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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이 Jan 14. 2019

암이라구요, 암!

어쩌다, 수영

작가: Maria Svarbova


수영을 다시 시작한 이후 첫 번째 수태기(수영권태기)는 평영킥이 아니라 다른 이유였다.


수영은 더할 나위 없었다. 나는 주6일 수영장을 갔다. 수영장이 일요일 문을 닫으면 일요일 문을 여는 가장 가까운 수영장도 수소문해서 갔다. 킥도 엉망이고 자유형 팔돌리기도 엉망이었고 특히 호흡은 더 엉망진창이었다. 심지어 평영 킥을 처음 배울때는 뒤.로.갔.다!  "여러분 여기 회원님 보세요. 이렇게 차시면 뒤로 가요. 다들 절대 이렇게 하시면 안되요"의 사례가 바로 나였다. 킥이 엉망이든 숨쉴때 고개를 '살려주세요'하듯 들든 나는 내가 물 속에서 앞으로 나간다는 사실이 너무 즐거웠다.


그 전화를 받기 전 까지는.


그즈음 내 주변에는 유방암이 말 그대로 '유행'이었다. 가까운 지인중에만 유방암 수술을 한 사람이 셋이었고, 건너 아는 중년 여성분이 전이도 심각한 유방암 판정을 받았을 때는 정말이지 겁이 덜컥 났다. 디스크때문에 모유수유를 중단한 직후 나는 동네 여성병원에 유방초음파와 갑상선초음파를 예약했다.


의사의 표정은 헤어지자는 말을 꺼내야 하는데 어떻게 시작할지 몰라서 안절부절하는 말주변없는 남자친구 같았다.


"같이 일하는 다른 선생님이랑도 상의했는데 갑상선 조직검사 결과가 애매해서요. 제가 친한 대학병원 선배한테 전화를 해뒀으니 거기로 가보시는게 좋겠어요. 아무래도 가족력이 있어서..."


설마 암이겠나 싶었다. 나는 올해 이미 지지리도 운이 없었지 않은가. 요추 4,5번 탈출, 경추 6,7번 눌림으로 이미 다리저림, 팔저림을 안고 애를 보고, 그와중에 허리를 고쳐보겠다고 안되는 몸으로 이제 막 물에 떠서 발을 버둥거리는 불쌍한 초보 엄마가 아닌가. 아기는 이제 밤잠을 자기 시작했고, 이제와서 나보고 암이라고 하는건 반칙이었다. 옆에 누군가가 있다면 멱살을 잡고 따져묻고싶었다.


거 참 너무하시네, 시험에 들게 하시려면 1년에 하나만 합시다.


대학병원은 마치 맥도날드 같았다. 네 다음손님이요. 세상에 암환자가 그렇게 많은지 나는 암센터에 들어서고나서야 알았다. 간호사들은 지쳐있었고 1번부터 10번까지 모든 방문앞에 환자가 넘쳐났다. 나이든 사람도 있었고 젊은 사람도 있었다. 늙은 할아버지부터 머리를 하얗게 민 아기도 있었다. 누군가는 가족들의 부축을 받으며 눈물을 흘리면서 방을 나왔고, 누군가는 수술 날짜를 잡는다고 회사 상사와 전화로 신경전을 벌이고 있었다. 지옥이 있다면 바로 여기였다. 그리고 나는 잘못한 것도 없이 지옥과 이승에서 아슬아슬하게 줄을잡고 심판을 기다리는 억울한 죄인같은 심정이었다.


의사는 조직검사를 다시 분석해 본 뒤 나오는대로 전화를 주겠다고 했다. 그리고 그 전화가 왔다. 그날도 수영을 마치고 타는 목을 잠재우기 위해 북적거리는 스타벅스에서 아이스아메리카노를 막 받아들고 나올 때였다.


"네 뭐라구요? 잘 안들려요"

"저희가 분석하기로는 암 확실해요, 암. 이거 떼내셔야 해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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