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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몽키거 Oct 05. 2024

8개월 아기가 산티아고 순례길을 완주했다고요?

Day 7 한비야 선생님을 만난 날

2024년 9월 10일 화요일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 자원봉사 Day 7


순례자 사무실에 한비야 선생님이 오셨다

 

선물받은 순례자 플레이모빌, 분주한 순례자 사무실 앞

 

 평화로운 순례자 사무실의 오후 근무를 위해 오늘도 일찍 나와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 앉아 가능한 이 분위기와 감상을 눈에 담으려 노력한다. 오늘은 특별하게 어제 선생님에게 받은 선물 중 하나인 순례자 플레이모빌을 데리고 나와 비슷한 크기의 비석도 사다가 대성당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었다. 산티아고 대성당 앞의 순례자라니 이 얼마나 컨셉이 명확한 사진인가 싶어 아주 마음에 든다. 순간 작년 순례길 중 팜플로나에서 샀던 이탈리아 집에 있는 또 다른 순례자 플레이모빌 생각이 나는 건 뭘까.

 ‘아, 그 친구도 산티아고 대성당 앞에서 사진 한 장 찍어줄 걸 생각도 못했네.’

 아니 이게 무슨 사람이라고 생각이 나는지 그만큼 팜플로나에서 순례자 플레이모빌을 발견했을 때 그 희열? 놀라운 기쁨과 반가움이 대단했기에 내가 순례길에서 산 기념품 중 가장 애착이 가는 친구인 건 확실하다. 다음에 산티아고에 다시 돌아온다면 가져와서 대성당 앞에서 사진을 찍어줘야지 생각이 든다.


 순례자 사무실에 출근을 해서 여느 때와 다름없이 여러 순례자들과 즐거운 대화를 하며 콤포스텔라 발급일을 하고 있는데 지영언니가 저기서 나를 부르신다. 요즘 기간에는 한국분들이 많이 안 계셔서 아마 도착하신 한국인분께 인사하자고 부르셨나 싶었는데 어머나? 어디서 매우 많이 뵌 분이시다. 바로 모든 여성들의 우상이셨던 한비야 선생님이 아니신가. 네덜란드인 남편인 안톤과 함께 계셨는데 프리미티보 길을 걸으셨고 이번이 선생님의 첫 산티아고 순례길 완주라고 하신다. 고등학교 때 선생님의 책을 안 접해본 사람이 있을까 싶을 정도로 세계여행을 하는 바람의 딸로 유명하셨던 선생님. 조심스럽게 사진 찍어도 되냐고 여쭤보았는데 흔쾌하게 함께하자고 하셔서 기념사진을 남길 수 있었다. 한국인들이 순례자 사무실에서 봉사하는 것도 신기하고, 참 좋은 일 하는 것 같다며 명함도 주고 가셨는데 와~ 에너지라고 할까, 아우라라고 할까, 그 단단하고 힘차신 느낌이 대단하셨다. 산티아고 순례자 사무실에서 이렇게 유명인도 만날 수도 있구나 그저 신기하다. 우리 엄마도 한비야 선생님 책 참 좋아하셨는데 말이야. 고등학생 때 교보문고에 진열돼 있던 선생님의 책에서 뵌 그 얼굴이 세월이 지나셔도 그대로이신 것 같았다. 고단한 여정이셨을 텐데도 밝고 신나 보이시는 선생님의 모습에서 나도 힘을 얻는다. 꾸준히 여행과 모험을 하시는 선생님을 뵙고 나서 나도 세월이 흘러도 새로운 걸 찾아 도전하는 걸 멈추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든다. 그나저나 남편분과 함께 걸으신 거는 정말 부럽더라. 나도 우리 신랑이랑 순례길을 걷고 싶은데 아직까지는 당찬 NO라는 대답만 돌아와서 흠… 시간을 갖고 살살 꼬시는 중이다. 언젠가는 나도 남편이랑 함께 순례길을 걷는 그날이 오길 바라본다.


8개월 된 아기가 순례길을 완주했다고요?

