Day 6 산티아고의 고마운 사람들
2024년 9월 9일 월요일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6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사진 촬영은 금지예요
오늘도 하루를 힘차게 시작해 본다. 아침 일찍 일어나 산티아고까지 걸어가며 중간에 보이는 바에 들어가 코르타도에 빵으로 아침 식사도 먹어주고,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성당에게 얼굴도장도 찍고, 그렇게 순례자 사무실로 씩씩하게 걸어간다. 오늘도 사무실 오픈 전에 줄이 많이 서있는데 평소와 다르게 한국인 몇 분 들이 눈에 띈다! 신기하고 반가워서 인사를 하는데 어떤 남자분이 살갑게 말을 걸어 주신다.
“아! 그분이구나! 단톡에서 보았던 봉사자 분!”
아니 이게 무슨 말씀이시지? 단톡? 사진? 의아해하니 순례자분이 대답을 해주신다.
“까친연 단톡에 며칠 전 순례 마쳤던 한국분이 자원봉사자가 너무 친절했다고 사진 올려주시고 그분에게 가라고 했어요.”
아뿔싸! 혹시 그 사진? 하고 바로 머리를 스치는 게 있으니 바로 자원봉사를 시작했던 날 나의 첫 번째 한국인 순례자분! 그분이 콤포스텔라를 발급드리는 사이에 우리와 셀피를 찍으시는 걸 보고 순간 어찌해야 할지 몰라 반사적으로 함께 브이를 그리며 사진을 찍었었다. 원래 순례자 사무실에서는 사진을 촬영하면 안 되는데 첫날에 긴장도 하고, 그 순례자분도 당연히 좋은 의미로 기억하시려 사진을 남기시려는 걸 테니 “사진 촬영 안돼요!” 하고 저지를 하진 않았다. 아직 자원봉사 시작한 지 몇 시간 되지도 않았던지라 일단 멀티태스킹도 안되었고 몸이 반사적으로 브이를 그리며 그렇게 남겼던 사진이 단톡에 올라와있을 줄이야. 내 사진이 돌아다니는 건 둘째치고 다른 한국인 순례자분들이 혹시나 순례자 사무실에서 사진을 찍어도 된다고 그렇게 인식하실까 봐 그게 조금 걱정이 되었다. 뭐 그래도 몇십 명의 순례자들이 이용하는 단톡인 데다 매일 새로운 순례자들의 여정과 사진들로 업데이트될 테니 얼른 묻히기를 바랄 수밖에.
나에게 사무실에서 찍힌 내 사진을 봤다 말씀해 주신 순례자분께 “저 예쁘게 나오긴 했나요?” 농담을 하며 하루의 일정을 시작해 본다.
*** 그래도 이 공간을 이용해 조심스레 다시 말씀드리고 싶다. 순례자 사무실 안에서 사진 촬영이 금지되어 있답니다. 사진 촬영하시면 누군가 저지할 수도 있다는 거 알아주세요.***
맨발의 순례자 그리고 기록보다는 여정
순례자 사무실의 문이 열리고 순례자들의 번호가 차례대로 대기판에 뜨기 시작한다. 나는 이렇게 조용하게 시작하는 아침이 너무 좋다. 적당한 수의 순례자들이 천천히 아침을 시작하시는 게 내가 걸었을 때의 고요했던 아침을 떠올리게 하거든.
얼마 안 되어 나와 문 앞에서 대화를 나누었던 순례자분이 내게 오셨다. 정말 남다르셨던 게 이분은 맨발로 순례길을 걸으신 맨발의 순례자이시다! 어떻게 그런 결정을 내리신 걸까? 그 이야기를 듣자마자 나는 그분의 발과 안전이 더 걱정이 되더라고. 신발을 신고도 힘든 순례길을 조금 느리더라도 맨발로 완주하셨다니 그 인내가 정말 대단하신 것 같다. 많이 힘드셨을 텐데도 환하게 웃으시고 즐거움에 가득 차 보이는 그 모습이 참 사람을 즐겁게 해 주신다. 축하드린다고 미니 츄파춥스를 하나 드렸는데 맨발의 순례자분이 우신다. 울지 마세요. 저도 따라 운다고요. 방금 전까지 만에도 호탕하게 웃고 계시던 분인데 힘이 드셨긴 하셨나 보다. 생각지도 못했던 난관과 부상 등 얼마나 많은 일이 있으셨겠어. 그래도 다행히 다시 환하게 웃으시고 즐거워 보이셨던 처음의 그 모습 그대로 떠나셨다. 오늘은 이렇게 또 다른 감동의 한국인분과 따뜻하게 아침을 시작한다.
