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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물 다섯이 될 때까지

by 쓰는 사람

불날 저녁때 대안활동가 청년들이 마을밥상에 왔다.

둘러앉아 잠깐 자기소개를 하고 배움터 유리문을 밀고 나오는데 은솔이가 말을 걸었다.

삼촌 저 좀 태워줄 수 있어요? 빨리 가방가지고 나올게요

천천히 와 천천히


희랑 솔이랑 율이를 뒷자석에 태우고 무지개길을 내려온다.

바깥에 부슬비가 오고 날이 습해서 창문에 뿌옇게 김이 서린다.

앞이 잘 안보여서 손으로 창유리를 계속 닦으면서 조심조심 차를 몬다.

애들이 자기들끼리 수다를 떤다.


솔: 그 아이 피아노에 별로 관심없어 보이던데. 그런데 피아노에 재능있어 보이던데.

희: 재능이란 건 없는거래. 뇌신경가소성이란 게 있어서 계속 하다보면 잘하게 된대.

나: ((혼자 생각)재능이 있기는 있을건데...)

희: 뇌신경가소성이란게 스물다섯살까지는 유연하데. 그때까지는 뭐든지 배우는 게 쉽고 엄청 유연하게 받아들일 수 있대.

솔: 우와, 그럼 나 스물 다섯살때까지 모든 걸 다 배워놓을래.

나: 스물 다섯까지 살아봐라, 그게 되나.


내가 던진 농담에 애들이 까르르 웃는다.

애들을 내려주고 오면서 내가 실언을 했단 걸 깨달았다.

농담처럼 한 말이지만 저 말에는 내가 삶에서 겪어온 좌절과 체념이 베어있었다.

난 뭔가 열심히 해보고 잘 안되거나 좌절한 경험이 많고, 해봤자 안된다는 생각에 붙들려있는 사람이라 저런 농담이 툭 튀어나간 것 같다.


나의 스물다섯까지의 삶의 체험에서 나온 말이다.

나는 스물다섯까지 뭔가에 푹 빠져들거나 매달려 본 적이 없다. 그냥 하루하루 별 뜻없이 살았다.

무엇이 되려고도, 무엇을 이루려고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누군가의 스물다섯까지의 삶은 나와 전혀 다를 것이다.

누군가는 스물다섯에 선생이 되고, 누군가는 2개국어를 하고, 누군가는 어려운 시험에 합격한다.

혹은 상당히 성숙한 사람이 되기도 한다. 책을 500권 이상 읽고 세계를 여행하기도 한다.

십대 초반의 아이에게 스물다섯살까지의 시간은 살아온만큼을 다시 사는것과 같다.

은솔이가 스물다섯까지 배울 수 있는 걸 몽땅 배우겠다는 마음을 가진다면, 정말 많은 것을 배울 수 있을 것이다.


농담이었지만 내 말에는 체념과 좌절의 기운이 담겨있다. 뭔가 해보겠다는 사람의 기운을 빼는 말이고 은연중에 '안될지도 몰라, 어려울거야'란 생각을 품게 할지도 모를 말이다. 나의 좌절과 체념을 다른 사람들에게 퍼뜨릴 필요는 없다. 좌절과 체념에서 벗어나 뭔가를 시도하고 이루는 건 내가 수행해야 할 과제이다.

만약에 만화 타이밍처럼 시간을 뒤로 돌릴 수 있다면 다른 말을 하고 싶다.

진짜로 그렇게 마음먹으면 소중한 걸 많이 배울 수 있을 거라고. 니가 되고싶은 모습에 가까워질 수 있을 거라고.


스물다섯이 넘고 서른 마흔이 넘어서 뇌신경가소성이 다소 둔해지더라도 사람은 얼마든지 자기 삶을 새로 만들어갈 수 있다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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