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생각하는 프랑스 생장에서의 완벽한 하루 일정

단 하루만 생장에서 머문다면 난 이렇게 보낼 거야

by 몽키거
작은 마을 생장에서 하루를 보낸다면?

프랑스길을 시작하는 모든 순례자들의 시작점인 생장. 대부분의 순례자들은 도착한 바로 다음날 서둘러 순례길을 시작하느라 작지만 아기자기하고 예쁜 생장을 즐기기 참 힘들단 말이지. 내가 이번에 순례자사무실에서 자원봉사를 해보며 일주일 넘게 있어본 결과 하루정도 더 먼저 와서 즐겨보는 것도 나쁘지 않은 것 같다. 일단 첫날부터 프랑스 국경을 넘어 스페인을 주야장천 걷는 순례길이기에 유일무이한 프랑스 구간이라는 의미도 있고 여긴 특별한 바스크문화권이라 음식이나 기념품 등 특색이 있어서 머무는 재미가 좋기 때문에 참신한 경험이 될 것이다. 오늘은 만약에 내가 생장에서 하루라는 시간이 있다면 이렇게 보내겠다 싶은 일정들을 공유해보려고 한다. 개인적으로 남편과 함께, 그리고 산티아고를 함께 걸은 우리 친언니와도 한번 정도는 생장으로 1박 2일 여행 오는 것도 괜찮겠다 싶은 생각이 들었기에 여행지로서도 매력 있다고 생각한다. 물론 우리 같은 순례자, 예비 순례자들에게는 프랑스길을 시작하는 곳이라는 깊은 의미와 다른 순례자들의 고조된 즐거움들이 가득한 생장을 거니는 것 자체만으로 이미 큰 의미가 더해지니 재미가 없을 수가 없지!

사람마다 선호하는 여행지가 다른데 나는 파리나 런던처럼 대도시에 박물관 많고, 유명한 랜드마크들과 먹을게 가득한 곳을 좋아한다. 그렇다고 미친 듯이 시간을 쪼개서 깃발 꽂기 마냥 모든 유명명소와 맛집을 다 가야 직성이 풀리는 스타일은 또 아니다. 적당히 쉬어가며 다니는 편이지만 먹고 경험하고, 볼 것들이 끝이 없는 곳들에서 선택권이 많은걸 매우 좋아하는 성향이랄까. 나같이 대도시를 선호하는 사람이 있는 반면 우리 형부같이 여행은 무조건 쉬러 가야 한다는 성향의 사람들도 있는데 형부는 여행은 무조건 휴양지고, 대도시는 쉬러 가는 게 아니기에 고로 여행이 아니다고 생각한다. 관광파, 휴양파로 나누자면 나는 여유 있는 선택적 관광파라고 할까. 이제는 딱 유명한 것들만 보고, 내 취향에 맞는 미술관에서 더 많은 시간, 그리고 로컬 맛집에서 제대로 된 음식 한 끼와 좋은 디저트 정도면 만족하게 되었다. 아, 이 이야기를 왜 하는 거냐면 생장에서의 하루는 휴양파에 조금 더 적합한 형태일 거라는 걸 말하고 싶어서다. 일단 도시가 아주 작고, 대단한 랜드마크가 있는 건 아니기에 바스크형태의 집들을 구경하며 조용한 강가를 산책하고 바스크 음식을 경험해 보는 그런 평온한 하루를 원하시는 분들께 추천하고 싶다.


자 그럼 생장에서의 24시간, 하루 여행을 시작해 볼까?


생장에서의 여유로운 아침
Artizarra 베이커리 겸 카페와 산책길 Pont d'Eyheraberry

먼저 아침 식사로 하루를 시작해 보자. 바스크 케이크로 유명한 Artizarra에서 바스크 케이크 한 조각과 카페 알롱쥬를 시켜 잠을 깨워본다. 소박하지만 우아한 이곳의 특산품인 바스크 케이크에 일반 아메리카노보다는 조금 더 짙어 풍미가 좋은 카페 알로쥬는 최고의 조합이 될 것이다. 혹시 우유가 들어간 커피를 선호한다면 카페 오레를 시키면 된다. 겉바속촉의 담백하며 크리미 한 달달구리 바스크케이크를 먹으며 여러 빵들로 가득 찬 진열장도 구경해 보고 주인아주머니와 이야기도 나눠보자. 카페나 식당에서 언제나 가장 쉽게 대화를 여는 마법의 문장은 “여기서 가장 유명한 게 뭐예요? 추천해 주세요.”이니 한번 시도해 보는 게 어떨까. 프랑스에서는 서두를 필요가 없다. 필요한 만큼의 시간을 가지고 머물러도 되니 여유롭게 아침 식사를 즐겨보자.

