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나는 지지부진하다. 막막하다. 무기력하다. 생활이 뜻대로 잘 안된다. 나는 글 쓰는 사람인데 글을 착실하게 못 쓰고 있다. 오전 9시 30분까지는 도서관에 도착하려는데 10시 넘어 도착하고, 막상 책상 앞에 앉으면 꾸벅꾸벅 존다. 사실 절실하게 뭔가를 쓰고 싶다거나 문학상을 노린다거나 하는 어떻게든 이루고픈 목표가 없다. 그냥 좀 쉬고 싶다. 집에서 '진격의 거인' 만화영화나 보고 싶다.
그렇다고 집에만 우두커니 있을 순 없잖아. 나는 글 쓰는 사람인데, 글쓰기로 뭔가를 해보려고, 좋은 작품도 쓰고 돈도 벌려고 하루 반나절만 일하고 글을 쓰는 건데. 계속 이렇게 지지부진하게 살 수 없잖아. 삶을 바꾸려면 뭔가를 해봐야지. 내 삶을 더 낫게 만들기 위해 뭔가에 매진해 봐야지.
그래서 늦더라도 어떻게든 도서관에 와서 글을 써보려 한다. 그렇게 책상 앞에 앉으면 잠이 온다. 몸이 나른하고 피곤하다. 얼마 전 병원에서 피검사를 했더니 간수치가 정상치보다 수십 배 올라있었다. 늙고 병든 닭처럼 꾸벅꾸벅 졸다, 일어나서 기지개를 켜며 잠을 쫓아본다.
무기력하거나 졸린 건 잠을 잘 못 자서나 간수치가 높아서가 아니라 내 마음상태가 몸으로 표현된 게 아닐까. 별로 안 하고 싶다. 해서 뭐 하냐. 너 어차피 절실하게 쓰고 싶은 거 없다며? 널브러져 있을 순 없고, 뭔가를 의욕적으로 하기는 해야 할 것 같아서 도서관에 온 거 너도 알잖아? 절실하게 해야 할 뭔가가 없는데 어떻게 절실해질 수 있겠어?
나는 글쓰기를 하기 싫은 마음, 그냥 안 하고픈 마음이 있다. 하기는 해야 하는데 해봤자 잘 안될 것 같아 부담이 된다. 그 마음이랑 같이 더 이상 이렇게 못 살겠다는 마음이 있다. 변화하고 싶다. 성과를 내고 앞으로 나아가고 싶다. 별다른 성과 없이 한 해 한 해 시간만 보내려니 조바심이 난다.
그런데 내가 현재를 지지부진하고, 막막하고, 무기력하다고 느끼는 까닭은 무엇인가? 성과를 내지 못해서일까? 여태껏 그래서라고 믿어왔다. 내 욕망은 책이 잘 되는 것인데, 책이 자꾸 잘 안 되어서 이렇게 무기력한 거라고 믿었다. 어쩌면 내 무기력의 원인은 전혀 다른 곳에 있지 않을까? 내가 무기력과 막막함을 느끼는 건 성과가 없어서가 아니라, 해온 것을 별 거 아니라고, 그 정도론 성과라고 부를 수 없다고 무시해 와서가 아닐까?
나는 살아오며 해온 것들이 변변찮다고 느껴서, 어떻게든 번듯한 성과를 내야 한다고 생각한다. 성과를 내면 비로소 스스로 만족할 것이고, 뭐든 잘 못한다는 오래되고 끈질긴 자기부정이 떨어져 나갈 거고, 경제적으로 여유로워지고, 자신감이 붙고, 매일 한 걸음씩 나아가는 선순환이 만들어질 거라고.
