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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Jun 19. 2024

다이어트와 산티아고 순례길의 방정식

산티아고 걸으면 살이 빠질까

우리는 365일 늘 다이어트 중

 산티아고 순례길을 살을 빼러 가는 목적으로 가는 사람들은 없겠지만 걷기로 결정하신 분들이라면 ‘이왕이면 살도 빠졌으면 좋겠다’고 많이들 생각할 것이다. 나도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결정하고, 또 실제로 걸으면서 ‘이참에 더 건강해지고 살도 많이 빼서 가야지!’라고 생각한 장본인이기에 이해한다. 뭐 나름 건전한 생각이라고 느끼는게 일석이조로 평생 꿈꾸던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도 하며 늘 숙명처럼 데리고 다닌 체중감량의 목표도 같이 이룰 수 있다면 이 얼마나 달콤하겠는가. 아무리 먹어도 살찌지 않고, 며칠 좀 적게 먹으면 살이 쭉쭉 잘만 빠지던 20대가 지나 이제는 전보다 덜 먹어도, 더 운동을 해도 살이 정말 안 빠지는 40대를 바라보고 있다. 나는 어른들이 그냥 하는 말인 줄 알았는데 내가 한 해 두 해 나이가 들어가며 보니 정말 나이살이란게 존재하더라. 살이 없던 곳에 군살이 붙고, 몸매라는 단어보다 몸뚱이라는 단어가 더 어울리게 해마다 몸이 다운그레이드를 해간다. 아 너무 속상해. 아마 40대가 되어가는 분들이라면 대부분 365일 내내 다이어트라는 목표는 기본치로 달고 살고 있지 않을까.


 내가 딱히 다이어트에 목표를 정하고 출발하진 않았지만 산티아고를 걸으면서 딱 3kg만 빠져서 왔으면 하는 두리뭉실한 희망사항이 있긴 했다. 무언가 한 달이라는 긴 시간을 매일 규칙적으로 걷고 돌아오면 조금 더 독해지고, 부지런 해질 거고 그렇게 돌아온 다음에는 새로운 정신상태로 유지도 잘할 자신이 있었다. 하지만 사람은 절대 변하지 않는다. 군대 갔다 온 사람들이 다 사람 돼서 돌아오는 것도 아니고, 감옥에서 나온 사람들이 다 용서를 뉘우치고 나오는 것도 아니듯 큰 변화를 겪어도 사람이 변하는 건 쉽지 않다. 내가 원래도 독하게 다이어트를 잘하고 유지하는 사람이었다면 마흔이 다 되어가는 이 마당에 이미 원하는 몸무게로 살고 있었을 것이다.


매일 먼 길을 걷는데 살이 빠지나요

 당연히 순례길을 걷기 시작하면 살이 빠진다. 특히나 일주일 정도되면 만나는 모든 사람들의 얼굴이 어느새 얄팍하게 가냘퍼져 있다. 특히나 남자들은 일주일 사이에 3-4kg도 빠진 것 같다고 하는데 확실히 여자보다는 살이 금방, 또 많이 빠지는 것 같다. 걸은지 일주일쯤 되었을 때 일본인 친구 메구미도 “아~ 나 살 좀 빠져서 돌아가면 참 좋겠다.” 이 말을 했었는데 사람과 국적을 불문하고 다이어트에 대한 생각은 참 비슷한 것 같아서 웃음이 나왔다.

 하지만 일주일이 지나서 몸이 슬슬 가벼워지기 시작할 때가 딱 많이 먹기 시작할 때와 겹친다. ’내일 잘 걸으려면 먹어야해‘, ’미리 당을 충전해야 해 ‘, ‘오늘 수고했으니까 맛있는 거 먹자’ 등 힘든 만큼 배도 고프기 시작하고 에너지를 음식으로 채워둬야 한다는 어떤 의무감이 같이 자란다. 워낙에 평소보다 걷는 양이 차이 나게 많다 보니 먹는 것에 비해 살은 잘 안 찌지만 다이어트와는 좀 거리감 있는 행동인건 사실이다.

