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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이 Jan 14. 2019

첫사랑이 떠나고 다음 사랑이 왔다

어쩌다, 수영

작가: Joanne Ho



나는 요가를 정말 좋아했다.


5년간 사랑한 요가가, 아니 내 과욕이 내 뒤통수를 치기 전까지는.

 

출산 후 마음이 한껏 조급해진 나는 자는 아기 옆에서 틈틈히 스트레칭을 했다. 그때는 길을 걸어가는 저 수많은 예쁜 아가씨들처럼 빨리 날씬해지고 건강해진 옛 모습으로 돌아가고 싶은 마음뿐이었으니까.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라는 강한 후굴 자세를 하다 허리를 삐끗 하기 전 까지는. 아기가 100일 됐을 무렵 겪은 그 '삐끗'이 나를 그 이후로 내내, 어쩌면 평생 괴롭히는 신호가 될 줄 그때는 몰랐다.


첫번째 병원 의사는 마치 작은 중소기업 CEO 같았다. 일주일 간격으로 스테로이드 주사를 3개월 간 맞으라고 했다. MRI도 찍을 예정이니 괜히 돈들어간다고 안아픈 '척'하지 말라고도 했다. "선생님 주사도 좋지만 저는 좀 더 근본적인 치료를 했으면 하는데요" 그 사장님, 아니 의사선생님은 나를 '안아키' 신봉자 보듯하며 "아니 독감에 폐활량을 늘리실건가요?"라고 말했다. 결국 20만원을 내고 주사를 맞았고, 효과는 없었다. 지금도 그 병원 광고가 붙은 버스를 보면 하루 일진이 아주 사납다고 생각한다.


두번째 병원 의사는 "애기가 어리면 무조건 쉬어야죠"라며 측은한 눈빛으로 나를 바라봐줬다. 적어도 환자가 얼마나 아픈지 공감은 해주는 사람인가보다 해서 MRI 촬영 비용을 기꺼이 결제했다. MRI 사진이 화면에 뜨고, 의사는 작게 한숨을 쉬었다. 그리고 나를 더욱 더 측은한 눈빛으로 쳐다봤다. "요추 4,5번 사이 심하게 튀어나온것 보이세요? 아주 안좋아요" 드라마 속 비련의 여주인공처럼 "선생님 제가 그럼 수술해야하나요?"라고 자세히 물어보고 싶었지만 집에는 빈 분유병을 들고 기다리는 우는 아기가 있어 그럴 여유조차 없었다.

 

"수술이나 시술은 나중에 생각하세요. 당분간 허리 쓰지 마시고 통증 없어지면 가벼운 운동부터 하세요"


요가와의 일방적인 이별 선언이었다.


내 MRI 결과가 너무나 충격적이라 온갖 인터넷 검색과 책을 찾아본 결과 강한 전굴과 후굴 동작이 반복되는 요가 동작, 특히 내가 그동안 수련했던 아쉬탕가 요가는 내 일자 허리에 독약이나 마찬가지였다. 아니다. 요가는 아무 잘못이 없지. 그렇게 눈에 보이는 화려한 동작, 다른 사람의 동작에 매몰되지 말라는 선생님의 말씀 따위 무시하고 아득바득 '난 할거야, 할수 있어, 남들처럼 물구나무도 설 수 있고 후굴로 땅도 짚을 수 있어'를 되뇌이며 무리하게 버텼던 내가 만든 결과였다.


나는 정말로 정신적으로 힘들었던 시기에 요가를 만났다. 그리고 많은 위로를 받았다. 무엇보다 운좋게 정말 좋은 요가 선생님들을 만났다. 아사나의 완성이라는 굴레에서 벗어나 그저 매일매일 내가 나아지고 있음을 느끼면 그만이라는 것도 그 선생님들과 요가를 통해 배운 것이다. 그래도 조급함은 버릴 수 없었다. 출산 후에도 언제 다시 요가를 시작할 수 있을까 싶어 요가 동영상과 사진을 보고 또 봤다. 우연히 누군가의 완벽한 '우르드바다누라아사나'를 봤을때는 정말로 첫사랑에게 실연당한 비참한 마음마저 들었다.



그리고 요가가 떠나고 수영이 나를 찾아왔다.


검색과 조언을 거듭 구한 결과 결국 내게 남은 유일한 운동은 수영이었다. 평영, 접영은 안된다, 된다 말이 많았지만 그건 일단 다시 시작하고 고민할 일. 이 극심한 좌골신경통을 없앨는 운동이라면 주저할 이유가 없었다. 유일한 치료제를 찾아 헤매는 불치병 환자처럼 나는 수영장을 찾아 그 길로 강습을 결제했다.


나중에 다시 정리해볼 기회가 있길 바라지만

요가와 수영은 정말로 닮은 운동이다.

남의 시선 신경쓰지 않고 매일매일 내가 연습하는 만큼 자세를 가다듬고 나아질 수 있다는 것,

매트 한 장, 레인 하나의 공간만 있다면 얼마든지 그 위에 몸을 맡길 수 있다는 것,

여럿이 하면서도 또 결국은 아주 외롭게, 철저히 외롭게 혼자 해내야 하는 운동이라는 것,


때로 무엇인가 하나 나를 떠나면

반드시 다른 하나가 나를 찾아온다.


내겐 수영이 그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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