞나요?
결론부터 이야기하자면 레분 땅을 밟지 못했다. 페리를 타기로 한 날 라디오를 트니 겨울에 낼 수 있을 만한 모든 주의보가 다 내려 있었다. 그래도 왓카나이까진 가보기로 했다. 물론 오쿠다 히데오의 여정을 따라. 왓카나이로 향하는 길은 매우 험난했다. 일단 찻길임을 나타내는 표식은 오로지 공중에 달린 화살표뿐이었고 눈이 없는 길은 단 1m도 없다. 게다가 중간중간 눈보라가 내려 바로 앞 화살표도 보이지 않는 시간이 여러 차례. 심지어 운이 나쁘면 화살표에까지 눈이 쌓여 있는 경우도 있었다. 위험한 순간도 한 차례 만났다. 남편이 잠시 딴생각을 하던 찰나 차가 미끄러져 도로 위에서 네 바퀴 정도 빙글빙글 돌았다. 반대편에서 차가 왔다면… 상상만 해도 끔찍했다. 게다가 논(밭일 지도 모른다. 눈으로 덮여 있어 알 수 없다.) 위에 놓인 길이었기 때문에 밖으로 튕겼다면 꽤 높은 곳에서 떨어지게 된다. 빙글빙글 도는 동안 나는 ‘이거 크게 다치겠는데?’라 생각했고, 남편은 ‘어디에 전화해야 하지?’ 생각했다고 한다. 이런 고단한 길을 달려 왓카나이에 도착했다. 그리고 일본 최북단이라고 하는 소야 곶까지 더 갔다. 오쿠다의 말을 빌리면 '딱히 뭐가 있는 건 아니겠지만 왓카나이에 온 사람은 누구나 가는 곳.' 여행객은 차치하고 사람 자체를 만나기 어렵다. 화장실을 쓰러 온 화물차 운전수 한 명 정도가 그곳에서 마주친 유일한 사람이었다. 가게도 모두 문을 닫았다.
마미야 린조 동상이 서 있었다.
잘 알려져 있지 않은 사실인데, 마미야 린조 혼자 가라후토(사할린)가 섬이란 걸 발견한 게 아니라 마쓰다 덴주로와의 공동 프로젝트였다. 둘이서 좌우로 갈라져 전진하다가 만나면서 ‘이곳은 반도가 아니라 섬이다’란 게 판명되었다고 한다.
(… 중략…)
마쓰다 덴주로, 마쓰다 덴주로, 마쓰다 덴주로를 기억해주세요.
- 『항구마을 식당』 중에서
마쓰다 덴주로까지 기억하기엔, 여기 서있는 마미야 린조의 얼굴도 제대로 볼 수 없다. 이곳에선 날씨만 좋으면 저멀리 사할린도 보인다고 한다. 내가 도착한 날은 각종 주의보에서 예상할 수 있듯 구름이 잔뜩 끼어 있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사실 눈도 제대로 뜰 수 없는 강풍이 불고 있었다. 여긴 꽤 북쪽에 위치한 것에 비해서 눈이 잘 쌓이지 않다고 하는데, 이 강풍 때문이라고 한다.
시내로 돌아와 오쿠다 히데오가 먹은 문어 샤부샤부를 먹으러 구루마야 겐지 車屋源氏 에 갔다. 이 계절 왓카나이까지 오는 사람들은 대부분 사업차(어쩔 수 없이) 오는 것인지, 가게 앞에는 회사명으로 된 예약자 목록만이 가득 적혀 있었다. 예약을 하지 않고 들어와 있는 손님은 우리와 현지 주민인 듯한 노부부가 유일. 친절함에 굉장히 엄격한 식당 같았다. 직원들이 모두 정장 혹은 유니폼을 입고 있었고 몸가짐을 흐트러트리지 않고 문 앞에 나란히 서 있다. 주문을 받는 태도도, 샤부샤부에 야채를 넣어주는 몸짓도, 문어를 데우는 방법 안내도 매우 공손했다. 『항구마을 식당』에는 ‘쫄깃쫄깃한 문어와 사각사각한 상추를 동시에 맛볼 수 있는 식감도 근사하다’고 번역이 되어 있는데 양상추였다. 이 부분을 읽으면서 ‘상추를 데워먹는 건 좀 이상하지 않나’ 생각했는데 다행히도 데운 양상추는 굉장히 맛있었다. 그러고 보니 이곳에서 시킨 맥주가 재미있다. 가장 큰 사이즈 생맥주 두 잔을 주문했는데 큰 사이즈라고 해봐야 500cc가 조금 넘는 정도겠지 생각했다.
그런데... 무슨 맥주 기계를 통째로 들고 오는 줄 알았다. 너무 무거워 들기조차 어려운 무게. 귀띔이라도 줬어야지... 물론 다 마셨다.
구루마야 겐지에서 저녁을 먹고 오쿠다 히데오는 ‘미인 마담 미인 마담’ 노래를 부르며 ‘마돈나’라고 하는 스낵바로 간다. 부부끼리 스낵바에 가는 건 좀 이상하니 그 일정은 포기했다. 사실 에세이에선 그 부분이 제일 재미있으니 꼭 보시길!
다음날 아침 밧카이항 抜海港 으로 갔다. 오쿠다 히데오가 ‘베리 귀엽다’, ‘몸짓도 큐트 하다’고 한 점박이물범을 보러 가는 것이다. 오쿠다의 경험담처럼 엄청난 바닷바람이 불고 있었다. 바닥에 쌓인 눈도 입자들이 한 방향으로 길게 늘어져 있었다. 제방의 끝까지 걸어가야 물범을 볼 수 있을 것 같은데 눈이 많이 쌓여 있고 걷기 어려울 정도로 바람이 불어대서 몇 분 시도해보다 물범과의 만남은 포기했다. 오쿠다 히데오는 이 바람을 뚫고 간 것인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