나는 몇 년 전 책을 낸 적이 있는데 그것이 그렇게 만족할만한 성과는 아니라고 본다. 마음 깊은 곳에선 실패했다고까지 보고 있다. 왜냐하면 책이 별로 안 팔렸기 때문이다. 책이 잘 팔려서 10쇄, 20쇄를 찍는다거나, 독자들의 관심을 많이 받지도 못했다. 책이 나온 후의 삶은 이전의 삶은 크게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 과연 이것을 별거 아닌 성과로 치부해 버릴 일이었나. 이 책은 내 7년의 투병생활을 담은 책이었다. 투병생활은 나에게 눈물겹고 비참하고 밑바닥을 기었던 시간이면서, 한편으로는 글쓰기로 살아온 삶을 돌아보며 스스로에 대해 새롭게 알게 된 시간이었다. 온종일 집에서 책을 읽고 영화를 보며 처음으로 취향이란 걸 형성했다. 더는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으려 할 정도로 폐쇄적이었던 나는 스스로를 가두었던 벽 밖으로 나가 새로운 사람들을 만났고, 그 과정에서 사람들에게 좋은 사람으로 받아들여지는 경험을 했다. 고통스러운 투병생활이 지난 후에 나는 스스로를 이전처럼 창피스럽게 여기지 않게 되었다.
책을 쓰는 데는 일 년 반이 걸렸다. 퇴근 후에, 주말마다 책상 앞에 앉아 꼬박꼬박 글을 썼다. 한 편 한 편 거짓 없이 진솔하게 쓰려했다. 책이 나온 뒤에는 몇몇 독자들에게 감동적이고 울림이 컸다는 얘기도 종종 들었다.
내 삶의 중요한 이야기를 눌러 담은 책을, 반응의 규모가 대단치 않았기 때문에 대수롭지 않게 여겼다. 정성껏 쓴 책을 내가 외면해 버렸다. 이걸로 부족해. 더, 더, 더 반응이 있어야 해. 10쇄는 찍어야지, 이걸론 택도 없지. 살아오며 누구도 나에게 이렇게 냉정하고 모질고 가차 없지 않았다. 출판사 사장님만 해도 2쇄를 찍게 됐을 때 진심으로 축하해 주셨는데. 내게는 그 책이 스스로에게 가지는 의미보다 반응의 크기가 훨씬 중요했던 것이다.
몸이 아파서 몇 년간 집에만 있어야 했던 사람이 그 시간 동안 치열하게 자신을 돌아보고, 책을 읽고 글을 쓰고, 자신의 경험을 한 권의 책으로까지 써내고, 작가로 살아가게 됐다면 그것은 책이 몇 권 팔렸냐와 상관없이 대견한 일이다. 스스로를 다독이고 추스르며 꾸준히 글을 써왔기에 가능한 일이다. 그 시간을 버틴 것, 그 시간을 갈무리해 인생의 다음 국면으로 넘어간 것 자체로도 성취라고 할 수 있다. 내 가방에 참치마요 삼각김밥이 들어있더라도 내가 먹지 않는 이상 배는 부르지 않다. 대견한 삶을 살아온 걸 스스로 인식하고 인정하지 않는다면 지나온 시간의 의미가 크게 퇴색되어 버린다. 나는 내가 나름의 최선으로 그려온 그림을 검은색 천으로 덮어버렸다. 애써온 스스로에게 너무 미안한 일이다.
내가 무기력하고 공허한 건 어쩌면 당연한 일일지도 모른다. 내가 살아온 삶, 해온 것을 철저하게 번듯한 성과를 냈는가라는 냉정한 기준으로 평가하고, 성에 안 차는 건 죄다 쓰레기통에 넣어버린다. 공들여 해온 일을 와르르 무너뜨려 버린다. 하루하루 노력하며 살아온 삶을 죄다 '모자라, 기준에 못 미쳐'하며 외면해 버리니, 보람도, 배움도, 성장도 남질 않는다.
살아오며 이런 식의 행동을 붕어빵 찍어내듯 수차례 반복해 왔다.
