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9년의 5월엔 거의 매일같이 비가 오고 우리 집은 중앙난방이라 4월 초에 끊겼던 난방이 5월이 되어서 다시 들어오기도 했다. 아마 5월의 이탈리아를 여행하신 분들은 배신감마저 느꼈을 것이다. 으슬으슬 춥고 비가 오는 날들의 연속이었다. 5월 마지막 주 까지도 겨울옷을 옷장으로 집어넣지 못했다. 그러나 6월이 되자 거짓말처럼 바로 여름이 되었다. 일찍 추위가 찾아오는 베네치아에서 거의 8개월 가까이를 긴 옷으로 온몸을 감싸고 살았는데 갑자기 맨살을 내놓기가 부담스럽게 여름은 순식간에 찾아오고야 말았다. 봄이 아닌 바야흐로 여름.
날씨가 좋아지면 베네치아 아낙들이 가장 먼저 하는 일은 빨래이다. 겨우내 묵은 이불부터, 침대보, 식탁보 등 큰 것부터 작은 것까지 하루에도 몇 번이나 빨래를 돌린다. 이 수많은 빨래 사진들은 베네치아를 돌며 하루 만에 찍은 것들이다. 그날이 겨울에서 여름으로 넘어가는 딱 그날이었나 보다. 베네치아에는 한국처럼 최신식 건조기는 없지만 뜨거운 햇볕 아래에서 한 시간이면 금방 보송보송 살균소독까지 되어 말라버리니 걱정할 것이 없다. 나는 이런 아날로그를 사랑한다.
베네치아와 빨래는 참 잘 어울린다는 생각이 든다. 그리고 나폴리도. 같은 이탈리아 내에서도 밀라노의 경우는 도시의 미관을 해친다는 이유로 집 밖의 빨랫줄에 빨래 너는 것은 금지되어있다. 그래, 패션의 도시 밀라노야.
불편한 것 투성이인 베네치아의 삶이지만 그들만의 지혜가 돋보인다. 혹여나 바람에 날려 기껏 해놓은 빨래가 물에 빠지지 않을까 쓸 데 없는 상상을 해본다.
아이들의 옷을 보면서 나는 생각한다. 베네치아에서 자라는 아이 들일 테지.. 베네치아에서 바퀴 달린 것이라곤 유모차만이 허용된다. 그러나 아이들의 씽씽이나 어린이용 자전거는 어른들이 그냥 눈감아 주기도 하는데, 이탈리아는 아이들에게 있어서만큼은 예외인 것들이 많다.
아이가 최우선인 나라. 이 나라에서 내 아이를 낳아 기르고 싶다.
이탈리아 남자와 결혼한 언니의 말에 의하면 이불보부터 남자는 팬티까지 다려 입는다고 했다. 어떤 이는 양말까지도. 이렇게 바짝 마른빨래들은 곧장 다리미질되겠지.. 세탁기가 없던 시절에는 하루 종일 손빨래에 말리고 다리미질까지.. 빨래만 꼬박 하루가 걸리는 중노동이었겠다고 그 시대를 살아보지 않은 나는 짐작해볼 뿐이다.
이탈리아를 여행하며 발코니를 유심히 보라. 이탈리아 사람들의 미적 감각을 여실히 드러내고 있다. 집집마다 서로가 경쟁이라도 하듯이 아름답게 발코니를 꽃으로 장식하고 가꾼다.
널려있는 빨래를 보면서 그 집에 사는 사람들을 짐작해본다. 아기 옷이 걸려있으면 이집엔 아기가 살고 있나 보다 하고. 남자 팬티고 여자 속옷이고 부끄러움 없이 걸어둔 모습에 절로 웃음이 새어나왔다. 할아버지들은 팬티 차림으로 슬금슬금 창문 곁으로 걸어 나와 바짝 마른 티셔츠를 건져서 입고는 다시 들어가 버리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