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료함은 곧 우리의 평화였다

by 이숨



기다리던 만삭사진 액자가 도착했다.

가슴 앞에 배냇저고리를 들어 보이는 남편, 아기양말을 흔드는 내 모습이다.

콘솔장에 진열했다. 그 뒤로 지금보다 훨씬 슬림했던 결혼 전의 우리가 대형 액자 속에서 미소 짓고 있다.

이제는 하나의 문화가 된 만삭사진. 하지만 아기와 함께한 나의 둥근 배만 남기려던 건 아니다.

오히려 아기를 만나기 직전 둘만의 시절을 예쁘게 찍어 두고 싶었다.

가장 젊고, 가장 단촐하며, 가장 평온했던 2인 가족의 마지막 시간을.

우리는 모든 시절을 평화롭게 보내는 중이다.



임신 전에는 할 일 없이 무료한 저녁도 많았다.

소파에 각자 앉아 남편은 게임을 하고 나는 책을 보거나, 넷플릭스 콘텐츠만 오래도록 고르다 그냥 TV를 끄고 잠들기도 했다. 간단히 술을 마시며 기분좋게 하루를 마무리하기도 했다.

그 시절의 하루하루에 대단한 이야깃거리는 없었다. 하지만 이제는 이 무료함조차 아련하게 다가온다.

알고 있다.

그 평범한 저녁들이 얼마나 귀한 시간이었는지를.

얼마 남지 않은 조용함 속에서, 우리는 매 순간을 곱씹는다.



곧 우리는 시끄러워질 것이다.

울음소리, 기저귀 갈기, 수유 알람, 어딘가 아픈 아이의 기척까지—

한동안은 제대로 잠을 못 자고 예민해질 테다.

여유롭게 먹는 밥 한 끼가 큰 선물처럼 다가오기도 하겠지.

그리고 언젠가는, 아무 일도 없이 무료하던 어느 저녁을 그리워하게 될지도 모른다.



하지만 지금 이 순간에도 내 뱃속에서 분주한 움직임을 만드는 아기를 느낀다.

스윽, 스윽. 갈비뼈를 밀어내듯 움직이는 작은 생명. 이제는 힘이 꽤나 강해졌다.

누워 있다 보면 아기가 기지개를 켜는 듯, 발로 차는 듯. 엄마인 나와 대화를 시도하는 느낌이 든다.

그 움직임은 내 몸보다도 감정을 흔든다.

한 번씩 생각한다.

지금 이 조용함은 언제까지일까?

이 잔잔한 오후와 조용한 밤들이 언젠가는 다시 돌아올까? 돌아와도 그 때는 이미 젊지 않겠지.

그런 질문 속에서도 마음은 묘하게 안정된다.

현재를 충분히 음미하고 있다는 것을 스스로 알고 있기 때문이다.



우리는 이 시절을 낭비하지 않고, 잘 기억하려 애쓰고 있다.

서로를 더 자주 마주보고, 둘만 함께 걸으며 이야기를 나누고, 무료했던 시간을 ‘무탈했던 나날’로 기억하게 될 것을 안다.

액자 속 사진을 바라본다.

이것은 단순한 기록이 아니다. 곧 시작될 새 가족의 나날을 기꺼이 맞이하겠다는 다짐이기도 하다.

언젠가 시간이 멀리 흐른 뒤, 이 젊고 조용했던 날들을 다시 불러올 수 있기를 바란다.

그날의 나는 지금의 나를 떠올리며 알게 될 것이다.

이 순간이 우리를 잇는 가장 단단한 다리였음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