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월 중순, 한국 보다도 이탈리아의 사태가 심상치 않게 흘러가는 것 같아서 일찌감치 마스크 50장과 손 세정제는 충분히 구매해 두었다. 기능성 마스크는 아니고 덴탈 마스크지만 이마저도 구하지 못한 사람들이 많다. 하루가 다르게 상황이 급변했다. 중국인 상점들이 예고 없이 영업을 중단하기 시작하더니, 모든 학교들이 휴교령이 내려지고, 확진자가 많이 발생하는 일부 지역만 봉쇄라더니, 밀라노를 포함한 롬바르디아 주 전체 봉쇄, 이탈리아 각 도시 이동 간의 금지령, 지금은 외출 금지령까지 내려진 상태이다.
3월 11일 늦은 저녁 외출 금지령이 떨어지던 날도 나는 과연 이탈리아가 심각하게 이 상황을 받아들이고 철저히 통제할 수 있을지 의아했다. 그러나 예상과는 달리 이탈리아 정부는 지금 군사력까지 동원해가며 외출을 적극적으로 막고 있다. 이미 지역 사회로의 감염이 심각한 상태이긴 했지만 불행 중 다행이라고 해야 할까?
벌금도 세다. 생필품을 사러 슈퍼에 갈 때도 자술서를 써야 하고, 필수 산업을 제외한 모든 산업은 중단되었으며, 반려견 산책까지 자제해 달란다. 국가 차원에서 도시 봉쇄와 더불어 외출 금지라는 정책까지 펼친다는 것은 나라가 방역에 자신이 없다는 건데 우리는 이탈리아에 남아 있어도 될까? 걱정이 되었지만 때는 이미 늦었다.
고생해서 얻은.. 비록 월셋집이지만 따뜻한 우리 집이 있고, 외출 금지령이 있던 날 든든히 사둔 생필품과 먹을 것이 있으니 우린 그냥 이곳에서 버티기로 했다. 그나마 다른 유럽 국가들에 비해 이탈리아가 심각성을 깨닫고 발 빠르게(?) 잘 대처하는 것 같아서 이탈리아 정부를 한 번 믿어 보기로 한다. 집 나가면 고생이라는데, 여기가 우리 집인데 가긴 어딜 가?
지극히 이성적인 우리 부부가 플랜 B도 없이 한국에 들어올 리 없다는 것을 잘 아시는 양가 부모님들도 오냐고 묻지는 않으셨다. 물론 걱정이 되실 것 같아서 안부 전화도 자주 드리고 유튜브 영상도 매일같이 업로드하고 있다.
지금 우리 부부는 여느 이탈리아 사람들과 마찬가지로 집안에서만 지내며 현지의 상황은 뉴스로만 접하고 있다. 우리 집은 평온한데 이탈리아의 상황은 마치 언제 끝날지 알 수 없는 재난 영화 같다. 진짜 영화면 좋겠지만 실제로 하루에 수백 명이 목숨을 잃고, 수많은 가족들이 예고 없이 영원한 이별을 맞이한다. 너무 슬프고 나에게도 일어날 수 있는 일이라 생각하니 악몽도 자주 꾸게 된다. 나는 지금, 그저 조금 불편할 뿐이지만 이 사태로 가족을 잃은 사람들은 평생을 악몽에 시달리게 될 것이고, 상황이 좋아지고 나서도 괜한 화살이 아시아인인 우리에게 돌아올 수도 있겠다 싶은 굳이 하지 않아도 될 걱정을 미리 하고 있다. 지금도 심각 하지만 전염병이 지나고 난 후의 후유증은 모두에게 더 크게 다가올 것이다.
신이시여! 인간의 상처들이 전염병처럼 돌고 돌아 나에게 닿아도 개의치 않을 의연함을 주세요!
종교는 없지만 하늘에 우리를 위한 신이 계실지도 모르니 오늘부터 열심히 기도해보기로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