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쩌다, 수영
참 이상한 일이다.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른점이 없는데 '암입니다'라는 말을 들은 이후로 일상이 무너져내렸다. 우선 동생에 이어(동생은 5년전 나보다 더 큰 암수술을 했다) 자매가 나란히 암이라는 사실에 부모님 마음이 무너져내렸고, 수술과 입원 준비를 앞둔 아내를 돕느라 장기출장이 예정돼있던 남편의 모든 스케줄이 무너졌다. 9개월된 딸만 가장 장하게도 잘 먹고, 잘 기고, 잘 웃으며 어제와 다름없는 일상을 유지하고 있었다.
가장 처음 드는 감정은 가슴이 터질것 같은 억울함이었다. 나는 누구 가슴에 못박은적도 없고 답답할만큼 성실하게 살아왔는데 내게 왜 이런일이? 뭐 이런 감정이다. 두번째는 '도대체 언제?'였다. 수술을 앞두고 잠을 이루지 못하는 밤이면 '00팀에 있을때였어. 그때 술을 너무 많이 마셔서 그랬나봐', '아니야 00팀인것 같아. 그때 정말 스트레스 많이 받았었는데' 부질없는 후회였다. 이런 감정이 불쑥불쑥 찾아오는 불청객 같은 것이라면 돌도 채 되지 않은 아기를 바라보며 느끼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죄책감은 눈치도없이 집에 눌러앉아있는 객식구같은 것이었다. 속없는 사람들이야 '착한암'이니 '로또암'이라고 표현하지만 같은 암에 걸려 동위원소 치료는 물론 재수술까지 받은 동생을 바라본 나는 이 암을 겪은 사람들이 어떤 마음인지 누구보다 잘 안다.
많은 사람들이 갑상선암이 생존률 높은 착한 암이라고 알고있지만 호랑이 새끼도 호랑이고, 암은 암이다. 95% 가까운 경우가 갑상선암 중에서도 '착한' 암일 뿐 소수는 재발률도 높고 전이위험, 사망위험 높은 정말이지 운 나쁜 케이스도 분명히 있다. 그러니 제발 누군가를 위로하기 위해 '착한암'이라거나 '거북이암'같은 말은 하고싶다면 제발 참아주시라. 분명 암이라는 지인에게 어떤 위로가 좋을지 고르고 골라 찾아낸 말이겠지만 내 주변 암환자들의 반응은 대체로 이랬다.
"갑상선암이 영양제야 뭐야? 그렇게 좋고 착한 암이면 왜 나만 걸려?"
디스크 진단 받은지 두달만에 암진단까지 받았는데 이번에도 내가 아니라는 법은 없지 않은가. 폐나 뼈로 전이되었으면 어쩌지? 수질암이나 미분화암이면 어쩌지? 한번 시작된 불안한 생각은 꼬리에 꼬리를 물고 이어진다. 그리고 금세 버틸수 있는 마음과 일상을 무너뜨린다. 그렇다고 울고만 있을수는 없는 일이었다. 집에는 기어다니느라 정신없는 딸과 매일 야근에 시달리며 바쁜 날을 보내는 남편이 있었다. 내가 지켜야할 일상이 있었다.
2008년 베이징올림픽 때 마이클 펠프스의 유명한 일화가 있다. 펠프스는 남자 200미터 접영 결승 당시 수경에 물이 조금씩 들어오는 걸 느꼈다고 했다.
"50미터를 남겨놓고는 수경 안에 물이 가득 찼어요. 결승점도 보이지 않았어요. 저는 그냥 제가 이기기만을 바랬어요"
결과는 금메달이 아니라 세계신기록이었다. 펠프스는 매일 머리속에서 그만의 '멘탈 비디오'를 돌렸다고 했다. 스타트와 돌핀킥, 그리고 첫번째 스트록부터 마지막 결승점까지 그가 생각할 수 있는 가장 완벽한 경기를 머리속에서 매일 그렸다. 그리고 경기하는 날에도 그 완벽한 루틴 비디오는 여전히 재생중이었다. 수경에 물이 차는 불상사가 아니라 다리에 감각이 사라지는 재난을 겪었어도 펠프스는 알았을 것이다. 결승점까지 스트록을 몇번 해야하는지, 몇번 숨을 쉬어야 하는지, 터치패드까지 얼마나 남았는지.
그래서 나는 수영을 갔다.
일주일에 8만 미터를 연습한다는 수영신 펠프스에 비할수는 없지만 때는 한참 나를 한 번 좌절시켰던 평영 진도를 나가고 있을 때였다. 나는 내가 암이라는 사실을 잊기 위해서라도 수영을 갔다. 10분 먼저 가서 10분 더 연습하고 왔다. 안되는 평영킥으로 꾸역꾸역 앞으로 나갈때며, 상급레인의 오리발 접영이 일으키는 거친 파도가 꾸물꾸물 배영을 하는 내 얼굴에 쏟아져도, 나는 수영을 했다. 선생님이 '지금까지 한 자유형중에 가장 잘 한 자유형이였어요'라고 말할 때 까지 연습을 했다. 보이지않는 손이 내 인생을 자꾸 후퇴시키려고 해도 나는 꾸역꾸역 앞으로 나간다는 걸 느끼고 싶었다.
디스크든 암이든, 전쟁이 일어나든 나는 굴복하지 않을 작정이었다. 아침에 일어나서 딸에게 밥을 먹이고, 수영을 하고, 또 아기를 보고, 설거지를 하고, 빨래를 하고, 청소를 했다. 그리고 암이든 뭐든 나의 일상을 무너뜨리려는 것에게 어제의 나와 오늘의 나는 다르지 않다는 것, 나는 어떻게든 하루를 살아내겠다는 것, 나와 내 일상을 빼앗을 수는 없다는 것을 보여주고 싶었다.
CT를 찍는 날 암이 다른 조직으로 전이됐을까 마음을 졸이던 아침에도 수영을 했다. 입원 기간 아기를 맡길 사람을 고민하면서도 수술 전날에도 수영을 했다. 이유식을 만들고, 빨래를 하고, 아기를 재웠다. 그리고 다음날 짐을 싸서 혼자 병원으로 갔다
진단부터 수술받기까지 그 한 달 동안 나는 매일 더 열심히 수영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