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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이 Jan 14. 2019

그냥 물에 떠 보세요 보노보노처럼

어쩌다, 수영

Joanne Ho


내인생에서 수영은 따지고 보면 엇갈린 인연이었다.


12살 때 학교에서 단체 수영수업을 가기 전날 밤 나는 12살 인생 최고의 고통을 경험했다. 지각한번 않고 학교 열심히 다니던 성실한 나를 처음 늦게 만든건 바로 중이염이었다. 그때 귀가 얼마나 아팠는지 수영을 하면 중이염에 잘 걸린다는 누군가의 말에 그 이후로도 수영장 근처에도 가지 않았다.


두번째는 이십대 중후반. 주6일, 새벽 1시 퇴근을 밥먹듯이 하던 부서에서 2년을 보낸 뒤 인생의 허무함과 직장인 사춘기가 찾아왔다. 직장인이 겪는 이유없는 허무함에는 '00학원 새벽반 수강'이 최고 아닌가. 그때 무슨생각으로 집 옆 수영장을 등록했는지 모르겠다. 그 전 해 여름 동생과 세부로 휴가를 갔다. 물에 대한 공포 때문에 거기까지 가서도 바다에 들어가지 않던 나는 물개처럼 바다에서 뛰어놀던 필리핀 아이를 부럽게 바라봤었던것 같기도 하다.


허리춤 간신히 넘는 깊이의 수영장 물에서 익사라도 할까봐 온몸에 힘을 아둥바둥 주고 있을 때 당시 수영강사가 한심해하며 했던 말이 생각난다. "아니 어떻게 물도 안먹고 수영을 배우려고 합니까"

지금 생각하면 지극히 맞는 말이지만 단체강습은 지루하기 짝이 없었다. 대학원생이었던 새벽반 강사는 영혼을 매일 집에 두고 오는 듯 했고 그쯤 수영입문자 누구나 겪는 1차 수태기(수영권태기)가 찾아왔다. 바로 평영 킥이다. 나의 평영 킥을 보던 강사가 고쳐줄 생각은 않고 "어휴 그게 왜 안돼요?"라고 한숨을 쉬었을 때 나는 그길로 수영을 그만뒀다.


그리고 세번째. 진짜 운명처럼 수영이 찾아왔다. 디스크 MRI 영상을 확인하고 나서다. 그당시에는 허리때문에 아기를 들 수 조차 없을때였다. 어떤날은 우는 아기 옆에서 아기를 안아서 달래주기는 커녕 일어나 앉을 수도 없어 같이 누워서 엉엉 울었던 적도 있다. 내 스스로가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엄마처럼 느껴졌다.


디스크의 고통은 겪어본 사람이 아니면 설명하기도 어려운 그런 고통이다. 허리가 아픈건 물론이거니와 요추 4,5번 사이에서 탈출한 내 디스크는 오른쪽 다리로 내려가는 신경을 눌렀다. 오른쪽 발 발가락 끝까지 내려가는 그 저릿한 느낌으로 나는 한동안 오른쪽 다리를 절었다. 아기를 간신히 재우고 침대에 누우면 다리가 마치 내것이 아닌것 처럼 느껴질때도 있었다. 운동이나 치료는 불가능했다. 혼자 오롯이 하루종일 (어떨때는 밤새)아기를 돌보면서 물리치료를 받는것도 그나마 남편이 쉬는 주말 하루 누리는 호사였다.


하늘도 너무했다 생각했는지 그즈음 나는 파트타임 아이돌보미를 어렵게 구했다. 한줄기 빛이었다. 그리고 운명처럼 마침 그 시간에 집에서 5분 거리 수영장에 초급반 강습이 개설됐다.


첫날 강습에 어떻게 갔는지 기억조차 나지 않는다. 분명 머리는 산발을 하고 어깨에는 이유식을 묻힌 채 달려갔을 것이다. 10분 지각한 것만 머리에 생생하다. 선생님은 첫날 이렇게 얘기했다.


"우리 오늘은 아무것도 안할거에요. 한바퀴 물속을 쭉 걸어갔다 오시구요. 그다음에는 그냥 다같이 물에 둥둥 떠볼거에요"


다같이 다리에 기분좋게 감기는 물을 느끼며 걷는 레인 할머니들처럼 느릿느릿 수영장을 한바퀴 돌았다. 그리고 물을 이불삼아 물 위에 엎드렸다. 아 물 위에 떠있는게 이런 느낌이구나. 정말 죽을것처럼 힘들고, 숨막히고, 버둥대는 것만은 아니구나.


보노보노처럼 수영장 천장을 보고 둥둥 떠있는게 아니라 수면 아래를 바라보고 떠있긴 했지만 지금 생각하면 그 첫시간의 '아무것도 안함'으로 내가 수영을 계속 할 수 있었 던 것 같다.


물속이라는거 사실 아무것도 아니야. 바닥도 저렇게 잘 보이고. 원하면 언제든지 발을 딛고 설 수 있어. 그냥 이 정도 물에서 앞으로 나가는걸 배우는거야. 그냥 이렇게 몸에 힘을 다 빼고 엎드리면 언제든 둥둥 뜰 수 있어. 보노보노처럼!


그 이후로도 그 허리춤 물 깊이를 극복하는데는 시간이 꽤 걸렸지만 어쨌든 첫 시작으로는 아주 좋았다. 출산과 육아, 그리고 디스크로 만신창이가 된 그때는 정말 아주 잠시라도 보노보노처럼 물에 떠있을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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