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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이태리 Aug 05. 2020

수입영화, 이제 웨이브, 왓챠, 티빙에서 못 본다?

영화수입배급사협회의 국내 OTT 서비스 중단의 이유와 전망

사단법인 영화수입배급사협회(이하 수배협)가 보도자료를 내어 월정액 서비스를 제공하는 OTT 플랫폼 왓챠, 웨이브, 티빙에 대한 서비스 중단을 선언했다. 이 선언이 의미하는 것은 무엇이고, 앞으로의 전망은 어떻게 될지 몇 자 적어보았다.


1. 수배협 주장 요약


1) 한국은 TVOD 시장이 돈이 되는데 SVOD 방식으로는 우리가 불리하다.


2) TVOD 시장을 잃으면 대한민국 영화산업을 잃는다.


3) 그러니까 SVOD 플랫폼하고는 거래 안 한다.


TVOD건별로 결제하는 VOD 서비스를 말한다. 예를 들어 IPTV, 카카오페이지 등에서 10,000원, 5,000원 등 정해진 금액을 내고 VOD를 보면 TVOD이다.


SVOD는 넷플릭스, 왓챠, 웨이브와 같이 사용자가 매월 일정 금액을 지불하고 콘텐츠를 사용하는 구독제 서비스를 말한다.


2. 수배협의 주장 팩트 체크


1) SVOD는 영화에 불리한 구조다?

이는 영화 콘텐츠에게 절대적으로 불리한 배분 방식이라 할 수 있다. TV드라마, 예능의 경우 1시간 이하의 런닝타임과 전 편을 관람하기 위해 여러 회차를 봐야 하지만, 영화의 경우 2시간 단 한번의 관람으로 끝나기 때문에 전체 매출에서 관람 회차 수 비율 나누는 정산 방식은 상대적으로 불리할 수밖에 없다.

예를 들어 어떤 OTT 플랫폼이 전 세계 구독자들로부터 받은 돈이 1,000원이고, A와 B 회사 콘텐츠만 입점했다고 치자. A는 예능 9개 에피소드, B는 영화 1편만 입점하고 각 동영상이 1번씩 조회됐을 경우 A는 900원을, B는 100원을 받는다. 이런 정산 시스템이 영화사에 불리하다고 주장하는 것이다.


하지만 이는 다른 콘텐츠에 들어가는 비용을 생각하지 않은 주장이다. 드라마, 예능 회차가 많으면 그만큼 제반 비용도 많이 들어갔을 것이다. 드라마/예능 제작사 입장에서 영화보다 더 많은 조회수가 나오는 것은 비용 투자에 대한 당연한 보상일 것이다.


그런 것을 고려하지 않고 단순히 동영상의 조회 수 차이로 불리함을 주장하는 것은 타 업계에 대한 무분별한 비난으로 보일 수도 있겠다.


2) SVOD 때문에 TVOD가 흔들린다?

이날 현장에 참석한 수배협 회원사들은 만약 월정액을 중심으로 한 OTT VOD 서비스가 디지털유통시장의 대세로 자리 잡을 경우, 영화 부가서비스 시장에 심각한 영향을 끼칠 수 있음을 한 목소리로 우려했다. 월 정액 1만원으로 무제한의 영상 콘텐츠 관람은 콘텐츠 저작권자에게는 저작권료 수입이 30분의 1로 줄어들어 도산하는 결과를 낳게 될 수도 있으며, 이는 결국 다양한 콘텐츠 생산과 소비를 불가능하게 하여 결국 관련 산업 전체의 위축으로 이어질 수 있다는 것이다.

실제로 현재 전세계에서 극장 이외의 부가 판권 시장이 그나마 살아 있는 곳은 T VOD서비스를 유지하고 있는 한국과 미국 정도이며, OTT VOD 서비스가 발달한 일본과 동남아 등은 부가판권 시장의 몰락과 이 영향으로 인한 자국 영화시장의 위축으로 이어지고 있음을 우리는 알고 있다.

SVOD와 TVOD는 별개의 시장이다. 영상 콘텐츠를 배급할 수 있는 창구는 극장, 非극장, TVOD, SVOD 등 여러가지가 있는데, 해외영화를 수입할 때는 각 창구에서의 매출을 극대화하기 위해 우선 창구에서의 서비스 시작 이후 차선 창구의 서비스를 제한하는 홀드백(holdback) 기간을 둔다. 최근에 AMC와 Universal이 다툰 것도 극장에서의 홀드백을 줄이고 부가시장 서비스를 서두르는 데 이견이 있었기 때문이다.


해외영화를 수입할 때는 각 창구당 홀드백 기간을 계약서에 명시한다. 계약마다 다르겠지만, 보통 TVOD 서비스 시작 후 6개월 또는 1년이 지나야 SVOD, AVOD(광고 시청형 VOD), FVOD(무료 VOD) 서비스를 개시할 수 있다. 그러니까 SVOD가 TVOD 매출을 갉아먹는 게 아니라, SVOD 서비스 시작 시기에 이미 TVOD는 단물이 다 빠진 상태란 말이다.


물론 SVOD가 없다면 단물이 다 빠진 이후에도 1,000원이건 1,500원이건 건별 매출을 올릴 수 있으니 수입사 입장에서는 더 좋을 것이다. 하지만 산업 전체의 위축, 부가판권 시장의 몰락까지 언급하는 것은 과장된 것으로 본다.