 늦은 오후에 한 젊은 부부가 콤포스텔라를 받으러 왔는데 일반 부부와 다른 한 가지 특별함이 있었다. 바로 남자분의 팔에 안겨있던 예쁜 아가였다. 몇 개월이냐고 물으니 이제 겨우 8개월이란다. 부모님이 안고, 뒤에 메어가며 순례길을 걸어온 것인데 그들의 순례자 여권은 총 3개. 그럼 콤포스텔라도 3개인가? 싶었을 때 나의 구원자 지영언니가 다가와 도와주셨다. 우리가 아는 순례길은 우리의 몸을 이용해 걸어오는 것, 자전거를 타는 등 직접해야 인정이 되고 최소한 콤포스텔라로 향하는 마지막 100km 이상을 채웠을 때 콤포스텔라를 발급해 준다. 그렇다면 이 귀여운 아가는 어떡해야 할까? 알고 보니 바로 아기들을 위한 증명서가 따로 있었지 뭐야. 와~ 나 오늘도 큰 거 하나 배운다.


콤포스텔라와 어린이 순례 증명서

 

 아이를 위한 증명서는 우리가 받는 일반 콤포스텔라와 매우 닮아 있었다. 콤포스텔라의 정말 귀여운 일러스트레이션 버전이라고나 할까. 증명서에 아기의 이름과 오늘의 날짜를 적어주는데 우리가 받는 콤포스텔라보다 훨씬 짱짱하고 두꺼운 종이는 아마도 아기들의 서툰 손에서 덜 구겨지는 재질로 선택해서 그런 것 같았다. 이런 세심한 배려가 참 마음에 든다. 이 안에는 대략 이러한 내용이 적혀있다고 한다.


산티아고 대성당의 수도회는 사도 성인의 유해를 보호하며, 이 어린이 순례 증명서를 다음과 같이 발급합니다:
성 야고보 대성당에 도착하였으며, 성 야고보의 무덤 앞에서 기도하였음을 증명합니다.
주님께서 축복하시고, 성 야고보 사도가 이 어린이를 보호해 주기를 기원합니다.


 아기의 이름이 적혀진 이 귀여움 넘치는 어린이 순례 증명서를 받아 든 아기엄마는 자신의 콤포스텔라를 받았을 때보다 더 행복해하신다. 가끔 열 살 근처의 어린아이들과 순례길을 걷는 가족들도 보았지만 8개월은 정말 대단한 것 같다. 나중에 저 작은 아이가 자라서  부모님과 함께 직접 걸어 순례길을 걷고 산티아고에 도착해 진정한 콤포스텔라를 받았을 때 부모님의 표정이 어떨지 상상이 간다. 언젠가는 그럴 날이 오겠지. 무언가 이 가족은 꼭 그렇게 셋이 다시 돌아올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축하해 예쁜 아가야! 오늘 네가 받은 증명서와 너의 부모님의 것이 아주 조금은 다르게 생겼어도 이번이 너의 첫 산티아고 순례길이었다는 데는 변함이 없을 거야! 건강하게 자라서 순례길에서 보길 바랄게.


한국의 할머니 같은 이탈리아 할아버지

 오늘도 즐겁게 자원봉사를 마치고 숙소까지 순례길을 따라 걸어왔다. 걸어오는 내내 집에서 날 기다릴 한국음식들 생각에 신이 나서 도착하자마자 신라면 컵누들에 김치를 넣어 거진 흡입을 했다. 어제 선생님이 보내주신 한국음식들이 숙소에 있다는 생각을 하니 오늘따라 다른 음식을 먹고 싶지 않고 오직 이 음식들 생각만 나더라고. 라면을 하나 끝낸 것도 부족해 무언가 부족해 삼립호떡을 열어 다 먹어 버렸다. 원래도 슈퍼빵 중에서도 옛날부터 호떡을 참 좋아했었고 지금도 겨울에 밖에서 사 먹는 꿀호떡보다 이 빵으로 된 호떡을 더 좋아한다. 이건 고양이에게 생선을 맡긴 격이란 말이야. 아마 이탈리아로 돌아가기 전에 한국 음식 거진 다 끝낼 것 같다는 예감이 든다. 결국 삼립호떡을 앉은자리에서 다 먹어버렸다. 변명을 하자면 말이야 내가 부엌에서 이것들을 먹기 시작할 때 이탈리안 사브리나가 도착해서 아주 길고 긴 이야기를 나누기 시작했기 때문이야. 이야기하면서 하나 둘 들어간 게 어느새 끝난 건 내 잘못이 아니라고. 그래도 먹으면서 너무 행복했으니 맛있게 먹은 건 0칼로리로 치자고!


