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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Jun 28. 2024

순례길 위의 사람들에게 배운 것들

결국은 사람에게서 위로받고 용기를 낼 힘을 얻는 순례길

나 혼자 걷기로 한 산티아고

 

 서른아홉에 걷기로 한 산티아고 순례길. 산티아고 순례길을 걷기로 결정한 이유는 30대를 잘 마무리하고 뭔가 당차게 40대를 시작하고 싶어서였고 나이로만 따지면 난 어리지도 않은, 그렇다고 중년이라고 하기에는 좀 애매한 예비 중년쯤 되는 시기였다. 내가 서른 중반까지 승무원으로 외국 항공사에서 일하면서 늘 꽉 찬 비행 스케줄을 소화하기 위해 오프에는 집에서 쉬는게 중요한 반강제적 집순이가 되며 친구도 그리 많지 않았고, 결혼 후 개인주의 가득한 유럽에 정착하며 더더욱 집순이가 된 터라 친구를 만들어야지 하고 간 순례길은 아니었다. 이리 외국에서 게다가 비행을 하는 특별한 상황에서 오래 지내다 보면 평소 혼자인게 당연해지고, 정말 친한 친구 몇 아니면 잘 만나지도 않고, 그나마 친한 친구들도 각자의 비행 스케줄에 서로 정신없이 바빴기에 내 사람이라고 하면 정말 진한, 오래된, 서로의 공백을 이해해 주는 특정한 사람들로 한정되어 있었다. 그런 오랜 시간이 검증된 친구들이 있었기에 산티아고에서 새로운 사람을 만나야지! 하는 마음은 조금도 없이 ‘혼자 걸으며 생각을 하자’를 목표로 그렇게 가볍게 떠나기로 했다.


남들의 순례길 글과 영상들을 보며 들었던 생각

 가기 전에 다양한 브런치, 유튜브, 블로그에서 산티아고 순례길 후기와 영상을 찾아볼 때 어쩜 다들 꼭 맞는 친구들을 만들고 누나, 형, 동생 하며 같이 걷고 하는게 참 신기했다. 내가 친구를 쉽게 못 만드는 성격도 아니고 사람과 만나는 걸 좋아해 직업마저 승무원을 택한 파워 ENFP인데 오랜 시간 외항사와 중동, 유럽 등의 특이점 아래 살다 보니 상황이 많이 달라졌나 보다. 순례길을 완주하고 마지막 헤어질 때 울정도로 친해지는 사람들의 영상들을 보며  ‘저렇게 마음이 맞는 사람들이 생긴다는 것도 복이겠구나’라는 생각이 절로 들었다. 하지만 열정 넘치는 20대 초반 어린 친구들의 이야기라 무언가 나와는 조금 거리 있는 이야기 같았다고나 할까. 순례길 위에서 정말 좋은 사람들을 만난다면 좋겠지만 내가 원한다고 또는 꼭 만들어야지 각오하고 간다고 만나지는게 인연이 아니라는 정도는 이해하는 40대를 바라보는 나였다. 그냥 자연스럽게 아무 바람 없이 나는 혼자 걷는다 생각하고 길을 떠났지만 물론 좋은 사람을 만나게 된다면 참 행복하긴 할 것 같았다. 순례길을 걷는 그 특별한 순간을 평생 공유할 동기를 만든다는 건 남자들의 군대동기처럼 고생도 같이, 끝도 같이하며 서로의 여정의 증인이 돼줌과 동시에 진한 전우애 비슷한 감정을 나눌 테니까 말이다. 나도 그런 이들이 생긴다면 좋겠지만 바라거나 기대를 하진 않기로 했다. 누누이 새긴 것처럼 난 허물없이 모든 것에 열려있는 20대 청춘이 아니니까 말이다.