 길 떠나기 전 누군가가 쓴 글을 봤었는데 “산티아고에 도착한 그날의 몸무게가 앞으로 내 인생의 최저 몸무게가 될 것이다”였다. 하지만 지금 기억해 보면 글쓴이도 남자였고, 여자분들은 살이 드라마틱하게 빠지시는 분들은 없는 것 같았다. 그러니 나의 조언은 다이어트 생각하지 마시고 건강하게만 다녀오시라는 거다.


산티아고에서 살을 못 빼는 이유

 그래도 한 달 정도를 내리 걷는데, 일찍 잠을 자느라 야식할 틈도 없는데 살이 안 빠지겠냐고? 물론 빠진다. 하지만 자연스럽게 순례길 초반에 안 걷던 사람이 한 달 내내 긴 시간 먼 거리를 걸으니 빠지는 거지 의도적으로 빼서 빠지는게 아닌 건 확실하다. 순례길을 걷다 보면 정말 내 걸음 하나하나에 신경 쓰고 매일 다른 루트에 새롭게 적응을 하는데 정신이 없기 때문에 다이어트를 의식하며 생활할 수가 없다. 한마디로 다이어트는 안중에도 없게 되는 것. 내가 정말 독해서, ‘다이어트를 해야지!’하고 갔다고 해도 순례길… 그렇게 만만하지 않다. 열심히 걷는 것 외에도 조심하고 신경쓸 일들이 얼마나 많은데 말이야. 매일 새로운 곳에 짐을 풀고 싸고, 늘 뭐 잃어버리거나 두고 가는거 없는지 확인하고, 어디로 가는지 방향 체크하며, 가는 길에 화장실과 카페 들를 곳이 있는지, 숙소는 잘 예약했는지, 루트에 따라 길이 험한지 안 험한지 등 몸도 지치는데 정신도 바짝 차려야 한다.

 물론 걷다 보면 두어 시간 평야, 완만한 길이 나올 때는 정말 멍 때리고 걸을 수도 있지만 메고 가야 하는 짐도 있고, 날씨의 변화도 있고 의외로 젠(Zen) 상태의 깨끗한 명상을 할 수 있는 순간은 생각보다 많지 않다. 걷다 보면 걷는 생각으로 머리가 가득 찬다. 혼자 이것저것 내 안의 나와 하는 대화가 아닌 나와 내 다리가 느끼는 무거움에 대한 대화가 대부분이다.

 게다가 스페인 음식이 좀 맛있어야지. 지역마다 문어, 타파스 등 새로운 음식이 계속해서 눈에 띄고, 현지 음식이라 전통레시피에 맛이야 한국인에게 너무 잘 맞지. 음료는 또 어때. 갈증을 참아가며 도착한 바에서 시원한 클라라(일명 레몬맥주, 맥주와 레몬환타 섞은 것)나 띤또 데 베라노(레드와인에 탄산음료 섞은 것)처럼 달달한 술을 피할 수 있을까? 내가 스페인에 사는 것도 아니고, 지금처럼 물처럼 마실 수 있을 때가 언제 온다고, 지금 열심히 먹어놔야지. 대부분의 지역 레스토랑에 있는 점심 메뉴 코스는 3코스에 12유로에서 14유로 정도로 이건 피할 수 없는 오퍼인데다 하루 종일을 걷고 내가 나에게 주는 상처럼 먹는 식사시간을 안 기다릴 수가 없다.


그래서 살이 빠졌을까?

 결과적으로 일시적으로 빠졌었다. 아마 2kg 전후? 보통 체형인 나를 비롯해 같이 걸은 마른 친구, 일본인 친구 다 포함해 주위에서 눈에 띄게 홀쭉해진 여자분은 정말 아무도 없었다. 반면에 남자분들은 정말 많이 빠진다. 덩치가 있으면 있을수록 그 결과는 눈바디로만 봐도 와우 소리가 나올 정도지만 보통 체격의 남자분들이라면 드라마틱한 정도는 더 줄어드는 것 같았다.

