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시절을 유럽에서 보낸다는 것

2019 베니스 비엔날레

by 이태리부부

가장 예쁜 시절, 일정 기간 여행이 아닌 기약 없는 삶의 터전이 유럽이 되었다는 것은 아무리 생각해도 내 인생에 주어진 가장 큰 행운이지 싶다. 이곳에서 태어나고 자랐다면 절대 지금만큼의 감사함은 느끼지 못했을 테다. 그렇다고 내가 유럽 예찬론자도 아니고, 이곳에서의 삶에 단점도 극명하게 존재한다는 걸 분명히 말해두고 싶다. 예를 들자면 당장 오늘만 해도 눈이 너무 아파서 안과 한번 가려고 애를 쓰는데 일주일째 아직 의사도 못 만났다는 거다. 여름휴가 기간엔 의사들도 휴가를 가는지 나처럼 급하지 않은 병으론 의사 만나기도 힘들다. 죽을동 살동 연기를 하거나, 몇 시간을 기다릴지도 모르는 응급실을 찾아야 한다. 의사 선생님을 기다리다가 자연치유가 될 지경이다. 어중간하게 아프면 더 고생이다.

그러나 지금껏 살면서 느낀 모든 단점을 보완할 만큼의 장점들이 존재하기 때문에 이곳에서의 장기전을 계획할 수 있었다. 내가 꼽는 이탈리아 생활의 가장 큰 장점은 뭐니 뭐니 해도 예술! 이탈리아는 예술의 나라 아닌가? 책에서만 보던 작품들을 내 두 눈으로 직접 보고 느낄 수 있고, 특히 베네치아는 도시 자체도 아름답지만 매년 열리는 베니스 비엔날레, 베니스 국제 영화제 등 우리 동네에서 세계인들의 축제를 즐길 수 있다는 것이다. 현지인들은 무료 거나 할인 혜택도 주어진다. (여담이지만 베니스 두칼레 궁전, 코레르 미술관 등 베니스 시에서 관리하는 미술관 박물관은 현지 거주민은 모두 무료이다.) 이런 예술의 도시에 내가 살고 있다.!!

사실 한국에 살면서 미술관 박물관에 간 횟수는 다섯 손가락 안에 꼽을 만큼 기억에도 없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자연스럽게 접하다 보니, 관심이 생기고 스스로 공부도 하게 되었다. 일부러 그 도시에 찾아가서도 그림을 보고, 전시를 찾아다니다 보니 나도 이제는 부끄럽지 않은 미술 애호가라고 말할 수 있다. 좋아하는 화가도 스타일도 생겼다. 물론 아직 전문가 수준은 아니다. 예술이 얼마나 인간의 삶의 질을 높일 수 있는지 이제 조금은 알 수 있을 것 같다. 그림, 건축, 조각 작품뿐만 아니라 이탈리아에서는 세계적인 오페라까지 확장할 수 있는 부분이 무궁무진하다. 이탈리아는 알면 알 수록 더 탐하고 싶고 호기심을 자극한다. 물론 음식을 좋아하는 사람이라면 음식에 대해서도 빠질 수 없는 좋은 식재료와 미식의 나라이다.


2019년 5월 11일 부터 11월 24일까지 열립니다.

작년에 이어 올해 베니스 비엔날레도 개막을 하자마자 바로 다녀왔다. 얼마나 고대하고 기다렸던가! 우리 부부가 예술 애호가이지만 유독 현대미술에는 약하다. 아무리 봐도 모호하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현대 미술인들의 가장 큰 전시인만큼 규모가 크고, 하루 만에 모든 전시관들을 다 둘러보기에는 무리가 있다. 자르디니(Giardini) 구역과 아르세날레(Arsenale) 구역만 해도 하루 종일 보기에도 벅찬 규모와 작품 수를 자랑하기 때문에 비엔날레 가이드 투어는 보통 아르세날레 구역에서 들으시는걸 추천한다. 아르세날레가 이번 비엔날레에서 작품상을 받은 작품들도 실내 공간에 밀집되어있고, 개인적으로 큰 메시지를 주는 작품들이 많았다.