가벼운 대화와 함께 든든하게 배를 채웠다면 근처 강가 Pont d'Eyheraberry를 산책해 보자. 노트르담 성당을 돌아 다리 옆으로 펼쳐지는 작은 산책길인데 아침의 생장은 정말 조용해서 새소리와 물소리만 들릴 정도로 자연을 제대로 느낄 수 있다. 한강변처럼 커다랗고 길지는 않지만 왕복하면 30분 정도의 짧지만 정말 예쁜, 꼭 도시가 아닌 숲 속에 있는 듯한 인상을 주는 산책길이기에 매우 추천한다. 산책 후 기념품들을 구경해 본다. 순례자라고 하면 순례길에 필요한 용품이나 순례길 관련 자석 등 보고 살게 많겠지만 오늘만큼은 바스크와 관련된 기념품들을 눈여겨보자. 피레네산맥 지역의 양모로 만든 바스크문화에서 빠질 수 없는 베레모를 구경해 보고 직접 착용도 해볼 수 있다. 유럽 아주머니들이 좋아한다는 바스크 직물 특산품인 수건들과 행주들도 꼭 눈여겨봐야 할 아이템. 대부분의 상품에 바스크 전통 무늬나 바스크에서 유명한 양, 고추 등의 자수들이 들어가 있어 고르는 재미도 있다. 이렇게 아침은 생장은 어떻게 생긴 곳인가를 천천히 눈에 담는 시간으로 생각하면 좋을 것 같다. 독특한 집모양들과 조용한 사람들, 그리고 아주 이른 아침부터 정오까지 각각의 시간에 순례길을 시작하며 지나쳐가는 많은 순례자들을 보면 ‘아, 내가 프랑스길의 시작인 생장에 와있구나.‘를 절로 느낄 것이다.


생장의 맛있는 오후
Café Ttipia의 최고 디저트 크렘븰레

한가한 아침을 생장의 생김새와 분위기를 파악하는데 썼다면 점심은 생장의 맛을 알아봐야지. 점심식사를 먹으러 Café Ttipia로 가볼까. 메뉴가 가끔 바뀌기야 하겠지만 베스트셀러들은 항상 있는 것 같다. 바스크 스타일 야채볶음과 프랑스 현지 수제 소시지가 나오는 Saucisses confites « maison », 블랙푸딩(서양식 순대인데 더 고기비율이 높고 식감도 살짝 더 단단)도 찾아볼 수가 있다. 나의 원픽은 오징어 샐러드이니 해산물 좋아하시는 분들은 꼭 이걸 선택하시길 바란다. 식사 전에 샹그리아나 바스크 지역의 와인을 한 잔 시켜 함께한다면 금상첨화. 여유롭게 식사를 마치고 반드시 디저트 크렘뷜레를 시키는 걸 잊지 말자. 내가 비행을 하며 여러 나라에서 먹어본 크렘뷜레 중에서도 최상위권에 꼽을 정도로 맛있었다. 가격도 합리적인데 맛보장이 되는 곳, 바스크 스타일의 음식들이 많다는 점에서 정말 만족하실 곳이라 추천한다.


생장의 대형 까르푸

점심을 먹고 이제 소화를 시켜야지. Café Ttipia에서 걸어서 10분 거리에 까르푸를 가보자. 가는 길이 차도 옆이긴 하지만 높은 건물 하나 없이 눈앞에 탁 트인 산과 들판들도 보일 테니 도착하는 내내 예쁜 경관을 즐길 수 있다. 까르푸에 도착해 프랑스 초콜릿, 간식거리들도 사보고 오늘과 내일 안에 먹을 수 있다면 신선한 과일들과 유제품들도 한두 개 골라보면 좋다. 평소 동네 마트 구경하기를 즐기시는 분들이라면 정말 행복하실 거라 보장한다. 유럽에는 까르푸도 편의점만 한 소형으로 구성된 곳들도 많은데 여기 프랑스 생장의 까르푸는 대형이기 때문에 꼼꼼하게 둘러보면 한 시간은 훌쩍 간다. 까르푸가 또 프랑스 브랜드 아니겠어, 까르프의 오리지널 나라 프랑스에서 호기심으로라도 들려보는 재미가 쏠쏠하다. 개인적으로 초콜릿 토피 캐러멜과 린트 초콜릿의 크렘뷜레 에디션을 추천한다. 당장 내일 스페인령으로 넘어가면 더 이상 보기 힘든 프랑스 제품에 맛도 보장하니 재밌는 경험으로 가볍게 즐기기 좋다.


