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영화 셰임(Shame)을 보고

by 쓰는 사람

주인공인 브랜든은 성중독에 빠져있다. 일어나서 잠들 때까지 포르노와 자위, 성매매, 성관계에 집착한다. 그는 중독에 빠져있는 스스로를 끔찍하게 여기면서도 중독에서 빠져나오지 못한다. 매일같이 성매매를 하면서도 정작 자신과 통한다고 느껴지는 여성과는 관계를 맺지 못한다.


그는 성이 좋아서 탐닉한다기보다, 그러지 않을 수 없어서 그것에 빠져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는 성중독에 빠져서 허우적대고, 괴로워하면서도 그것에서 벗어나지 못한다.


그는 왜 중독에 빠졌을까? 성에 집착했기에 중독에 빠진 게 아니다. 그에겐 별다른 삶의 의미가 없다. 그는 살아가야 할 자신만의 이유를 갖고있지 않다. 그저 살아있으니 살아가는 그는 왜 살아가야하는가에 대한 본인만의 답이 없다. 그 빈공간의 공허함을 견딜 수 없어 순간순간의 쾌락으로 인생의 공허함을 메우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포르노나 성매매로 메워질 수 없는 다른 차원의 구멍이다. 브랜든의 성중독은 집에 있는 포르노잡지와 음란물을 모조리 버린다해서 해결될 수 있는 성에 관련된 문제만이 아닌 것이다.


브랜든과 그의 여동생은 성인이지만 미성숙하고 결핍돼 있다. 거대하고 삭막한 도시에서 고독하게, 단절된 채로 살아가는 그들 남매가 이 상황에서 벗어나기란 정말로 쉽지 않아 보인다. 영화 종반에서 브랜든은 성욕에 사로잡혀 허우적대다 비를 맞으며 눈물을 흘린다. 그에게는 자신과 자신의 삶에 대해 탐구해야하는, 삶의 의미를 만들어내야하는 지난하고 쉽지 않은 과제가 남았다. 영화를 보고난 나에게도 같은 과제가 주어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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