첫날에 만난 나의 사람들

 그런데 인연이라는 게 참 재밌다. 생장의 순례자 사무실에서 미국 아저씨를 만나고(미국에 사는 아저씨여서 미국 아저씨), 첫날 피레네 산맥을 넘고 도착한 론세스바예스 공립 알베르게에서 선생님과 메구미, J 씨를 만났다. 처음부터 우리 다 같이 똘똘 뭉쳐서 함께 해보기로 해요 이런 가공적인 순간없이 모두 각각 만났는데 우연찮게 선생님이 미국 아저씨와 빨래를 같이 하시면서 알게 되고, 선생님과 이야기하는 J 씨와 나도 자연스럽게 인사하게 되며 시작된 인연이 산티아고 끝나고 나서도 새해라고 같이 줌 미팅도 하고 가끔 안부도 묻는 따뜻한 사이가 되었다.

 같이 걸을 때는 걷고, 따로 걸을 때는 따로 걷고, 같이 걷다가 멀어졌다가도 도시에 도착해서 밥을 같이 먹는 사이. 누군가 나의 안부를 묻고, 따뜻한 밥을 함께 먹는다는게 순례길 길 위에서는 이만큼 큰 위안이 없다. 내가 만난 사람들은 정말 하늘에서 내려주신게 아닐까 싶을 정도로 선했고, 따뜻했다.


나의 산티아고 인연 1. 선생님
닮고 싶은 아낌없이 주는 나무
선생님이 에스텔라애서 만들어 주신 내 인생 최고의 삼겹살


  선생님과의 만남은 첫날 생장에서 얼핏 지나가시는 걸 인사드리며 시작되었다. 한국인만 보면 너무 반가워서 오지랖 넓은 내가 인사를 건네었는데 간단히 목례로 받으시고 지나가시는게 한국인과 별로 안 섞이고 싶어 하시는 기운이 역력했다. 근데 첫날 피레네에서 내리막 길에 왼쪽의 가파른 길을 선택하고는 길을 잃은 것 같아 당황했을 때 다시 만났다. 다행히 선생님이 앞에서 쭉쭉 걸어가 주셔서 따라 내려가며 하루를 잘 마무리했는데 알베르게에서 침대를 배정받아보니 나와 같은 침대 구역, 바로 마주한 침대라 그때부터 대화를 시작하게 되었다.

 내가 오늘 걸으며 허벅지 근육이 마비되고 정말 힘들었다 하니 무뚝뚝하다고 생각했던 이분이 마그네슘과 바르는 약을 건네주셔서 너무 놀랐다. 게다가 배드버그 물리면 먹으라고 비상약도 챙겨주시고 외국에서 왔다고 하니 한국 음식 그립지 않냐고 꿀호떡 두 조각을 쉬크하게 나눠주시는데 선생님 덕분에 첫날부터 한국인의 정을 가득 충전하며 시작했다.

 어느 도시를 도착해도 선생님이 밥을 사주시고, 우리가 내겠다고 해도 못 내게 하시고, 가끔 먼저 가시는 날에는 우리가 들리면 따뜻한 음식 주라고 가게에 계산하고 가시는 등 감사한 일들이 너무 많았다. 아무리 돈이 많은 사람이라해도 남들 밥사주는게 어디 쉬운 일이겠는가. 마음의 여유와 생각하는 마음이 없었다면 세상 제일가는 경제력을 가졌더라도 남에게 천 원 한 장 쓰기 어렵다는 걸 우리 모두 알지 않을까. 선생님을 보며 내가 선생님 연배가 되어 다시 산티아고를 걷게 된다면 나도 어린 친구들에게 한없이 베풀 수 있는 여유와 자상함을 갖추고 싶다고 생각했다. 돈도 많이 벌어서 내가 밥도 부담 없이 다 사주고 싶다. 원래 하이킹을 많이 하신다는 선생님과 함께하며 걷는 방법이라던지 스트레칭하는 방법도 많이 배웠고, 미술이나 삶에 필요한 지식 등 무엇을 물어봐도 친절하게 대답해 주시는 선생님을 보며 많이 배웠다. 선생님을 만나 내가 나이가 들었을 때 이루고 싶은 어른의 모습을 생각해 볼 수 있는 기회도 되었던 것 같다.