La Citadelle에서 바라보는 생장


숙소로 돌아와 까르푸에서 산 물건들을 내려놓고 잠시 쉬다가 이번에는 순례자 사무실 쪽 언덕으로 올라가 보자. 지나가는 길에 순례자 사무실 안에 들려 이곳에서만 살 수 있는 프랑스 순례자 협회의 기념품들도 한번 눈여겨보고, 궁금점 같은 걸 물어보는 것도 좋다. 기념품은 줄을 안 서고 바로 들어가 마음껏 보고 나올 수 있으니 원하는 게 있다면 기억해 두었다 오후 늦게 순례자 사무실이 한가할 때 와서 빠르게 구입하는 것도 방법이다. 순례자 사무실에서 살짝 위로 올라가면 전망대라고 볼 수 있는 La Citadelle 옛 요새를 찾을 수 있는데 이번에 이쪽으로 산책을 하는 거다. 오후에 해가 중천에 있을 때가 가장 예쁘니 너무 이른 아침과 아주 늦은 저녁은 피하길 추천한다. 안전하고 한적하지만 그래도 사람이 너무 없는 시간은 지양하는 게 좋지 않겠어? 나이가 들면 들수록 안전에 더 염려를 두게 되는 게 나 아줌마는 맞는 거 같아. 여하튼 La Citadelle에서 보는 생장은 정말 아름답다. 바스크형식의 집들이 옹기종기 모여있고 온 도시가 산으로 둘러싸여 있는 게 자연 속에 숨겨진 비밀의 도시 같다는 생각도 든다. 전망대에 올라가면 이곳에서 볼 수 있는 도시들을 그려놓은 안내도가 있는데 왼쪽 저 멀리가 순례자들이 도착해야 하는 론세스바예스란다. 입구에서 바로 전망대로 올라가는 길도 있고, 쭉 돌아 요새 밑을 걸을 수 있으니 두 가지를 다 시도해도 채 40분이 안되기에 다 해보시길 추천한다.


노트르담 뒤퐁 성당

내려와서 이번에는 노트르담 뒤퐁 성당을 방문한다. 노트르담 뒤퐁 성당은 아주 크진 않지만 프랑스길이 시작되는 이곳에 어울리는 나름 멋진 성당이다. 가톨릭이신 분들은 이곳에서 고해성사도 하실 수 있으니 참고하시면 좋을 것 같은데 1시에서 2시 사이였나? 상시가 아닌 특정한 시간대에만 가능하기에 필요하시다면 생장에 도착하자마자 아침에 교회에 들려 당일의 고해성사 가능 시간을 확인하시는 게 좋을 것 같다. 무엇보다 매일 수십 명 수백 명의 순례자들의 마음속 기도들이 자리하는 곳이기에 그 자체로도 우리에겐 마음을 울리는 설렘과 염원들이 서려있는 상징적인 장소이다. 작은 기도와 함께 긴 초에 불을 붙여 촛불 축성을 해보는 것도 추천한다. 노트르담 뒤퐁 성당 건축이 조금 특이한 게 성당이 마을의 방어 성벽(ramparts)에 통합되어 있어 마치 성벽 일부처럼 보이고 구조적으로 다리 옆 접근로와 붙어있으니 이걸 한번 눈여겨보는 것도 재밌을 것 같다. 생장에서 기념사진을 남긴다면 교회에서 나오자마자 왼쪽으로 보이는 다리 앞에서 시계탑을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 게 최고니 잊지 말자. 이곳이 예전부터 산티아고 순례길로 들어가는 순례자들의 공식 입구 역할을 해왔기에 단순한 성곽문이 아니라, 종교적 환영의 상징이기도 했으니 이보다 더 좋은 사진 스폿은 없을 것이다.


