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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Aug 04. 2020

굿즈 제작, 이것만 읽으면 기본은 한다

굿즈 마케팅(2) - 기획부터 발주까지의 시행착오

돈 내고 굿즈를 수집하는 관객 입장에서 굿즈는 '아~ 예쁘다'하는 감성으로 끝날 물건이다.


하지만 업무를 진행하는 실무자는 수익성일정을 따져야 한다. 굿즈를 제작했는데 퀄리티가 낮아서 반 이상 재고로 남는다? 굿즈 상영을 모월 모일에 하고 싶은데 굿즈 완성본은 그 전날에나 수령할 수 있다? 정말 끔찍할 것이다.


아래에 소개할 내용이 어디 자랑할 만한 이야기는 아니다. 그만큼 체계가 없이 일했다는 증거니까. 다만 미래에 혹시라도 체계 없는 곳에서 일할 누군가와 그냥 손톱만 한 회사에서 어떻게 굿즈를 만드나 궁금한 분들께 참고가 되길 바란다.


1. 제작업체 알아보기


[#1] 허접한 조사로 쪽팔림은 나의 몫

굿즈 제작 과정에서 가장 큰 난관은 배지였다. 엽서, 책갈피 등 지류 굿즈도 제작했지만 그런 것들은 도안을 만들어 기존에 거래하던 인쇄소에 맡기기만 하면 됐다. 


하지만 배지는 회사에서 기존에 만들어 본 적이 없어 맨땅에서 시작해야 했다. 다행히 회사에 디자이너가 있어 외부 의뢰 없이 내부에서 결정한 도안을 토대로 제작업체를 찾아 의뢰하기만 된다는 점은 운이 좋았다.


처음에는 단가를 저렴하게 맞춰야겠다는 생각만 가득 차 네이버에서 검색해 나온 배지 제작사 위주로 견적 비교를 했다. 하지만 이들 업체는 행사나 단체 활동에 쓰이는 동전 크기만 한 배지를 제작하는 곳이었기 때문에 비교적 넓은 면적에 디테일한 모양을 내야 하는 영화 배지에는 부적합했다. 업무를 하는 근본적인 이유를 망각하고 가격만 생각해서 엉뚱한 조사를 한 것이다.


회의에서 내 실수를 알기까지는 1분도 걸리지 않았다. '저 사이즈로는 굿즈를 못 만든다'는 말 외에는 다들 아무 말도 더 하지 않았고 오히려 처음이라 실수할 수 있다며 격려해 줬다. 하지만 기본적인 걸 망각하고서 빨리 제작사를 정해야 하니 빨리 회의를 하자며 난리 블루스를 춘 자신을 생각하니 얼굴이 화끈거렸다.


[#2] 굿즈 제작 전문팀에 문의

크게 부끄러움을 겪은 뒤, 절치부심해서 제대로 조사에 임하기로 했다. 그 직후 연락한 데가 굿즈 제작 전문팀이었다. 기존에 여러 영화사와 협업해 좋은 반응을 얻어 매체에도 노출된 전문가들이었다.


하지만 이미 결정된 도안을 가지고 굿즈 발주 업무만 대행해 주진 않는다는 답변을 받았다. 상대방으로부터 배지 시안을 역제안받기도 했으나, 우리가 희망하는 방향과 약간 달라 고사할 수밖에 없었고, 결국 도안을 직접 받아 배지를 제작하는 업체를 찾아야 했다.


생각해 보면 당연한 귀결이었다. 만약 디자인 의뢰 없이 발주 대행만 해 줬더라도 디자인까지 대행했을 때에 비해 수주할 수 있는 금액이 적었을 것이다. 더구나 발주 대행만 해 준다면 디자이너로서 창의성을 발휘할 여지가 없는 것이니 그들로서는 오케이 할 이유가 없었을 것이다. 내 욕심만 앞서서 철이 없었다.


[#3] 개인 제작자들에게 문의

SNS에서 검색을 하다가 굿즈를 자체 제작하는 개인들이 있다는 것을 처음 알게 됐다. 트위터에서 15명가량을 찾았고, 그들에게 메시지를 보내 도움을 청했다. 역시 완성된 디자인을 받아 발주만 대행해 주겠다는 이는 없었으나, 그중 한 분이 자신이 거래하는 업체 연락처는 물론이고 발주 요령까지 상세히 알려주셨다. 고마운 마음에 그분께는 나중에 배지를 따로 우편으로 발송해드렸다.