나의 산티아고 인연 2. 메구미
동갑내기 친구에게 배우고 싶었던 강인함
메구미가 챙겨준 밤, 함께 걸은 날에는 시원하게 짠 하는 행복


 메구미는 팜플로나에서 생장 들어가는 버스를 같이 타서 얼핏 보았지만 인사를 나누진 못했고 첫날 론세스바예스에 도착해서 바로 옆구역 침대에 배정받으며 말을 나눴다. 첫 느낌은 막 친절한 일본인은 아닌 나름 적당한 거리를 두는 것 같은 전형적인 일본인인 것 같았다. 나중에 시간을 두고 알고 보니 츤데레였던 이 친구는 무슨 일이 있어도 꿋꿋하게 자기 갈길을 가는 정말 강단 있는 친구였다. 무엇을 먹어도 너~무 맛있다 소란 떠는 나에 비해 조용히 “응, 맛 좋네.” 조용히 넘어가고 “오늘 정말 너~무 힘들어서 죽는 줄 알았어”라고 내가 엄살을 부려도 “힘들긴 했지.” 쿨하게 말하는 그 쉬크함이 주는 강인함에 나중에는 내가 기대게 되더라. 큰 감정의 기복 없이 현실에 제대로 충실한 메구미를 보며 그녀의 진중함을 닮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주위 사람들이 몇 시에 가건, 어디로 가건 휩쓸리지 않고 자기의 타이밍에 맞춰 혼자 씩씩하게 걷는 친구. 언제나 부정적인 이야기, 아픈 이야기는 안하고 속으로 묵묵히 안고 가는 듯한 친구. 남들에게 의지하지 않고, 독립적인 모습이 차가운게 아니라 심지 곧아 보이는 친구라 내가 말은 안했어도 정말 오랫동안 알아가고 싶었던 사람이었다.

 이렇게 무심한 듯 한 그녀도 우리 언니가 도착하고 같이 걷기 시작했을 때 내가 “우리 언니 밤 참 좋아해” 한 걸 듣고 걷다가 발견한 밤을 주워 언니 가져다주라고 건네는 의외의 달달한 놀라움을 안겨주는 친구. 산티아고를 끝나고 일본으로 돌아갔다가 몇 주 안 돼 다시 가나, 케냐 아프리카 곳곳을 홀로 여행하는 대담함도 있고 그 와중에 내가 사는 이탈리아로 엽서도 보내주는 따뜻함이 있는 친구. 정말 잃고 싶지 않은 소중한 사람이 되었다.

 혼자여도 아무 탈이 없을 것 같은 강인한 친구이지만 그렇다고 긴 여행들을 하며 그녀라고 외로울 때가 없진 않을 거다. 그런걸 티 안내고 묵묵히 소화시키고 더 큰 그림에 집중하는 강인함이 나에게 없는 덕목이기에 참 많이 배웠다.


