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제는 회의자료를 만드는데 모르는 번호로 전화한통이 왔다. 누군가 했는데 이전에 상담소를 방문했던 이주 노동자분이 출입국사무소에 팩스와 서류를 전송해달라는 부탁을 했다. 퇴근하고 사무실에 방문하려면 오가기가 번거롭고, 간단한 작업이니 해달라고 했다. 뭔가 마음에 걸려서 망설이다가 할 수 없다고 했다. 간단한 일이라고 자꾸 강조하는데 거절했다.
거절한 게 스스로 마음에 걸리기도 해서 간단한 일인데 그냥 해줄 걸 그랬나? 내가 너무 치사한건가? 생각도 든다.
뭐가 마음에 걸렸냐면 내가 일하는 노동인권단체는 뭐든 부탁하면 그냥 해주는 곳이 아니기 때문이다. 당사자가 혼자서는 처리하기 어렵거나 부담스러운 일을 함께 해결해가는 곳이지, 당사자의 일을 대신 해주는 곳이 아니다. 내가 대신 해줘서 당장에 그들이 편리할 수 있겠지만 그게 그들에게 어떤 도움이 되는가? 아니다. 오히려 도움이 아니라 해가 된다.
이주노동자들이 한국에서 살아갈 때 곤란한 일들이 자주 있다. 한국인들에게는 간단한 서류작업, 휴대폰인증, 컴퓨터사용등이 그들에게 큰 부담으로 느껴질 수 있다. 하지만 한국에서 계속 살아갈 사람은 그들 본인이므로 기본적으로 자신이 할 수 있는 일은 자신이 처리한다는 마음가짐이 그들에겐 훨씬 중요하다. 우리 단체의 활동도 이주민, 노동자들이 스스로의 주체성을 보존하고 키워주는 방향으로 가야지, 그들의 어려움을 대신 해결해줘선 안된다.
단체를 방문하지도 않고 전화한통으로 자기 일처리를 하려는 건 자기 일을 다른 사람을 통해 손쉽게 해결하려는 것이다. 어제 일은 부탁은 간단하냐, 복잡하냐의 문제가 아니었다. 내담자의 주체성을 살려간다는 일에 대한 나의 자기규정과 연관된 문제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