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심리상담공부를 하는데 '통증심리'라는 과목을 듣고 있다. 이 과목에서는 내담자의 마음과 몸의 아픔이 몸의 통증으로 나타날 수 있단 것을 전제로 하고, 내담자의 몸과 마음의 아픔, 삶의 어려움을 어떻게 해결할 수 있을지를 공부하고 고민한다. 기존에 교수님과 상담을 했던 내담자들의 사례도 다루지만 수업에 참여하고 있는 학생들이 경험하는 통증에 대해서도 얘기를 나눈다. 자신의 통증경험을 이해하고 해석하는 건 내담자의 경험을 이해하는 토대가 되는 듯하다. 나는 교수님과 동료들에게 내 통증을 이해하지 못한다는 말을 종종 듣는데, 이해를 못 하는 스스로도 참 답답하다.
나는 과거부터 몸이 아팠다가 나았다가 시름시름 앓기를 반복하며 살아왔다.
이십 대 중반에 목과 허리가 아파서 7년 정도 집에만 있어야 했다. 나는 당시에는 이것이 목과 허리 자체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했고, 몸이 나은 것은 내 몸에 잘 맞는 운동법을 찾아서, 즉 물리적인 효과 때문이라고 믿었다. 후에 몸이 아팠던 건 마음의 아픔이 몸으로 나타난 것이고, 나은 것은 내가 실천한 운동법이 효과가 있다고 믿어서, 즉 심리적인 방식으로 나았다고 생각하게 되었다.
3년 전쯤에는 폐가 안 좋아져 객혈을 심하게 했다. 처음에는 비결핵항산균에 감염됐다고 생각해 약을 쓰려했고 동시에 '정체성과 의미가 없는 마음의 아픔'이 원인이라고도 믿었다. 황박사님 상담과 김원장님 진료 후 의사들이 말하는'비결핵항산균'이 객혈과 기침의 원인이 아니며 내 증상은 단순히 폐 상태가 안 좋다는 걸 보여주는 것일 뿐이라고 생각하게 됐다. 이후 1년 정도 운동과 식이를 꾸준히 하며 증상이 호전되었다. 나는 운동과 식이를 한 덕분에 몸이 좋아졌다고 생각하며, 운동과 식이가 아니라면 도대체 무엇 때문에 좋아졌나?라는 의문이 있다.
운동과 식이를 실천한 1년 동안은 내 몸이 약하고 문제가 있다는 믿음을 하나하나 깨나 간 시간이었던 것 같다. 무릎이 아파서 달릴 수 없고, 소화력이 약해서 빼빼 마른 상태일수밖에 없고, 관절이 아파서 근력운동을 못하고... 나는 아픈 것을 증명할 수 있는 수많은 증상목록을 가지고 있었다. 몸에 통증과 불편함이 느껴져도 운동을 지속하고, 운동강도를 높이고, 먹는 양을 늘려가면서 건강에 대한 믿음은 '몸이 약하고 결함이 있다'에서 '내 몸은 멀쩡하다'는 믿음으로 바뀌어갔다. 나는 건강이 망가져서 복구할 수 없다는 믿음을 고수하고 있었고, 그 믿음의 테두리 안에서 살아왔음을 알게 되었다. (동시에 몸이 예전보다 훨씬 좋아졌음에도 나는 보통사람들보다 건강이 안 좋다고 믿었다.)
난 몸이 아픈 건 내 인생의 기본값이고, 내가 아픈 건 아주 특이하고 안 좋은 경우이기 때문에 나아질 가능성이 아주 낮다고 생각했다. 그래서 건강에 대해 체념하는 마음으로 살아왔다. 건강이 너무 안 좋아서 밑바닥을 기듯이 하루하루 살아만 가던 시절도 있어서 사람들 틈에 섞여 사회생활을 할 수 있을 정도의 건강상태면 감사해야 한다고 생각하기도 했다. 그런데 1년 동안 절대 나아질 거라 생각하지 않았던 몸이 나아졌다. 무릎이 아파서 못 달린다고 생각했는데 10킬로 마라톤을 뛰었고, 오십 킬로에서 육십 킬로까지 체중이 늘었다. 난 해봤자 안된다는 생각에 젖어 살았는데 '해보니까 되네'의 경험을 한 것 같다.
좀 특이한 경험이지만 육류만 먹으면 여드름이 나서 고민이었는데 난 이것이 내 몸에 문제가 있어서라고 생각했다. 육류를 먹어서가 아니라 '육류를 먹으면 여드름이 날 거라고 믿어서'여드름이 났단 걸 인식하고서는 더 이상 여드름이 안 난 적이 있다.
통증에 대한 내 글을 읽은 교수님은 내가 왜 스스로의 몸이 나은지 모른 채 엉뚱한 이유로 나았다고 믿고 있다고 했다.
내 안에서는 증상에 대한 여러 경험이 뒤죽박죽 뒤섞여 있다.
허리통증 -> 특정 치료법으로 좋아짐(물리적 방법)
폐의 증상-> 운동과 식이를 통해 좋아짐(물리적 방법)
여드름 -> 여드름에 대한 믿음을 인식하니 좋아짐(심리적 방법)
소화불량과 장트러블 -> 내 안에 상반되는 마음을 인식하니 좋아짐(심리적 방법)
허리든 폐든 여드름이든 소화불량이든 마음의 아픔이 몸으로 나타난 것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어떤 건 물리적 방법으로, 어떤 건 내 믿음을 확인해서 좋아졌다. 마음의 아픔이 몸의 증상으로 나타났을 때 물리적 방법으로 좋아진 경험도 있고, 심리적 방법으로 좋아진 경험도 있어서 몸이 좋아지는 것을 어떤 식으로 파악해야 할지 혼란스럽다. 길을 잘못 들어서 같은 곳에서 빙빙 돌고 있는 것 같다.
나는 과거에는 마음의 아픔이 몸으로 나타난단 걸 몰랐고, wpi심리상담을 알게 된 뒤에는 그것을 인정했다. 그래서 증상이 좋아진 것에 대해 과거에는 '특정한 운동법'으로 나아졌다 생각했고, 현재는 '특정한 운동법이 효과 있으리란 믿음'으로 나았다고 생각한다. 나는 '물리적 방법'에서 '마음인식'으로 생각이 진전됐으니, 좀 더 현실인식을 똑바로 한 것이라 믿었지만 특정한 방법 덕분에 좋아졌다고 믿은 것에 있어서는 물리적 방식이든 심리적 방식이든 동일하다. 그리고 새롭게 얻은 믿음마저 문제의 본질, 신체증상의 실제 의미를 파악하는 것과는 거리가 먼 것일 수 있다.
허리가 아팠을 때 안 좋아진 게 허리의 문제라고 믿거나, 좋아진 게 좋은 치료법을 찾아서라고 믿거나, 나중에는 '치료법에 대한 믿음'덕분에 나았다는 것은 각각 다른 믿음처럼 보이지만 특정한 무언가가 원인이나 해결책이라고 믿는 것, 그리고 증상에 주목한다는 점에서는 닮아있다. 문제의 본질인 마음을 읽는 것에서는 빗겨나가서 증상에만 주목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