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투자를 받아 창업을 한 친구가 이런 얘기를 말을 했다, 투자 받아서 시작하는 스타트업이라는 게, 한 번에 하늘로 올라갔다가 비행기에서 밀려 떨어지는 기분이라고 말이다, 추락해서 땅에 떨어지기 전에 낙하산을 펼칠 수 있으면 사는 것이고 아니면 망하는 것인데, 낙하산이 새로운 개발 혹은 매출과 같은 가시적 성과이고, 시간과 돈이 사라지는 것은 고공에서 자유낙하하는 정도의 속도감이라는 얘기였다, 영화계 출신의 선배 하나는 영화 투자는 워낙 도박 같은 일이고, 보통은 빨리 망하는 길이라는 얘기를 했었다, 돈 많은 형님들이 영화 투자를 하겠다고 시나리오 괜찮냐고 봐달라고 찾아오면, 돈을 벌고 싶으면 영화 투자를 하지 말고 부동산을 하는 게 현명한 방법이라고 답하곤 했다고 한다, 하지만 옆에서 누구는 성공해서 한 달 만에 건물을 새로 하나 올리기도 했다고 하니, 또 사람들이 망하려고 달려든다며, 그 생리 때문에 때로는 얼토당토않은 영화도 계속 제작된다고 했다, 그렇게 영화든 창업이든 투자라는 이야기에는 비슷한 서사와 등장인물들이 있다, 빠르게 흥하거나 빠르게 망하는 데에 인생을 거는 사람들, 돈을 거는 사람들, 하지만 또 그런 사람들 때문에 계속해서 새로운 문화와 문명이 등장한다는 것이 인간사의 재미있는 점이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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요즘은 확실한 길과 불확실한 길, 빠른 방법과 느린 방법, 이 두 가지 축에 대해 생각이 많다, 향후 3-5년의 계획을 세우면서 몇 개의 선택지를 놓고 고민해보기도 했다, 일단 분명한 것은 내가 특정한 경우에 '확실한 길'을 별로 안 좋아한다는 것이다, 이를테면 승진과 정년이 보장된 공공기관에서 일하는 삶, 대충 5년 후가 예상되고, 10년 후도 예상되고, 삶에서 겪을 수 있는 최소값과 최대값의 디퍼런스가 크지 않은 삶, 어떻게 그런 인생을 살 수 있는 것인지 나같은 성격과 적성에서는 잘 이해가 안 되는데, 수만 명이 실제로 그런 인생을 살고 있고, 또 많은 사람들이 그런 삶을 꿈꾼다는 게 놀랍기만 하다, 아주 어렸을 때에 회사를 처음 경험해봤을 때부터 느꼈지만, 일이 재미있고 뿌듯하고 이런 부분을 떠나서, 비슷한 삶이 나선에서 반복된다는 것은 생각만해도 숨이 턱턱 막힌다, 한 편으로는 나에게 도박가적인 기질이 있다는 것을 뻔히 알고 있었지만, 최근에는 단지 '확실한 길'을 가는 것을 피하고 싶은 심리가 있다는 것을 많이 깨닫고 있다, 아주 좋은 안정이 주어져도 절대 그대로 살지 못하고 반드시 새롭고 불확실한 쪽으로만 가게 되는 것이다, 아무리 좋은 결과의 그림이라도 너무 확실하게 돈과 지위를 유지하는 삶도 어쩐지 숨이 막힌다, 사회적 존경을 받고 건물이 백 개라서 임대 수익으로 놀고 먹으며 살아도 행복하지 못할 것이다, 여행을 다니거나(여행은 늘 위험과 변수를 포함하고 있으니까 좋다), 무언가를 걸고 새로운 배움에 도전하거나, 어떤 식으로든 변동성이 있어야 행복하다, 어떤 면에서는 소모적이거나 낭비라고 보일 수 있을 만큼 인생을 탕진하더라도, 자신을 불확실성에 던지고야 말게 되는 심성, 이런 것이 어떻게 왜 주어진 것인지는 도통 알 수 없어도, 한 편으로는 그런 불나방 같은 삶들이 당초의 목적에 관계 없이 약간은 새로운 문화와 문명에 기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면, 인류 집단 전체에 진화적으로 주어진 안정값과 불확실성의 함수 중에, 그래도 변화를 추구하는 쪽의 뽑기에 걸렸다는 게 괜찮은 것이라는 생각도 드는 것이다,
2017년 7월 씀,
이 글은 에세이집 『연소일기: 삽십 대 편』에 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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