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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슬 Nov 05. 2017

사랑의 한 장면,




1
집으로 돌아오는 버스에서, 아까 나갈 때에 봤던 그 부부를 다시 봤다, 인도인 부부, 남자는 터번을 썼다, 아까 나는 카이스트 앞에서 104번 버스를 타고 시내로 나가던 참이었다, 그 인도인 부부가 탔고, 한 아저씨가 외국인에게 괜히 말을 걸어보는 뻔한 레파토리를 반복하고 있었다, 어디서 왔어? 한국말 잘 하네? 한국 온지 얼마나 됐어? 왜 그럴 때에 꼭 질문은 반말일까, 유학생인지 이민자인지 모르지만 피곤한 삶이겠네, 정도의 생각이었다, 인도에서 왔다는 것은 그 얘기를 언뜻 듣고 알았다, 나가는 길에 그들은 갤러리아백화점 앞에서 먼저 내리고 나는 시청까지 갔다, 나는 왠지 구체적으로 중국식 찐만두가 먹고 싶었던 저녁이라서, 혼자 조용한 식사를 하고 짧은 산책을 하다가 다시 집으로 가는 버스에 올랐다, 그런데 그 버스에 딱 그 부부가 다시 탄 것이다, 딱 저녁 식사만 할 정도의 시간이었다, 다른 유별난 데이트도 없이, 그들도 30분 버스를 타고 시내에 나와서, 딱 저녁 식사만 하고 다시 30분 버스를 타고 돌아가는 것이 분명했다, 나는 뒷자리에 앉게 되어 나란히 앉아있는 그 부부의 뒷모습이 눈에 들어왔다, 여자가 남자의 팔을 감싸 안고 어깨에 기대고 있었다, 그들 얘기는 여기서 끝이다, 나는 먼저 내렸고 그들은 아마 몇 정거장 더 갔을 것이다, 


2

이유는 알 수 없지만 나는 사랑의 한 장면을 보았다고 생각했다, 버스에서 보았던, 여자가 남자의 어깨에 기댄 모습이 대단히 다정해 보이고 애정이 넘쳐서 그랬던 것은 아닌 것 같다, 하지만 버스에서 내려 집으로 걸어오는 짧은 사이, 그건 사랑이라는 생각이 따라왔다, 사랑의 정의는 가끔 이렇게 그 중심을 명확하게 서술하는 일이 힘들어서, 몇 개의 어슴푸레한 장면으로 그 둘레를 더듬어보는 것이 된다, 타국의 삶, 그 어떤 피곤함, 버스를 한참 타고 나와 딱 식사를 하고 돌아가는 저녁, 피부 색깔이 다른 사람들 속에서 그 누가 보아도 딱 부부라고 알 수 있었던 모습, 남자의 어깨에 기댄 여자의 알아 듣지 못한 몇 마디 말들, 이런 나열이 사랑이 무엇인지에 대해 제대로 서술할 수 있을리 만무하지만, 역시 나는 이유를 알 수 없이, 사랑의 한 장면을 보았다는 생각을 되뇌며 집으로 들어왔다,




2017년 8월 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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