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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쓰는 사람 Feb 20. 2021

머리도 안 감고 추레한 옷을 입고

보슬비가 내리는 4월 밤에 산책하러 나갔다. 가로등불빛 아래 벚꽃이 활짝 핀 모습이 너무 이뻐서

한참동안 바라보았다. 꽃을 좋아하지도 않고 뭔가를 느긋하게 바라보는 습관도 없지만 이렇게 이쁜 풍경을

보려는 시도조차 하지 않는 건 누군가에게 받은 선물상자를 풀어보지도 않고 버리는 것만 같다. 

 머리도 안감고 추레한 옷을 입고 길을 걷는다. 멋지게 옷입은 사람들이 휙휙 지나가서 주늑들기도 하지만

10초정도 지나면 저들도 나도 서로를 잊겠지. 내가 사는 동네엔 아는 사람을 만들지 않는게 편하다. 

 우리동네엔 사계절 내내 머리를 길게 기르고 롱코트를 입은 걸인 아저씨가 돌아다닌다.

 우리동네 사람들의 무의식엔 그 아저씨의 모습이 드문드문 박혀 있을 것이다.

 나도 맨날 추레한 몰골로 산책을 하니 내 모습도 그 아저씨와 함께 박혀 있을지도 모르겠다.  

 강변대로로 가는 길에 우리쌀,우리밀 건빵 봉지를 발견했다. 우리쌀함량 31%,우리밀함량32% 쇼트닝이

함유되긴 했지만 그럭저럭 먹어도 될 것 같은 과자다. 뒷면에 적힌 www.armyfood.co.kr

을 되뇌고 또 되닌다. 집에가면 검색해 봐야지.(이걸 뜨게 하려고 한 건 아닌데 단지 주소를 적었을

뿐인데 왜 이런 그림이 생겼지?)  

  낙동강 옆에 붙어있는 이 길을 수없이 많이 걸어다녔다. 길을 따라 걷다 아무도 없을 땐 노래를

부르기도 하고 아무 생각도 하지 않으려 하기도 하고 특정 생각을 붙잡고 늘어지기도 한다.

강변을 따라 일정한 간격으로 심어져 있는 수백그루의 가로수들은 어쩌면 나를 친근하게

느낄지도 모르겠다. 그들은 어쩌면 날 조금은 이해하고 있을지도 모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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