Le Kawa의 애플파이는 정말 맛있다

늦은 오후에 커피나 차를 한 잔 즐기고 싶다면 Le Kawa카페에서 수제 애플파이와 함께 하는 걸 추천한다. 애플파이가 파이지보다 사과 비중이 더 높아서 너무 배부르지도 않고 차나 커피 한잔과 즐기기에 참 좋다. 애플파이가 새콤달콤하니 산도 있는 음료보다는 오히려 고소하거나 약간의 단맛을 가진 음료가 더 잘 어울린다고 생각한다. 예를 들면 아메리카노나 카페 알롱쥬 보다는 카페오레가 더 어울릴 것이다. 순례자 사무실 앞이라 밖에 앉으면 순례자들이 지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며 나의 순례길에 대해서 생각도 해볼 수 있는 그 나름의 감성이 있다. 무엇보다 여기 애플파이가 너무 맛있어서 살짝 배불러도 이거는 꼭 먹어줘야 후회 없을 것 같다고나 할까. 저녁을 간단히 먹는다고 해도 이 집 애플파이는 꼭 한번 먹어주라. 내가 맛은 보장할 수 있다.


생장에서의 평화로운 저녁
L'étape gourmande의 바게트 샌드위치와 Maison Berthold의 까눌레

이제 슬슬 저녁에 먹을거리를 준비해야겠지? 든든한 점심을 먹었기에 저녁은 간단하게 L'étape gourmande에서 바게트 샌드위치를 준비하고, 그 뒤에 먹을 디저트로 Maison Berthold의 까눌레를 사두자. 샌드위치의 종류가 이미 많지만 메뉴 외 커스텀이 가능한 데다 가격도 합리적이니 안 먹을 이유가 없다. 일단 엄청 맛있고, 양도 많아서 이미 합격이란 말이지. 샌드위치를 만들 때 쓰는 바게트가 고소하고 바삭한 게 정말 맛있는데 가게 주인도 이 빵 정말 맛있지 않냐며 자부심을 갖고 있을 정도다. 빵을 사고 바로 앞에 위치한 까눌레 전문점에서 오리지널 까눌레 하나와 맛보고 싶은 미니 까눌레 몇 개를 골라 나오면 오늘의 저녁도 준비 끝! 간단하지만 맛은 풍부한 저녁과 디저트를 순식간에 확보해 놓은 셈이다. 생장의 거리를 거닐며 먹어도 되고, 숙소에 돌아와 까르푸에서 사 왔던 음식, 음료들과 함께해도 좋을 것 같다. 심플한 레드와인 한잔을 곁들인다면 왕이 부럽지 않은 프랑스의 맛도리 디너가 될 것이야.


생장의 평화로운 저녁

이렇게 저녁 식사 후 하루를 마치며 다시 한번 성곽에 올라가 생장의 해지는 모습을 바라보고 내려온다면 완벽한 생장에서의 하루가 마무리된다. 순례자들을 위한, 순례자의 도시답게 저녁 9시 정도가 되면 온 도시가 조용해진다. 수많은 숙소에서 순례자들이 설레는 마음으로 서둘러 잠을 청하는 모습이 절로 상상된다. 그들의 편안한 저녁을 위해 나도 모르게 조용히 걷게 되는 고요 그 자체의 순간이다. 숙소로 돌아와 혼자라면 노트 한쪽에 일기를 쓰고, 일행과 함께 있다면 따뜻한 차에 오늘 생장에서의 하루에 대해 조용한 대화를 나누며 하루를 마무리할 것 같다.

매일 새 순례자들을 품고, 다음날 순례길 시작하는 길을 배웅하는 이곳 생장에서의 하루는 프랑스 답게 맛있는 음식과 예쁜 프랑스 시골의 모습으로 우리의 하루를 즐겁게 해 줄 것이다. 가장 중요한 건 생장은 우리가 언젠가 다시 돌아왔을 때 그 모습 그대로 남아있어 줄 거라는 믿음을 주는 곳이다. 거칠고 복잡한 세상 속에서도 언젠가 프랑스 길이 그리워 이곳에 다시 돌아왔을 때 우리가 기억했던 그 모습 그대로 인 곳이 있다는 사실만으로 우리 순례자들의 마음속 한구석은 따뜻해질 거야. 생장, 언제나 고마워. 곧 다시 찾아올게. 날 기다리고 있어 줘. 프랑스 생장에서의 하루는 설렘에서 시작해 굳건한 믿음으로 이렇게 끝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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