오후에는 순례길만 벌써 14번째라는 버진 아일랜드에서 오신 데이비드 할아버지를 만났다. 콤포스텔라도 거리증명서도 필요 없다고 하시는 할아버지는 단지 순례자 여권에 도장만 찍어 달라고 하신다. 콤포스텔라는 무료 증명서인데 그래도 한 장 받아가시죠 권유하는 나에게
“내게는 종이보다 내가 걸어온 여정이 더 중요하기에 콤포스텔라도 필요가 없답니다. 내가 알고 있으니까요.”
이렇게 쿨하게 말씀하시고 도장만 받고 퇴장하신다. 이 말이 정말 사실이지만 나를 포함한 우리 대부분은 내 여정을 어떤 형태로라도 확인받고 남기고 싶어 한다. 내가 어떻게 어떤 길을 걸었는지는 우리 스스로가 더 잘 알 텐데 우리는 왜 이렇게 볼 수 있는, 만질 수 있는, 확인할 수 있는 무언가를 만들어 소장하는 걸까. 어떤 사람에게는 남들에게 보여줄 수 있는 하나의 이야기일 수도 있고, 어떤 사람에게는 나를 다시 일깨워주는 알람이 될 수도 있다. 나에게는 그게 동기로 다가온다. 콤포스텔라와 거리 증명서를 보면 길을 걸으며 배웠던 사람으로부터의 교훈들과 길이 변화시켰던 내 모습도 떠올리고, 앞으로 무언가 더 잘할 수 있을 것 같은 동기부여가 된다. 그래도 가장 큰 이유는 아무래도 추억이겠지. 어쩌면 인생에 한 번일 수도 있는 몇십 일간의 여정을 잊지 않고 간직하기 위해서 말이야. 추억으로부터 무엇을 얻어가는지는 우리 모두가 다 다를 것이다.
내가 데이비드 할아버지처럼 나이가 든다면 아마 순례길을 대하고 생각도 또 추억하는 방법도 많이 달라질 듯싶다. 세월이 지나며 어떻게 변할지 나도 스스로를 한 번 지켜봐야겠다.
산티아고에 한국언니들과의 소중한 시간
오늘은 지영언니와 E언니가 점심을 초대해 주셔서 함께 하는 날이다. 오후 2시에 봉사를 마치고 함께 E언니와 함께 메뉴 델 디아를 맛있게 한다는 레스토랑에서 지영언니를 만났다. 지영언니가 엄선하신 이곳 레스토랑에서 정말 일 년 만에 메뉴 델 디아를 먹으니 작년에 순례길을 걸으며 숱하게 먹었던 메뉴 델 디아 경험들이 생각나 실실 웃음이 난다. 아 정말 재밌었단 말이지. 한국에선 코스메뉴라고 하면 거창한 고급 레스토랑에서 콩알만큼 나오는 럭셔리 스타일에 비싸게 파는데 스페인은 정말 고급음식이 동네식당 양으로다 아낌없이 나오니 늘 눈이 휘둥그레진다. 가식 없는 스페인 사람들의 생활이 음식에도 고스란히 반영되는 듯한 담백한 느낌. 오늘은 그걸 산티아고에 사시는 언니들 덕분에 오래간만에 다시 체험하게 되어 너무 신났다.
오늘의 메뉴 델 디아는 15유로에 한잔의 술을 포함해 첫 코스는 문어, 두 번째 코스는 소고기, 마지막 디저트로는 플란을 먹었다. 메뉴들이 꾀나 다양해서 첫 코스는 먹는 게 남는 거라는 문어를 다 함께 먹었어도 두 번째 메인은 각자 치킨과 생선튀김과 비프 이렇게 골고루 시켜 나눠 먹었다. 모든 게 양도 많고 얼마나 맛있던지 역시 음식집은 현지인 따라 들어가는 게 최고라는 걸 다시 한번 느낀다. 디저트도 치즈케이크와 플란 둥 중에 하나 선택하는 거였는데 앞에 두 메뉴로 이미 배가 너무너무 불러서 차마 치즈케이크를 시킬 수 없었을 정도였다.