 이렇게 나만의 한국식 저녁을 거하게 먹고 호떡빵으로 아주 배를 꽉꽉 채워줬는데 늦은 저녁, 거진 10시가 다되어 잠깐 부엌에 쓰레기를 버리러 들어갔다가 이탈리안 할어버지 니콜라에게 걸려버렸다! 이탈리안 할머니 할아버지는 한국의 할머니와 그 결이 정말 비슷한데 이것도 먹고, 저것도 먹으라고 끊임없이 퍼주는 음식들에 행복한 고문을 당할 준비를 해야 한다는 것. 게다가 이탈리아 할아버지들은 요리도 잘하신다는 더 강력한 특징이 탑재되어 계시단 말이지.


요리하는 할아버지 니콜라와 뇨끼 아라비아타


  니콜라는 아이랜드에서 온 내 자원봉사 동기 디와 함께 먹을 뇨끼 아라비아타를 만들고 계셨는데 꼭 먹고 가라고 이미 저녁 먹었고 배가 부르다는 나를 앉혀 한 그릇 가득 내어주신다. 스크램블 계란에 크림치즈를 발라 간단한 부르스케타도 만들어 주시고, 후식으로는 무화과 젤리를 올린 빵을 내미신다. 배 너무 부르다고 손사래를 쳐도 아주 단호하게

 “네가 먹은 거 아무것도 아니야, 이거 하나만 더 먹어. 겨우 빵인데 뭘.”

 이러시며 내일부터 다신 못 볼 사람한테 마지막 식사를 먹이듯 정말 밥숟갈 들고 따라다니는 할머니처럼 한 입만 먹으라고 외치신다. 내가 졌다. 정말 천천히 니콜라가 먹으라고 주는 거 다 먹었다. 근데 또 다 맛있지 뭐야. 특히나 단순하기 그지없는 뇨끼가 너무너무 맛있어서 그릇을 싹 비웠다. 내가 이탈리안 남편과 살아서 이탈리안들에 대해 조금 더 짙은 애정이 있긴 하다만 니콜라는 내가 만났던 그 어떤 이탈리안보다 정이 많아서 나도 이 할아버지 함께 하는 시간이 늘 즐겁다.

 아이랜드인인 디와 이탈리안 니콜라와 한국인인 나의 대화의 반은 영어 반은 이탈리아어로 아주 흥미진진하기에 누가 관전하는 사람이 있었으면 정말 재밌었을 거야. 니콜라는 이탈리아어에 아주 조금의 스페인어, 디는 영어에 아주 조금의 스페인어, 나는 영어에 아주 조금의 이탈리아어로 소통하니 나와 니콜라는 이탈리아어로(물론 내가 부족), 니콜라와 디는 짧은 스페인어를 하다 안되면 영어로(니콜라가 부족) 대화를 하는데 일정 시간이 지나면 니콜라는 알아듣지도 못하는 디에게 이탈리아어로 말을 하고 있다. 나와 디는 영어로 대화를 하는데 대부분 니콜라의 이탈리아어를 영어로 번역해 주느라 바쁘다. 쉴새 없이 이탈리아어로 말하는 니콜라 덕에 나의 부족한 이탈리아어에 상상력을 달아 디에게 영어로 전달해 주느라 바빠지는게 너무 웃기다. 그래도 우리 셋은 뭔가가 잘 맞아서 함께하는 시간이 참 즐겁다. 언어를 뛰어넘어 서로를 다정하게 대하고, 끝없이 이야기를 나누며 서로를 알아가려는 모습을 보면 누구나 알 수 있을 거야, 우리가 서로를 챙겨준다는 걸 말이야. 와인 한잔을 기울이며 니콜라가 대접하는 따뜻한 식사 속에서 우리의 하루를 함께 마무리하는 소중한 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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