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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수린이 Mar 14. 2019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 거라고

어쩌다, 수영

어머니께서 말씀하셨다.

산다는 건 늘 뒤통수를 맞는거라고.

인생이란 너무, 참으로 어처구니가 없어서

절대로 우리가 알게 앞통수를 치는 법이 없다고.

나만이 아니라 누구나 뒤통수를 맞는거라고.

그러니 너무 억울해 말라고.


어머니께선 또 말씀하셨다.

그러니 다 별일이 아니라고.

<노희경, '그들이 사는 세상'>


나는 6년내내 4등이었다. 초등학교 운동회 달리기 대회에서 있는 힘을 다해 뛰어도 그 흔한 공책 한 권 받지 못했다. 몇날 며칠 밤새워 공부한 다음날 학교앞 떡볶이 가게에서 빨간 색연필 비가 내리는 시험지를 들고 분해서 엉엉 운적도 있었고. 수십번 쓰고 지우며 고민한 자기소개서를 내밀었는데 '불합격입니다'라는 답을 일주일에 세번 연속 받은 날도 있었다. 순진하게도 독서실 문앞에 붙어있던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을 믿어서 온 힘을 다해서 노력해왔다. 그런데 어느 드라마 대사처럼 노력은 배신을 밥먹듯 했고, 삶은 늘 뒤통수를 쳤다.


삼십대 후반으로 달려가며 나는 또 뒤통수를 맞을 만한 짓을 하고 있다. 접영 발차기 얘기다.

 

수영을 하는 사람에게 '접영'에 대해 묻는다면 누구나 '이 얘기 대체 언제끝나나' 싶은 한편의 대서사시를 풀어낼 것이다. 물은 왜 그리 무거운지, 팔은 왜 늘 '살려주세요' 모양이 되는지, 어느날 접영신이 25미터 정도 접신했었다던가, 사람이 없는 호텔 수영장에서 마음먹고 접영 연습을 해보려는데 수영을 하는건지 구조요청을하는건지 헷갈렸던 라이프가드가 의자에서 벌떡 일어났다던가 하는 이야기 말이다.


고백하자면 나는 지금도 '저병(아무리 연습해도 접영을 못하는 병)'을 앓고 있다. 암수술 이후에도 급한 성질머리는 고치지 못하고 수업때 마다 '접영은 언제쯤 잘하게 될까요'를 묻는 나에게 록쌤의 답은 늘 똑같았다.


"하다보면 다 됩니다"


사실 록쌤 뿐 아니라 수영을 어느정도 한 사람들은 누구나 같은 대답을 했지만 나처럼 어설픈 접영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그 대답이 미치고 팔짝 뛸 노릇이다. '하다보면 된다니. 노력은 배신하지 않는다는 말이랑 뭐가 달라요' 라고 록쌤에게 찌릿찌릿 눈빛으로 항의한 어느날 내 접영을 지켜보던 록쌤은 '하다보면 된다'보다는 진일보한 답을 내놨다.


"발차기 연습을 많이하셔야겠어요"  

"......"

 

발차기 연습을 많이 하라는건 교과서에 충실하게 국영수 위주로 공부하라는 얘기와 마찬가지다. 머리속으로는 원칙을 알고 있지만 사람은 누구나 요행을 바란다. 게다가 나이들어 시작한 수영, 배울것은 또 얼마나 많은지. 아니 접영이 안되는데 킥판잡고 발을 차고 또 차고, 숨 한번 쉬고 또 차고, 한 바퀴돌고 또 차는 그 반복적인 발차기가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심지어 요즘은 무언가를 매일 열심히 연마하는 행위 자체가 실속없고 미련한 미덕으로 취급받는 세상이 아닌가. 매일 어리석은 연습으로 내 삶이 달라지길 바라는 것 보다는 매주 나오는 로또번호에 인생을 거는 편이 더 현명할지도 모른다.


답은 엉뚱하게도 막 걸음마를 시작한 내 딸에게 있었다.