언니들과 거진 4시간 정도의 길고 긴 대화를 나눴다. 외국사는 이야기들, 산티아고에서의 생활, 자원봉사 일에 대한 감상들 그리고 사람들. 식사를 다 하고 아쉬워서 또 근처 카페로 옮겨 달달한 캐러멜 마끼아또도 마셔가며 즐거운 시간을 보냈는데 겨우 2주 와있는 한국인인 나를 이렇게나 챙겨주시고 신경 써주시는 게 너무 감사할 나름이다. 이곳의 현지 봉사자 언니, 선생님들은 하나같이 이렇게 친절하신 게 이분들의 이야기를 듣고 있으면 나도 여기서 살고 싶다는 생각이 들 정도다. 서로 챙기고 나눠가며 산다는 이 분들의 그 선함과 밝음이 꼭 닮아있다. “저 이곳에서 막내노릇 잘할 자신 있어요!” 하니 이사 오라고 웃으며 받아주시는 착한 언니들. 혹시나 언니들이 이탈리아에 오실 일이 있으시다면 혹은 내가 연이 되어 산티아고에 다시 돌아가는 날에 무언가 이런 신세를 갚을 수 있는 날이 왔으면 좋겠다.
브런치와 알고리즘
언니들과 즐거운 시간을 보내고 집으로 돌아오는 길 숙소로 들어가기 전 일반 알베르게 리셉션에 들려 소포를 하나 찾아왔다. 이 소포로 말하자면 작년에 함께 순례길을 걷다가 회사일로 일찍 한국에 돌아가신 선생님의 선물! 작년 로그로뇨까지 걸으셨던 그 길을 이어 며칠 전에 순례길을 다시 시작하신 선생님이 마드리드에서 내게 보내신 소포였다.
함께 걸었던 나와 선생님과 J 씨 그리고 미국 아저씨까지 우리는 카톡 단톡방을 통해 가끔씩 좋은 일이 있으면 알리고, 안부도 묻고, 서울에 사시는 선생님과 J 씨는 만나기도 하면서 소중한 인연을 이어오고 있다. 물론 내가 순례자 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하게 되었다는 소식도 봉사 시작하는 당일 알리긴 했었다. 내가 봉사 시작한 지 이틀 뒤에 선생님이 스페인에 오시면서 내 생각이 났다고 공항에서 이것저것 사신걸 우체국에서 보내주셨는데 이렇게 커다란 상자를 보내주셨을 줄이야.
내 앞으로 배달된 택배는 바로 열어보는 게 대한민국 국민의 본능이자 국룰이야, 나도 어쩔 수 없어. 숙소에 돌아와 짐을 내려놓자마자 상자를 열어보았다. 상자를 가득 채운 가방을 열어보니 선생님의 남기신 메모가 가장 먼저 눈에 띄었다.
젊어서는 추억을 만들고 늙어서는 그 추억을 먹고 산다고
동생의 글을 통해서 행복하고 맛있는 추억을 많이 많이 먹어서…
원고료를 대신합니다
내가 브런치에 작년에 걸은 산티아고 이야기를 썼던 ‘서른아홉에 걷는 산티아고’에 대한 말씀이셨다. 실은 그 글들은 아무에게도 알리지 않고 혼자 몰래 쓴 이야기다. 가족들에게도 친구들에게도 특히나 산티아고를 같이 걸은 우리 동기들에게도 말을 안 하고 그저 내 추억의 창구로 남겨두려고 시작했단 말이지.
그런데 우리 산티아고 동기들이 알게 된 건 어느 날 J 군이 구글에 그의 관심사를 띄워준다는 게 내 브런치 글을 하나 추천해 준 것. 무서운 알고리즘의 세상이다. 그가 그렇게 발견한지 3개월이 더 지나서야 내 연재가 끝났는데 J 씨는 혹여나 자기가 글을 보고 있다는 걸 내게 알리면 쓰려는 글에 영향이 있을까 봐 내 연재가 마칠 때까지 기다렸다고 한다. 정말 뭐야 뭐야. 나 이 친구한테는 계속 반할 일밖에 없다. 어쩜 속이 이리 깊은지 배려심 왕 중의 왕이지 뭐야. 나라면 그렇게 했을 수 있었을까? 여하튼 J 씨에 깊은 섬세함에 다시 한번 감탄을 했었다. 그리고 J 씨가 선생님께 내 브런치 소식을 알려서 그렇게 선생님도 내 글을 접하게 되신것이다.