매표소, 우리는 개막하는 날에 아침 일찍 방문했기 때문에 한적하게 관람할 수 있었지만 요즘은 매표소에서부터 줄을 서야 한다고 한다. 일반 방문객 1일권은 25유로. 일주일권/한 달권/정기권 등도 있다. 관계자가 아닌 이상 이렇게 베니스 비엔날레를 기다려 가며 공부해서 보러 오는 우리같은 사람은 몇이나 될까? 실제로 남편은 베니스 비엔날레 작품 지도를 그리고 수상 작품들 표시까지 해가며 하루종일 관람했다. 나는 이탈리아 전문가와 살고 있다.

비엔날레 티켓

비엔날레 기간 중 25유로짜리 티켓으로 아르세날레(Arsenale)와 자르디니(Giardini) 구역을 한 번씩만 입장할 수 있다. 꼭 하루에 모두 둘러볼 필요는 없다. 아르세날레와 자르디니에 초대받지 못한 국가관들은 본섬 곳곳에 무료입장으로 자리하고 있으니 지나가다 들러도 좋다.

가장 먼저 방문했던 한국관, 여전히 현대미술은 모호했다. 그리고 사실 조금 실망도 했다.

비디오 아트의 대가 백남준 선생님 덕분에 자르디니 구역에서 국가관으로는 한국관이 가장 늦게 자리잡았다. 아시아관으로는 일본관과 더불어 유일하다. 중국이 베니스 비엔날레에서 국가관으로 자리잡고 싶어서 몇 년 째 애를 쓰고 있는 모습을 보면 대한민국이라는 나라는 참 대단하다 싶기도 하다. 그치만 가장 마지막으로 자리잡다 보니 예전 화장실 자리 가장 구석진곳에 애매한 크기로 작품을 전시하기도 애매한 동선이다. 늘 그부분이 조금 아쉽고, 올해는... 사실 기대를 많이 했던 탓인가 실망이 컸다.

작년 건축 비엔날레 때 가장 마음에 들었던 프랑스관은 역시 우리를 실망시키지 않았다. 플라스틱과 바다의 오염에 대한 메시지를 주었다. 실제로 바다에서 건져 올린 쓰레기들로 전시장을 꾸몄다. 플라스틱 줄이기는 집에서도 실천을 하려고 노력 중인데 사실은 플라스틱 없는 삶은 이미 쉽지 않을 만큼 익숙해져 버렸다는 사실이 슬펐다. 슈퍼에서도 웬만하면 플라스틱으로 포장된 제품은 구매하지 않으려고 조금이나마 노력하게 되었다.

이집트 전시관

비엔날레는 역시 젊은 친구들 보다도 나이 지긋한 어르신들이 작품 관람하는 모습이 많이 보였는데, 남편과 나도 나이 들어서도 이렇게 미술을 사랑하고 좋아하는 작가를 쫓아다니는 애호가로 살고 싶다고 생각했다. 끊임없이 공부하고 돈도 많이 벌어야지. 이탈리아 사람들은 나이가 들어도 멋지게 옷을 차려입고 다니고, 항상 무언가를 배우러 다닌다. 이탈리아는 아이들이 살기 좋은 나라이기도 하지만 노인들이 살기에도 더할나위 없이 멋진 나라인것 같다. 물론 젊은 시절의 유럽에서의 삶은 말할것도 없지만.

은사자상을 수상한 벨기에관


한국 작가의 작품
실제 침몰했던 난민선

지금 유럽이 직면한 가장 큰 문제 중 하나인 난민에 대한 메시지를 전달하기 위해 실제로 침몰하여 수많은 사망자가 발생한 난민선을 전시해 논란이 되기도 했다. 신기하기도 하고, 내가 가까이에서 난민에 대한 문제를 지켜보기도 했기 때문에 가슴 아팠다.

사진 포인트
강렬했던 흑인 모델
비행기에서의 몸의 변화에 대한 메세지를 준다.
강물의 오염을 표현한 작품

오프닝 시간부터 끝날 때까지 둘러봤지만 우리는 모든 전시관을 볼 수 없었다. 11월까지 전시가 이어지기 때문에 아마 우리는 몇 번은 더 방문할 수 있지 싶어 아쉬움을 뒤로한 채 집으로 돌아왔다. 베니스 비엔날레는 미술을 좋아하지 않는 사람들도 한 번쯤 방문해서 요즘의 현대미술 트렌드를 보기에 좋을 것 같다. 다만 하루 종일 시간을 할애할 각오를 해아 할 것이다.


마음만 먹으면 지척에서 이렇게 멋진 전시를 만날 수 있는 내 삶이 참 감사하게 느껴진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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