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탈리아 북서부, 리구리아 해에 위치한 항구도시 제노바(Genova). 기차역을 벗어나자 가장 먼저 눈에 들어온 푸른빛 바다는 고요하면서도 말없이 잔잔했다. 무역의 도시로 소란스럽고 거칠 거라고 생각했는데 오히려 반대였다.
제노바의 구시가지는 미로처럼 이어진 골목들로 가득하다. 가끔은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건물들이 촘촘히 붙어 있다. 오래되고 거친 벽면, 손때 묻은 낡은 문, 누군가 무심히 걸어둔 빨래조차 이방인에게는 낯선 배경이 된다. 큰 골목길을 따라가다 모퉁이를 돌면 광장이 나온다. 항상 그 주변에는 유서 깊은 성당이 함께한다. 이곳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한 크리스토퍼 콜럼버스의 탄생지이기도 하다.
작은 피제리아에 들어가 바질페스토 포카치아를 하나 포장했다. 유명하지도 않고 현지인들이 찾는 가게였다. 걷다가 벤치에 앉아 먹은 포카치아의 소스는 바질이 유난히 향긋하고 신선했다. 새하얀 치즈는 결결이 부드러웠다.
시내버스를 타고 해변가의 마을로 이동했다. 벽에 부딪히고, 또 돌아서 걷다 보면 어느새 바다가 보이는 언덕으로 이어진다. 아직도 많은 사람들이 해변을 찾는다. 태닝 하거나, 책을 읽거나, 본인의 방식대로 여가를 보낸다. 그 누구도 서로를 의식하지 않은 채로.
카메라를 꺼내 들었지만, 욕심내어 담으려 하지 않았다. 마음이 끌리는 순간들만 눌렀다. 바닥에 걸터앉아 바다 사이의 경계를 바라보다 보면, 사진보다 현재의 순간을 누리는 게 더 의미 있는 시간이었다. 마음속 무게들이 하나둘 가라앉는 듯했다.
익숙해질수록 돌아가고 싶다고 했던가. 이탈리아에 거주하면서 아직 해결되지 않는 문제에 한국으로 돌아가고 싶은 요즘이었다. 오랜 기간 혼자 고군분투하며 지쳤었나 보다. 거창한 계획도 없이 그저 쉼을 위해 택한 도시였다. 유명한 관광지보다는 잔잔한 물결과 함께하는 멍한 시간이 필요했으니까.
여행이라기보다는 회복이었다. 아무것도 하지 않아도 되는 시간, 굳이 채우지 않아도 되는 하루.
나는 모든 걸 잘하고 싶었나 보다. 계획대로 빈틈없이 흘러가야 하는 욕심이었다. 제노바는 그런 ‘틈’을 허락해 주었다. 때론, 아무것도 하지 않는 것이 가장 큰 위로가 된다. 파도 위의 부서지는 햇살을 보며 나 자신도 조금씩 정돈되는 기분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