나의 산티아고 인연 3. J 씨
편안함을 배우고 싶었던 부드러운 동행자  
헤어지는 날 받은 파란 엽서와 비석은 지금도 소중히 간직하고 있다


 J 씨는 나보다 4살 어린 남자 동생이지만 같이하면 세상 든든한 우리의 인간 구글맵이자 인간 위키피디아였다. 나도 파워 ENFP로 어디 가도 살갑게 남들과 잘 어울리고 어른들이랑 잘 맞는 편인데 와… J 씨를 보고 난 아무것도 아니었구나 생각이 들었을 정도로 그의 친화력과 지식은 넘을 수 없는 수준으로 나 또한 입을 떡 벌리고 감탄할 때가 많았다. 미국에서도 잠시 살았고, 중국에서도 잠시 살았다는 그는 언어를 잘할 뿐만 아니라 정말 아는 지식이 많았다. 그리고 마치 산티아고를 적어도 두세 번은 온 것처럼 길에 대해서 공부를 미리 하고, 다양한 앱을 통해 길을 어떤 식으로 미리 예측할 수 있는지 정말 빠삭했다. 예를 들어 날씨는 AccuWeather 앱이 가장 정확하고, 오늘 걸의 길의 고도와 난이도 확인은 Camino Ninja 앱에서 높이를 확인하면 된다는 등 정말 유용한 팁을 많이 주었다. 나는 그냥 그러려니 하고 걷는 길도 J 씨는 “오늘은 어제에 비해 높은 곳은 많이 없어 난이도가 훨씬 쉬울 거고, 두 시간 정도 뒤에 중간 난이도의 언덕 하나만 넘으면 돼요” 이렇게 귀에 쏙쏙 들어오게 풀어 설명을 참 잘했다. 이것도 정말 재능이구나 싶을 정도로 화법이 남다르다고나 할까. 게다가 모든 종착지의 맛집도 얼마나 잘 아는지 그만 믿고 따라가면 동네에서 손꼽는 맛집 중 하나를 갈 수 있었다. 나도 승무원 짬밥이 있으니 구글맵으로 잘 찾아다니는 편이지만 검색해도 안 나오는 곳을, 게다가 본인도 처음인 순례길의 온갖 시골의 맛집을 잘도 찾아서 식사시간이 기대될 정도였다.

 많이 알면 잘난척하거나 아는척하는 사람이 더 많은 세상에 J 씨는 단 한 번도 자신의 지식에 대해 으스대거나, 남들이 폭풍같이 묻는 질문들에도 짜증 하나 없이 즐겁고 친절하게 알려주었다. 그런 그를 보며 이 친구는 아주 깊은 곳에서부터 선한 사람이라는 느낌이랄까, 사랑이 많은 사람 같다고 느꼈다.

 3주를 넘게 봐가며 가장 높게 산 부분은 그의 한결같은 지속성과 누구와 있어도 편하게 그 사람의 결을 맞춰주는 부드러움이었다. 도를 넘지도 않으면서도 함께하는 사람들의 감정적인 부분도 챙겨주는 섬세함도 있었던, 동생이지만 세상에 이렇게 침착하고 현명하고 박식한 ENFP가 존재한다는 거에 감탄을 하게 해 준 J 씨. 동생이어도 배울게 있으면 배워야지! 정말 오랜만에 사람에게 ‘이런 부드러움과 편안함 매너는 어디에서 나오는 걸까?’ 신기하고 멋졌던 산티아고의 인연이었다.

 

산티아고 인연 4. 이안
이야기와 취향, 격이 있는 사람
J 씨가 찍어 준 걷고있는 이안과 나


 이안은 순례길을 시작하고 며칠 뒤에 길에서 만난 영국 데본셔에서 온 60이 넘은 아저씨다. 몇 년 전에 어머니를 잃고, 언젠가는 가야지 늘 생각만 했던 산티아고 순례길을 시작했다는 그는 스토리와 취향 그리고 격이 느껴지는 사람이었다. 먼저 말하는게 늘 예의 바르고 자신의 이야기를 선뜻 공유해 주는 따뜻함이 있는 분이었는데 그냥 돌아가신 어머님을 생각하며 무작정 걷기보다 매 순간의 모험을 즐기며 조금 더 길을 특별하게 만들기 위해 먼 길을 마다하지 않는 사람이었다. 지역에 유명한 순례자 의식을 하는 알베르게가 있다면 길을 더 걸어서라도 그곳에서 머물기 위해 가고, 폰페라다에서는 도서관이 너무 멋있다고 씻자마자 도서관으로 달려가는 사람, 철의 십자가에서 어머니를 생각하며 돌을 올려두며 울었다는 아저씨. 조용한 알베르게에서 와인 한 잔 하며 클래식을 들으며 고요함이 주는 웅장함 속에서 영적임을 느꼈다는 이분은 나에게 나이가 들어도 올곧은 신념과 취향을 갖고 사는게 참 멋지다는 것을 보여준 분이었다. 이안을 보며 나도 늘 이야기와 취향이 있는 사람이 되고 싶다는 생각을 했다. 그리고 그분처럼 누군가와 대화를 할 때 나를 더 오픈할 수 있는 가슴과 바른 예의를 지닌다면 국적과 나이를 불문하고 세상 누구와도 친구가 될 수 있다는 것를 배웠다. 이렇게 산티아고의 인연은 참으로 무한한 것 같다.