게다가 이 주장은 아전인수격이기도 하다. 차선 창구 서비스가 우선 창구 매출을 갉아먹는다고 생각하면, TVOD 서비스는 왜 극장 개봉 2주 뒤에 하는가? 해외 세일즈사 입장이 어찌 되었든 TVOD는 빨리 하고 싶고, 한편으로 SVOD는 하기 싫고... 너무 본인들 편의만 생각하는 것 아닌가?


3. 수배협의 의도와 향후 전망


수배협에서 SVOD를 아예 안 하겠다는 의도는 아닐 것이다. SVOD를 안 할 거면 본인들 돈줄을 스스로 끊는 셈이고, 더구나 all right로 저작권을 산 돈도 아까울 것이다.


또한 소비자들이 넷플릭스 구독, 유튜브 광고에 익숙해진 시대에 SVOD를 외면하겠다는 것은 현실성이 없다는 사실을 본인들도 알 것이다.


그러므로 수배협의 의도는 본인들 콘텐츠의 값을 올리는 것이며, 이는 보도자료의 마지막 문단에도 드러난다.

저작권료의 정당한 가치를 인정받을 때까지 월정액 서비스를 하고 있는 ‘왓차’ ‘웨이브’ ‘티빙’에 콘텐츠를 제공하지 않을 것이다. 영화 콘텐츠에 대한 합당한 대가를 지불하거나, 영화만을 위한 개별 과금 시스템 마련 및 투명한 정산 시스템을 공개할 때까지 콘텐츠 공급을 중단할 것이다.

이를 바탕으로 아래와 같은 상황을 예측해 본다.


[#1] "합당한 대가" = 저작권료 올려 줘

수입배급사들이 플랫폼과 거래하는 방법은 크게 아래와 같이 나뉜다.


(i) MG + R/S: 기본 금액을 지불받고, 서비스로 발생하는 매출은 비율에 따라 분배.

(ii) R/S: 기본 금액 없이 매출만 비율에 따라 분배.

(iii) Flat deal: 매출 분배 없이 고정 금액 수령.


현재 수입배급사에서 국내 OTT와 어떤 형태의 거래를 하는지 모르겠으나, 불확실한 미래 매출보다는 당장 통장에 꽂힐 수 있는 돈을 선호할 것이다. 그러므로 MG나 flat license fee를 올리는 쪽으로 플랫폼 사업자와 협의할 수도 있다.


[#2] "영화만을 위한 과금 시스템" = 드라마, 예능이랑 분리해 줘

같은 파이를 두고 드라마, 예능이랑 나눠먹자니 쪽수에서 밀리므로 영화 매출만 따로 나눠 영화사끼리 정산하게 해 달라고 요청할 수 있다. 티빙이 서비스 중인 '무비 프리미엄' 이용권이 좋은 예시가 될 것 같다.

티빙이 제공하는 '무비 프리미엄' 이용권 내용


하지만 이 옵션에는 형평성 문제가 생길 것 같다. 백 번 양보해 왓챠, 웨이브가 영화 전용 서비스 모델을 만든다고 치자. 그렇다면 넷플릭스도 영화 전용 정산 모델을 구비해야 하나? 그게 아니라면 왜 주장에 일관성이 없나?


[#3] 아무도 관심 가지지 않는 미래

이전 글에서 언급했듯이 한국에서 독립예술영화를 보는 관객은 전체의 3.6%에 지나지 않는다. 그 중에 수입배급사 작품만 꼽으면 비율이 더 떨어질 텐데, 국내 OTT 플랫폼들이 수배협의 주장에 관심을 가질까? 성적이 안 나오면 이미 입점한 영화도 나가떨어지는 판에?


그래도 플랫폼들이 수배협을 아예 쌩까진 않을 것 같다. 그간 거래하며 커피라도 마신 정이 있을 텐데, 지금 쌩까면 나중에 얼굴을 어떻게 볼 거야...


4. 마치며

어느 시대, 어느 분야에서나 새 사업 구조가 등장할 때마다 이익 분배에 대한 분쟁이 발생했다. 이번 일도 그런 분쟁의 하나에 지나지 않을 것이다. 다만 지상파 방송사와의 재송신 분쟁에서 연전연패하고 지금은 통신사에 합병된 케이블TV SO처럼, 수입배급사들도 같은 전철을 밟을 수도 있다.


어딜 가든 자기 주장을 관철시키려면 스스로 힘이 있어야 한다. 케이블TV가 지상파에 밀린 것도 지상파 프로그램이 없으면 가입자가 이탈했기 때문이 아닌가?


수배협 역시 스스로의 경쟁력을 한번 돌아봤으면 좋겠다.


수배협에 대한 생각은 사람마다 다르겠지만, 적어도 이 사태를 보는 사람들은 수배협이 배포한 보도자료로 수배협을 판단할 것 같다.


자기들이 내는 보도자료의 오탈자조차 제대로 체크하지 못하는 단체의 목소리를 귀담아 들을 사람이 있을까?


'국내 토장 OTT 업체' 같은 오타, IP-TVIPTV 같은 일관성 없는 표기, T VOD 및 S VOD라고 공연히 띄어쓰는 표기를 보면 이것이 과연 공신력 있는 단체에서 나온 보도자료인지, 기본적인 업무를 하는 직원은 있는지 의심스럽다.


특히 남의 회사명은 공식적인 자료에서 조심히 써야 한다고 생각한다(취준생들도 아는 얘기다). 보도자료 내내 '왓챠'로 썼다가 말미에는 '왓차'라고 표기했던데, 이걸 베낀 기자들도 똑같은 부분에서 실수를 했더라. 수배협은 이걸 보고 반성을 좀 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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