2. 견적 문의


안내받은 업체에 견적 문의를 했다. 발주 수량에 따라 금액에 차이가 났는데, 우린 단가 3,200~3,300원 정도에 300개를 주문했던 것으로 기억한다. 이 금액에는 금형비도 포함되는데, 이는 금속 제품의 모양을 내는 데 쓰이는 거푸집 제작 비용을 말한다. 배지 수량이 부족할 것이 걱정돼 추가 발주 때 금형비를 빼줄 수 있냐고 문의했는데, 추가 발주 때도 금형비가 들어간다는 답변을 받았다. 추가로 배지를 만들려면 원래 의뢰가 끝나기 전에 수량 추가를 해야 하는 것이다.


또한 배경지 금액도 단가에 포함됐는데, 배경지란 배지 뒷면에 받치는 작은 사각 종이를 말한다. 배지마다 배경지를 넣고 개별 포장한다는 점이 이 업체의 매력이었는데, 소비자 입장에서 정갈해 보일 뿐만 아니라 배지의 파손율을 낮출 수 있었기 때문이다.


회사에서 확정한 디자인 파일을 넘기니 공정상 구현하기 힘든 부분이 존재한다며 배지 제작사에서 수정 시안을 제시했다. 얇은 선이 다닥다닥 붙어있는 모양 등 자잘한 부분이 간소화됐고, 내부 확인을 통과해 최종 발주를 넣었다.


3. 제작, 수령, 송부


엽서, 책갈피 등 지류 굿즈를 발주할 때는 반드시 인쇄사로부터 견본을 받은 후 최종 확인 의사를 전달해 본 제작을 진행한다. 이때 종이 재질 등 3~4가지 옵션을 각각 다르게 적용한 견본을 받아 비교하면 가장 적합한 안을 선택해 최종 발주에 반영한다.


지류 굿즈의 제작 기간은 5일 정도 소요했고, 정말 급해서 부탁드리면 한 3일 정도로 배려해 주셨던 것으로 기억한다. 배지 제작에는 2주 정도 걸렸다. 이 부분은 조정의 여지가 없기 때문에 희망하는 굿즈 상영회 날짜가 있다면 미리미리 발주를 진행해야 한다.


제작 일정이 중요한 이유는 완성본 수령 후 극장에 발송해야 하기 때문이다. 우체국 택배 도착에 1~2일 정도 걸리는 걸 생각하면 제작사로부터의 굿즈 수령은 필요한 날짜보다 훨씬 전에 완료되어야 한다. 수령 후 불량품도 확인하고, 후속조치도 해야 하니까. 시간이 너무 촉박하면 퀵서비스를 쓰면 되겠지만 다 피 같은 돈이다.


그러므로 기획 단계부터 계획성 있는 사고를 해야 한다. 사실 개봉 업무는 스타크래프트 빌드 올리듯이 순서대로 착착 진행되지 않는다. 중간에 좋은 아이디어가 생겨 급히 실행되기도 하고, 굿즈 역시 처음 계획에 없었던 아이템을 급히 만들기도 한다.


하지만 배지 같이 디자인 단계부터 완료까지 4주가 걸리는 아이템을 추진하고픈데 개봉은 3주 뒤라면... 그건 일을 못하는 거다.


4. 추가 견적 문의를 했다가 욕먹다


내가 배지 발주를 준비할 동안 회사에서는 굿즈 상영회차를 극장과 협의하고 있었는데, 만에 하나 배지 수량이 부족하면 어쩌나 싶어 제작사에 추가 발주량에 대한 견적 문의를 했다. 그런데 이를 보고했더니 '자기가 배지를 추가 발주할 것 같으냐'며 코웃음과 고성과 비난이 날아오더라.


이 때는 '왜 저러지?'라는 마음이 들면서도 내가 시키지도 않은 일을 지레짐작해서 알아본 죄가 크다고 생각했다. 지금 생각해 보면 가장 현명한 옵션은 추가 견적 건을 나만 알고 있는 것이었다. 하지만 일이 지나서 알고 보니 그 코웃음과 고성과 비난에는 나름의 이유가 존재했다. 꼭 그 따위로 말해야 했나 싶지만.


다음 글에서는 굿즈 상영회 진행 과정과 성과를 돌아보고자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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