 나는 순례길 가기 전에 예행연습이랍시고 가방을 메고 집에서 매일 2시간씩 워킹머신 위를 몇 달 걸었을 때 거진 4kg을 감량했다. 물론 가능한 야식을 안 먹으려고 노력하고, 음식을 몰아 먹지 않으려고 조심했던 결과였다. 다리가 아프기 시작하고 순례길 가기 전 한 달이 넘게는 아예 운동을 멈춰서 2kg 정도는 다시 쪄서 간 산티아고에서 감량은 못해왔다.

 

 

 더 중요한 부분은 얼마가 빠졌든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유지를 했는지 아닌지가 아닐까? 나 같은 경우에는 31일간의 산티아고 순례길을 마치고 산티아고에서 하루 더, 런던에서 6일을 더해 총 7일간을 더 외국에서 놀다가 집으로 돌아왔다. 이제 걷는 것도 멈추고, 음식은 여행 다니면서 더 먹고 들어오니 집에 돌아와 잰 몸무게는 출발하기 전보다 1kg 더 쪄있더라. 이런… 런던에서 스콘이랑 베이글, 애프터눈 티세트 등 이것저것 먹고 싶은거 다 먹은걸 이렇게 지불하는구나… 아쉬웠지만 생각하지 못했던 결말도 아니고 그렇다고 산티아고를 걸을 때처럼 이곳에서 매일 새벽에 일어나 운동하듯 걷지는 않을 것임을 난 안다. 나와 같이 걸었던 동생들도 남자 여자 할 것 없이 하나같이 원래의 몸무게를 회복했다고 한다. 그것도 단시간에.


우리는 순례길을 걸을 뿐 다른건 기대하지 말자

 

 산티아고는 나에 대해 다시금 생각하게 해주고, 그동안 정리 못했던 복잡한 마음들을 정리하게 도와주는 길인건 확실하다. 게다가 인생에 한번 있을까 말까한 긴 모험인건 누구든지 동의할 것이다. 하지만 내가 그 길을 걸었다고 나라는 사람이 순식간에 바뀌고 그전에 내게 없던 단호한 마음과 칼 같은 행동력을 만들어 주는 기적의 길은 아니다. 물론 누군가에게는 계시와 같이 눈이 번쩍 뜨이는 깨달음을 줄 수도 있겠지만 정말 평범한 보통 사람 중 한 명으로서 그런 경험은 꾀나 드물 거라고 생각한다. 그래서 난 모든 분들께 산티아고 순례길은 마음을 비우고 걷기를 추천한다. 아무것도 바라지 말고, 길이 주는 작은 감동들에 즐거워하며 있는 그대로 걷다 보면 분명 무언가는 남는다. 사람에게 배우고, 길에게 배우고, 어떤 날은 나의 못난 모습을 보면서도 배운다. 비록 산티아고 순례길에서 다이어트라는 보너스를 얻지는 못해도 내가 배운 작은 감상이나 깨달음이 미래의 예상치 못한 어느 때에 든든한 버팀목이 돼줄 테니 의심하지 말고 걷자. 살은 못 빼도 무언가 하나씩은 건져가는게 순례길이다.


내가 생각하는 다이어트와 산티아고 순례길의 방정식

산티아고 순례길 걷는다고 살 안 빠진다 (혹시 순례길에서 살 많이 빠지셨고 유지하고 있으신 분이 있다면 거참 부럽다)

 근데 아무 생각 없이 걷다 보면 마음이 소소한 감동들로 채워지는 것 같다

 산티아고 다녀온다고 내가 바뀌지는 않지만 그때 느낀 감동들로 마음 한구석이 든든해진다

 그걸 해냈다는 나 자신이 뿌듯하고 자랑스럽다

 분명한건 길이 나에게 무언가는 줄 거라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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