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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이 Mar 23. 2019

엄마는 가방속 마음들과 함께 수영장으로 향했다

어쩌다, 수영



갑상선 암은 통증이 없다. 그런데 아주 가끔 심한 마음의 통증을 겪을 때가 있다.

나는 수술 직후 한동안 모든 면에서 무척 삐딱했다. 어쩔수 없는 일인 걸 알면서도 수술한 아내를 두고 한달이 넘는 장기출장을 떠난 남편에게도 서운했고, 갑자기 잘 먹던 이유식을 거부하는 딸에게도 화가났다. '언니는 너무 병을 예민하게 받아들이는 것 같다'라고 말하는 동생의 말이 그렇게 섭섭했다. 그저 갑작스레 찾아온 내 불행의 원인을 누군가에게 돌려 마구 비난하고 싶은 마음 뿐이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탓하고 싶은 사람은 사실 엄마였다.


세상의 모든 엄마들은 딸들의 도피처이면서 딸들의 욕받이이기도 하다. 신생아를 키우는게 얼마나 어려운 일인지 몰랐던 것도 아니었으면서 나는 아이를 키우다 예상치 못한 어려움을 맞닥뜨리면 늘 엄마를 원망했다. 아기를 목욕시키다 허리를 다쳐 아기 옆에서 누워서 울고만 있을 때도 엄마를 원망했다. 잘 자던 아기가 새벽에 이앓이를 하며 몇번 씩 깨는 바람에 잠을 설쳐도, 어렵사리 구한 시터 이모님과 언짢은 일이 생겨도 결국 엄마를 원망했다. 내가 낳고 싶어 낳은 내 딸인데도, '엄마가 나한테 아기를 낳으라고 잔소리만 하지 않았어도, 엄마가 내가 아플때 한 번 이라도 들여다보기만 했어도, 엄마가 기꺼이 아기를 맡아서 키워준다는 약속만 지켰더라도' 이런 마음의 소리가 늘 귓가에 울렸다.


가장 이해할 수 없던 건 엄마의 수영이었다.


수술이 끝나고 남편은 한달이 넘는 장기 출장을 떠났다. 혼자 집에서 아기를 볼 수 없어 친정으로 피신했지만 몸 전체가 방전되어 버린 듯한 피로감에는 답이 없었다. 수술 후 일주일만에 침대에서 일어서며 쓰러진 일은 둘째치고, 매일 아침 나는 침대에 온몸이 녹아 달라붙은 것 처럼 몸을 일으킬 수가 없었다. 아침 7시 시계처럼 정확히 일어나 활기차게 온 집안을 기어다니는 딸을 누군가 대신 돌봐줬으면 하는 마음이 간절했는데, 엄마는 매일아침 그 시간에 수영을 갔다.


엄마가 없는 집, 침대에 기절해 있는 나 대신 아침 일찍 아기를 돌보는 건 아빠와 내 동생의 몫이었다.

할아버지와 이모의 관심으로도 부족한지 한창 엄마를 찾기 시작한 딸이 보채기 시작할 때면 또 쓸데없이 엄마에게 화가 치밀었다. '암 수술 한 딸이 손녀를 데리고 집에 와서 누워있는데 엄마는 수영을 가고싶어?'라는 말이 입안에서 맴돌았다. 그런 내 마음을 읽었는지 동생이 어느날 넌지시 말했다.


"언니 있잖아, 엄마한테는 수영이 필요해."



일터에서 기분상하는 일이 있었던 날도, 어깨가 아픈날도, 친구와 마음상하는 일이 있었던 날도, 무슨일인지 얼굴에 뒤숭숭한 마음이 짙게 드리운 날도 엄마는 하루도 거르지 않고 현관 옆에 수영 가방을 두고 잠자리에 들었다. 매주 월요일은 오리발도 잊지 않았고, 어떤 날은 색깔있는 수영 모자를 꺼내둔 날도 있었다. 아마 내가 '엄마 나 암이래'라고 전화한 날도, '허리가 아파서 아무것도 못하겠어'라고 말한 날도 엄마의 수영 가방은 늘 현관 옆에 그렇게 놓여있었을 것이다.


수영 가방에는 나와 동생이 미처 읽지 못한 엄마의 마음들이 오도카니 담겨 있었다. 엄마는 아무도 깨지 않은 새벽 늘 같은 시간에 조용히 현관문을 열고 그 가방 속 마음들과 함께 수영장으로 향했다.   


엄마는 매일 아침 여덟시 이십분에 전날의 피로와 그늘, 고단함이 다 사라진 얼굴로 돌아왔다. 그리고 활기차게 당신의 딸이 먹을 아침을 준비하고 손녀가 먹을 과일을 씻었다.




수술이 끝나고 몸이 어느정도 회복되고 난 뒤 나는 매일 수영을 했다. 커다란 가방에 오리발과 수영복을 챙겨 집을 나설때면 겨우 돌이 지난 딸은 웃는 낯으로 '안녕, 안녕' 손을 흔들어 줄 때도 있었고 울면서 더 놀아달라고, 가지 못하게 하는 날도 있었다. 아기가 아프거나 돌봐줄 사람이 없을 때는 어쩔 수 없이 집에 있었지만, 나는 거의 매일 어김없이 엄마처럼 수영 가방에 내 마음을 차곡차곡 담아 수영장으로 향했다.


나중에 딸이 나를 원망하게 될지도 모르겠다. '엄마는 내가 그렇게 어렸는데, 그렇게 울었는데 나를 두고 수영을 가고 싶었어?'라고. 그런 날이 온다면 나는 뭐라 대답해야 할까. 한없이 미안하고 마음이 아파 지금도 어떤 답을 해야할지 잘 모르겠다. 매일 현관 옆에 놓인 수영가방을 그저 헤아려달라고 하면 너무 큰 욕심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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