나는 뭔가를 해오면서 무엇을 느끼고, 어떤 변화를 겪었는지 살피기보다 번듯한 성과가 아니란 이유로 쓰레기통에 넣는다. 그래놓고 해 봤자 안된다며 절망하고 무기력을 느낀다. 그렇다고 계속 퍼질러 앉아 있을 순 없으니 다시 꾸역꾸역 뭔가를 하고, 성과가 미진하다며 무너뜨려버리고 다시 공허함을 느낀다.
여기서 보이는 내 모습은 어떤가?
나는 해온 것을 스스로의 기준으로 바라보기보다 외부적인 성과로 평가한다. 딱히 스스로의 기준이란 게 정립돼 있지도 않다. 내가 해온 것의 가치는 궁극적으로 나의 생각과 느낌이 아닌 외부로 보이는 성과로 결정된다고 생각한다. 내가 해온 것에 대한 스스로의 생각, 느낌은 크게 중요치 않고, 타인의 평가가 훨씬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결국 성과란 외부의 평가에 의해 결정지어진다고 믿기 때문이다. 결국 나는 나란 사람의 가치는 타인의 반응에 의해 결정된다고 생각하고 있다.
나에게는 내게 해온 것에 가치를 부여할 권한이 없고, 외부의 반응이 내가 해온 일의 가치를 결정한다. 나는 스스로에게 내 인생의 가치를 부여할 권한이 없다고 여긴다. 왜? 내 생각이 뭐가 그리 중요하겠어. 나는 그렇게 존재감 있는 사람이 아닌데. 내가 나름의 가치를 세워봐도, 타인의 반응이 밀려오면 모래사장에 세워둔 나뭇가지처럼 휩쓸려가 버린다. 가치를 부여할 만큼 중요한 역할을 주기엔 나란 사람에 대해 별로 확신이 없다. 나는 내 인생에서 스스로를 소외시키고 있다.
나는 스스로를 무시하며 내 의견에 귀 기울이지 않는다. 내 인생에는 내가 없다. 내 안에 내가 없으므로 나의 가치는 타인의 평가와 반응에 의해 결정될 수밖에 없다. 스스로의 생각과 느낌을 무시하고 억눌러 생긴 공허한 자리를 타인의 인정으로 채우려 한다. 어쩌면 스스로의 생각과 느낌을 무시하는 것조차 철저하게 타인의 시선인 것 같기도 하다. 스스로 쌀을 재배하지 못해 수입쌀을 먹을 수밖에 없는 나라처럼, 내 안에 내가 없으니 내가 타인의 시선이라고 생각한 것을 가져와 나를 볼 수밖에 없는 것 같다.
이제까지는 내가 나를 부정하고 무시하고 억눌러왔다는 것 자체를 인식을 못했다. 이런 상태로 너무 오래 살아왔다. 내 욕구, 생각, 느낌을 스스로 억누르고, 잘못되었다고 생각하는 게 숨 쉬는 것처럼 익숙해서 나를 부정하고 무시하지 않는 삶 자체를 상상하지 못한 것 같다.
내 삶은 내가 사는 것인데, 나라는 사람의 감정, 생각, 느낌이 희미한 채로 살아가고 싶지 않다. 내 인생에서 나라는 사람을 좀 더 뚜렷이 인식하고, 타인의 반응에 휘둘리지 않고 내 삶의 주인으로서 살아가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나의 목소리를 귀담아듣지 않는 정신의 습관이 내 인생에 어떤 영향을 미쳐왔는지 찬찬히 살펴봐야 한다.
그렇다면 나에게 몸과 마음의 아픔이라는 건 내 인생에서 나를 별 볼 일 없는 사람 취급하고, 그래서 나의 감정과 생각과 욕구를 귀담아듣지 않고 흘려버리고, 결국 내 인생에서 내가 없어지는 것. 내 인생에서 내가 보이지 않는 것. 내 안의 나를 인식하지 못하게 되는 것. 내가 나를 스스로는 인식할 수 없으니 타인의 시선으로 나의 존재감을 확인하려 들 수밖에 없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