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는 이탈리아에 살고 있는 30대 백수입니다. 남편이 벌어주는 돈으로 유럽에서 마냥 먹고 노는 좋은 팔자라고요?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그게 뭐 어때서요?
-와이프는 뭐하세요?
남편이 일을 하러 가면 여행 관련 질문 말고 가장 많이 듣는 질문인 동시에 나의 자존감을 가장 많이 깎아내리는 질문이다. 남의 와이프 뭐하는지가 왜 궁금해?라는 욱하는 마음이 올라왔다가도 이내 가라앉는다. 오랜만에 한국에 갈 때도 요즘 뭐하고 사냐? 하는 질문이 왜 아기 안 낳냐는 질문 다음으로 난감하다. 2 연타를 콤보로 맞으면 정신이 멍해진다. 결혼을 하고도 애를 안 낳는 백수는 쓸모없는 여성으로 취급받는 느낌이 들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가 아기 없이 살기로 합의를 본 것은 아니다.
남편은 이런 나의 자존감을 높여주기 위해서 우리가 함께 시작한 <이태리 부부>라는 유튜브 채널의 수익을 내 명의의 통장으로 받도록 해주었다. 유튜브 수입이 생기고 나서는 크든 작든 매 달 내 통장으로 수입이 들어오고 있다. 내친김에 명함도 만들었다. 그런데 아뿔싸 명함을 나눠줄 사람이 없다.
난 지금까지 뭘 하고 살았나? 나라고 한창 일할 나이에 먹고 놀고만 싶었겠는가 어디? 일을 할 수 있는 기회도 있었고, 내가 살고있는 나라의 특성상 일을 만들면 얼마든지 시작할 수도 있었다. (숙박업이나 가이드 등등) 언젠간 나만의 새로운 길을 개척할 수도 있고, 여행업에 종사하게 될 수도 있겠지만 현실의 나는 일을 해야만 한다는 간절함도 없고, 무엇보다도 오랜 시간 동안 사회생활을 하지 않다 보니 아직 30대 초반임에도 불구하고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었다.
-마냥 이렇게 놀아서 될까? 나의 하루는 매일 아침 나에게 던지는 똑같은 질문으로 시작한다. 세상 밖으로 나갈 용기가 없다면 우선 나 스스로를 성장시켜 보기로 한다. 의지력이 약한 나는 매일 집에서 스스로를 채찍질 하기는 힘들기 때문에 여러 가지 상황들을 억지로 만들었다. 이탈리아 학교에 등록하고, 이탈리아 사람들과 함께 재봉틀을 배우고, 책 읽기를 한다. 그렇게 매일 나를 상황에 노출시킨다. 세상 밖으로 나가는 연습을 한다. 뭐라도 하고 있다는 자신감이 생긴다. 남들이 보기엔 내가 매일 바쁘게 사는 것 같아 보이지만 사실은 백수인 내가 못 견디겠어서 뭐라도 해보려고 발버둥을 치는 중이다. 바쁘게 사는 척을 하다 보니 내가 뭐라도 된 것 같은 느낌이 든다.
나도 평생 백수로 살 생각은 없다. 요즘은 워낙에 좋은 세상이다 보니 세계 어디서든 인터넷과 정보만 있으면 돈을 벌 수 있다. 그런 점에서 매달 꾸준히 수입을 주는 유튜브에게는 정말 감사하다. 용기가 없다면 내가 직접 세상 밖으로 나가서 일을 하지 않아도 내가 가진 경험과 지식 공유만으로도 수입이 된다. 유튜브를 직업이라 생각하지 않아서 내스스로를 백수라 칭하며 자책했지만 앞으로는 유튜브나 다른 플랫폼들로 인해 생기는 많은 기회들을 적극적으로 잡아볼 생각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