부모가 된다는 건 한 인생의 증인이 된다는 의미다.


아기는 태어난 지 정확히 89일이 되던 날 천장만 보며 누워있던 몸을 제 힘으로 뒤집었다. 그 뒤집기에 성공하기까지 거짓말을 조금 보태 만 번쯤 헛다리질을 했다. 자기힘으로 뒤집기 위해 아기는 얼굴이 새빨개지도록 온몸으로 힘을 쓰며 팔과 다리를 번쩍 들어 옆으로 돌리는 동작을 반복했다. 마치 뒤집기 하나만을 위해 태어난 것 처럼, 누가 귀에 대고 '지금이야! 뒤집어!'라고 외치는 것 처럼. 실패에 아랑곳않고 팔과 다리를 번쩍 들어올려 제 몸을 기우뚱거리며 뒤집을 때 까지 하루에도 수십번, 수백번 같은 동작을 반복했다.


뒤집기 다음은 서기, 그리고 걷기였다. 다리가 아프지도 않은지 온 집안의 가구를 붙잡고 하루에도 수십번 앉았다 일어섰다를 반복했다. 걸음마를 연습할 때는 넘어지고 무릎에 멍이 들어 울음을 터뜨려도 단 한번도 넘어지는걸 두려워하지 않았다. 엄마라는 말을 꺼내기 전 까지는 이만 번 쯤 정체불명의 외계어를 중얼거린것 같다. 이 발음이 맞는지, '음마'라고 말하면 알아듣지 못하진 않을지 부끄러워하거나 주저하는 것도 없었다. 그저 신이나서 반복, 또 반복할 뿐이었다.


태어나던 그 순간부터 우리는 정말 부단하고도 미련맞은 연습으로 여기까지 왔다. 그리고 그 모든걸 극복하고 두발로 뛰고, 서고, 말을 하게 됐다. 나이 마흔을 앞두고 물을 차고 나가기 위해서 발차기를 다섯바퀴, 열바퀴 도는 것 쯤은 아무것도 아니었다. 우리가 지금까지 해온 그 수많은 헛발질에 비하면 말이다.


언젠가 딸이 자라면 얘기를 해 줄 생각이다. 너도 언젠간 경험하게 될까. 달리기에서 만년 4등을 하거나, 학교앞 분식집에서 시험지를 안고 분해서 엉엉 울게되는 날. 계속되는 불합격 통보에 맥주 한 캔이라도 마시지 않고서는 잠을 이루지 못하는 날. 인생이 뒤통수를 치는 순간마다 기억해줄래. 엄마가 다 지켜봤는데 말이야. 사실은 네가 얼마나 성실하고 강한 아기였는지. 엄마도 너도, 그리고 이세상 모든 사람들처럼 우리는 한때 의심도, 두려움도 없는 , 오로지 간절함만있는 미련한 연습벌레였다는 걸. 그 모든 과정을 거쳐 두발로 뛰고, 어른이 되고, 암수술도 하고, 그리고 나서도 나이 마흔에도 물을 차고 나가게 되었다는 걸. 인생은 분명히 뒤통수를 치지. 그래도 하다보면 언젠가는 다 되고. 또 다 지나가고. 그러니 그게 다 지나가면 별일이 아니더라.


이러다 또 뒤통수를 맞을지도 모른다. 지금까지내 인생이 그랬지. 아마 된통 맞을거다. 그래도 나는 매일 미련하게 발차기를 한다. 접영을 잘한 날을 추억하지도, 못한 날을 회상하지도 않고 그저 머리를 비우고 매일 수영장에 들어서는 그 순간부터 한다. 언젠간 되겠지. 내일 안되면 어떤가. 내일도 안되면 다음달에, 다음달에 안되면 내년에 되겠지.


그래서 오늘도 자유형 발차기 두 바퀴, 접영 발차기 두 바퀴, 평영 발차기 두 바퀴.


www.arenawaterinstinct.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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