선생님과 나 그리고 호떡
선생님이 보내신 소포에는 정말 많은 것들이 들어있었다. 라면들과 김치들, 김자반과 도시락김에 심지어 소주에 건오징어까지 보내셨고 보름달 빵과 단팥크림빵에 핫해서 먹어보고 싶었던 먹태깡을 포함한 여러 종류의 과자들도 있었다. 게다가 여러 장의 마스크팩을 포함해 엠플과 크림 같은 화장품에다 내가 좋아하는 딥디크 향수까지 아니 선생님 이건 너무 큰 선물 아닌가요! 또 이것들을 보내신다고 마드리드 우체국에서 두 시간이나 보내셨다고 하는데 호락호락하지 않은 유럽의 택배 시스템을 이기고 보내주신 거다. 작은 인연을 이렇게나 챙겨주시다니 그저 감사 또 감사할 뿐이다. 하나같이 마음에 들고 과분한 선물이었지만 그중에서도 내 마음을 가장 크게 움직인 건 바로 ‘삼. 립. 호. 떡.’
이건 선생님과 내가 순례자 동지로 친해지기 시작한 아주 중요한 이야기의 핵심이었기에 그 의미가 남달랐고 이 호떡을 보는 순간 ‘아… 섬세하신 선생님이 또 선생님 하셨다.’는 생각에 웃게 된 정말 귀엽고 소중한 선물이었다.
작년에 생장 순례자 사무실 앞에서 선생님을 잠깐 스치듯 뵈었고, 또 피레네 산맥의 험난했던 내리막에서 고생할 때 또 선생님을 마주쳤었지. 그리고 힘겹게 도착한 론세스바예스에서 같은 구역의 건너편 침대를 배정받아 이야기를 나누게 되며 시작된 인연. 내가 외국에서 산다는 말을 들으시고
“그럼 이런 것도 좀 그립겠네.”
하시며 쿨하게 호떡빵 두 개를 나눠주셔서 내가 엄청 감동하며 아껴 먹었던 기억이 아직도 생생하다. 그걸 기억하시고 또 호떡을 넣으시다니 이거 너무 감성 넘치시잖아! 그날 내가 피레네를 넘으며 허벅지를 크게 결렸다고 하니 바르는 크림도 빌려주시고 마그네슘 약에 혹시 모른다고 처방받아오신 배드버그 약까지 나눠주셔서 한국인의 정을 느꼈다고 언니한테 자랑했던 날이었는데 말이야. 선생님 덕분에 오늘 정말 작년 산티아고 생각이 많이 난다. 특히나 호떡 한봉지는 내 마음을 바로 작년 론세스바예스로 보내는 타임머신 같은 선물이었다.
과분한 선물들이라 많이 얼떨떨하지만 정신을 차리고 선생님께 전화를 드렸다. 차분하신 목소리로 아무 일도 아닌데 뭘 그러냐고 덤덤하신 게 나를 울컥하게 만드신다.
“그래도 이게 얼마나 크고 무거운데 이걸 저 주신다고 다 가져오셨어요, 힘드시게.”
감사하고 죄송한 마음에 불평 아닌 불평을 해보지만 선생님은 여전히 차분한 톤으로 웃으시며
“아니 내가 가져오나, 비행기가 가져오지. 급하게 공항에서 몇 개 담아본 거야.”
라며 정말 별거 아니라는 듯이 말씀하시는 게 난 더 감동이었다. 마흔 살이 다 된 성인으로서 가족을 제외한 누군가에게 이렇게 돌봄과 챙김을 받아보는 경험은 어색하지만 아주 특별한 감동이었다.
이날은 자원봉사자 식구들에게 내 까미노 친구가 보내준 거라고 자랑도 하고 한국의 과자를 나눠먹는 특별한 밤이 되었다. 선생님 감사합니다!
이번에는 나의 추억이 된 선물
나중 이야기지만 산티아고에 머물며 선생님이 보내주신 라면들과 과자들을 얼마나 유용하게 잘 먹었는지 모른다. 이상하게도 뭘 먹고 들어와도 하루종일 말을 해서 그런지 몰라도 밤에 그렇게 배가 고파지더라고.
그럴 때 생각나는 건 당연 한국 음식들. 특히나 매운 게 당기는 저녁에는 신라면 또는 불닭에 김치캔 하나 털어 넣고 후루룩 먹는 컵라면의 맛과 감동은 말해 무엇하리. 아마 이탈리아에 있을 때보다다 더 많은 한국음식과 간식을 먹었던 산티아고에서의 2주였던 것 같다. 선생님이 추억의 값이라고 보내주신 선물 덕분에 나는 또 새로운 추억들을 만들어 올 수 있었다.
내가 산티아고 데 콤포스텔라에서 저녁에 입이 심심하다고 침대에서 먹태깡을 먹게 될 줄이야 상상도 못 했지. 한국음식들과 함께하니 꼭 산티아고에 소풍온 느낌 같았던 그런 재밌는 추억을 가져갈 수 있게 해 주신 선생님께 마음 깊이 감사드린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