산티아고에서의 인연은 선물

 

 정말 사람을 만나야지 하는 바람은 조금도 없이 시작했던 나의 순례길. 본인의 몸으로 처음부터 끝까지 꿋꿋하게 걸어야 하는 큰 모험이기에 누군가에게 의지하려는 생각자체가 약한 거라고 생각하고 간 산티아고에서 결국에는 사람에게 배우고, 위안받으며 크고 작은 동기부여를 받았다. 결국에 우리가 사는 사회도 다 사람과의 상호작용들이 모여서 이루어지는 건데 왜 산티아고라고 다를 거라고 생각했던 걸까. 그래도 한 가지 분명한 건 여기서 만들어진 인연은 더 선하고 더 끈끈할 것이라는 거다.

 물론 순례길을 걷는 모든 사람들이 선하다는 이분법적 사고는 지양한다. 내가 만난 H양을 괴롭혔다던 중년의 한국인 단체 아저씨들, 뿌루퉁해서 걸어 다니던 어떤 미국인 아줌마, 한국인인인데 의도적으로 한국어를 안 쓰고, 한국인들과 안 섞이려하며 영어만 쓰고 외국인들에게만 친절한 그런 이상한 사람도 있었다 (꼭 외국인친구들을 만들어야지 기를 쓰고 온 듯한 불편함이 가득한 사람이었다). 뭐 그들이 그렇게 행동하고 싶어 하는 안타까운 사연이 있을지도 모르고 나에게 직접적인 피해를 준 건 아니지만 내가 운이 좋아서 가까이하는 사람들이 참 좋았던 거지 모든 사람이 다 좋겠거니 지레짐작하고 왔다가 상처받는 불행은 안 겪으셨으면 해서 언급은 해두고 싶다.

 하지만 혼자 준비하며 불안한 마음에 시작도 하기 전에 그룹을 만들고, 같이 걸을 동행을 찾을 정도의 수고를 안해도 내 사람이 될 인연은 자연스레 만나게 된다는 동화 같은 이야기를 내가 경험했기에 알려주고 싶었다. 역시 인연이란 애를 쓴다고 되는게 아니니까.

 산티아고 순례길이 만들어 주는 인연은 정말 선물과 같이 놀랍고 소중하다. 아마도 우리가 생각지도 않았기에 더 감사하고, 길고 긴 거리를 걸으며 서로에게 이렇게 존재만으로 힘이 돼주는 사람을 또 어떤 세상에서나 만날 수 있을까 꼭 꿈에서 귀인을 만나는 듯한, 서로에게 한여름밤의 꿈같은 존재가 돼버린다. 아무래도 시작과 끝이 정해진 고된 모험이라는 한정성 때문에 우리는 더 가까워지고 더 진해질 수 있지 않았을까. 그리고 꿈에서 깨듯 순례길이 끝나는 순간 어쩌면 지구 반대편에서 언제 순례길을 걸었냐는 듯 현실로 돌아가 하던 일들을 하며 그 전과 같은 삶을 살고 있을 거다. 하지만 그렇기에 산티아고에서 만든 동기, 친구들은 더 가까워진다. 우리가 유일하게 순례자로서의 서로를 기억하는 목격자이자 동료였으니까. 여자들이 남자들 군대 이야기만 하면 아주 이해가 안 가고 진이 빠지듯 우리 순례자들 사이에도 그런 진한 이야기가 있다. 아마 안 다녀온 사람은 죽어도 모를, 우리만의 이야기를 과연 함께 걸은 친구들 말고는 누가 이해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사람에 대한 기대 없이 가도 내 사람은 순례길이 정해준 것 마냥 자연스레 우리를 찾아올 것이다. 나에게 그러했고, 길을 시작하는 여러분에게도 반드시 그러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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