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년 늦봄에 와서 2020년이 되기까지 벌써 다섯 번째 맞이하는 이탈리아에서의 새해 첫날.
시간이 참 빠르다는 매 년 맞이하는 상투적인 사실보다 지난 5년간 "상견례, 내 결혼식, 친동생 결혼식"이라는 빠질 수 없는 큰 이슈로 딱 세 번 밖에 한국에 가지 않았다는 사실이 더 놀랍다. 팔자에도 없는 해외생활이 장기화되면서 한국엘 여행으로 가는 신세가 되었지만 인생에서 내가 간절히 살고 싶은 나라를 만났다는 것만으로도 참 감사하다.
해외생활 첫 해에는 한국에 있는 가족들 친구들이 사무치게 그립고 한국음식이 그렇게도 먹고 싶었지만 남편을 만나 이탈리아에 정착하고, 해가 거듭 될수록 만날 사람도, 공감대도 없는 한국으로 가는 것이 큰 결심과 그에 상응하는 돈이 필요하다는 것을 깨달았다. 나중에 아이가 생기게 되면 어떨지 모르겠지만 지금은 한국에 가는 대신 우리의 미래를 위해서 조금 더 저축하고 부모님을 더 자주 모시고 나오자라는데 남편과 의견이 일치되기에 이르렀다.
새해 첫날의 베네치아
해외 생활이라는 것이 특히 이탈리아에서 외국인으로 살아간다는 것은 절대 호락호락하지 않기 때문에 내가 간절히 붙잡지 않으면 절대 이어질 수가 없다. 재미로 한 번 살아보지가 안 되는 나라라는 뜻이다. 20년 넘게 내 나라에서 익히고 터득한 기술은 말이 안 통하는 나라에 나오는 순간 백지상태가 되어 모든 것을 새롭게 알아가야 하고, 그 깨달음은 돈과 시간으로 그리고 눈치와 운으로 새롭게 채워나가야만 한다. 눈물로 지새운 나날들이 셀 수 없고, 화가 치밀어 한국으로 갈까 싶은 날들도 많았다. (사실 짐을 싸고 비행기에 오를 용기는 죽어도 나지 않았다.) 그랬던 내가 작년부터는 이탈리아에 살아서 좋냐는 질문에 주저 없이 "예스"라고 대답할 수 있게 되었는데, 이제야 악을 쓰고 기를 쓰지 않아도 살만하구나 느꼈기 때문이다. 2019년은 좋은 일들만큼 힘든 일도 많았고 아직도 배워야 할 것 투성이지만 이제는 기꺼이 감당할 수 있을 만큼은 익숙해진 것 같다. 다시 새로운 나라에서 시작하라고 하면 두렵겠지만 이탈리아에서는 어느 도시에 내어 놓아도 다시 시작할 용기가 생겼다고나 할까?
형체의 유무를 떠나서 공기마저도 익숙한 이탈리아가 되어버렸다.
베네치아 리도섬으로 가는 길 아침 7시 59분
이탈리아에서 5년을 살아 내었지만 해돋이를 보는 것은 처음이었다. 처음 해보는 일은 설렘을 동반하기 마련이지만 아침 일찍 일어나야 하는 일은 언제나 그렇듯이 수많은 내적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갈까 말까를 이불속에서 30분 넘게 갈등했지만 결국에는 갈등했던 내가 한심스러울 만큼 평생 기억에 남을 아름다운 일출을 맞이할 수 있었다. 리도섬으로 가는 바포레토(수상버스) 안에서 남편과 오롯이 둘이서 즐긴 2020년의 첫 해돋이였다. "오롯이"라는 말을 감히 할 수 있는 이유는 그 누구도 해돋이에 의미 부여를 하지 않는 듯 동요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이른 아침 새해 첫날의 바포레토 안에는 몇몇 사람들이 있었지만 유일한 동양인이었던 우리들의 마음속에만 아드리아 해의 바다만큼 잔잔한 파도가 일렁이고 있을 뿐이었다. 그 순간을 절대 잊지 못할 것이다.
감히 말하지만 내 인생에서 가장 아름다운 순간이었다.
온전히 해가 붉게 얼굴을 내밀었다.
리도섬(Lido di Venezia)에 도착하니 한적할 거라는 생각과는 달리 오전 11시에 있을 맨몸 수영대회를 준비하느라 분주했다. 마지막 날의 화려한 불꽃놀이보다도 우리 둘이서 오롯이 새해 첫날을 맞이하는 편이 훨씬 생산적이고 특별하다는 느낌이 들었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1년 내내 관광객으로 북적이는 베네치아를 가장 완벽하게 즐길 수 있는 시간은 새벽밖에 없다고 자부한다. 해가 완전히 떠오르고 남편과 새해 목표를 나누었다. 매년 연말이 되어보면 새해 목표 중 절반도 아니 한 가지도 이루기가 힘들다는 사실을 깨닫게 되지만 작심삼일 일지라도 새해 다짐은 하는 편이다. 올해의 새해 다짐이 꾸준히 글쓰기 이기 때문에 나는 이렇게 6개월 만에 브런치에 글을 쓰고 앉아 있다.
나는 글을 잘 못 쓰지만 책을 쓰고 싶다는 생각을 수년째 해왔다. 우리 남편을 보면서 깨달은 거지만 결국에 인간은 재능보다는 꾸준함이더라. 올해는 책을 쓴다는 목표보다는 꾸준히 쓰고 나를 노출시켜보자는데 초점을 맞춰 보기로 한다. 작심삼일일지라도 아무도 봐주지 않더라도 나는 죽을 때까지 꾸준히 내 삶을 기록하기로 마음먹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