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개봉 기념으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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관종, 노출증, 나르시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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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 주변에는 밴드 피플이 많다, 악기 연주와 공연을 취미로 하는 사람들이 많다는 얘기이다, 학부 시절 재즈연주 동아리를 했고, 박사과정 중에도 학내 밴드와 직장인 밴드를 하기도 했다, 그래서 연소선생 인간학 번외편으로, 오늘은 연주 악기 유형별 성향에 대한 농담을 해보려고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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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시다시피 관종은 '관심병 종자'라는 뜻이고, 노출증은 '노출 장애'라는 이름으로, 나르시스트는 '자기애성 인격장애'라는 이름으로 정신병리학적 진단명이 있기도 하지만, 여기서는 그런 진지한 얘기가 아니라 단지 그런 성향이라는 일반적 의미로 얘기하는 것이다, 오해 마시길, 왜 하필 이 세 가지냐면, 관종, 노출증, 나르시스트는 온라인 커뮤니케이션이 폭발하는 현대 사회에서, 현대인들의 자기 전시 욕구를 잘 설명하는 개념적 도구들이라 생각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나는 관상을 볼 때에 종종 '관종이긴 한데, 노출증은 아니고' 같은 표현을 관용구처럼 쓰기도 한다, 지금 농담하는 중이라는 메타적 설명을 다시 한 번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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보컬, 이들은 확실히 노출증이다, 재미있는 것은 생각 외로 많은 보컬들이 그다지 관종이거나 나르시스트는 아니라는 것이다, 단지 그들은 노출증이다, 현실 세계에서는 제법 낯을 가리거나, 엄청난 자신감 자존감에 빠져 살지 않음에도 불구하고, 노래방에서 불러도 될 노래를 굳이 무대 위에서 조명 받으며 부르고 싶어하는 성격, 이런 걸 노출증이라고 한다, 또한 재미있게도, '뻔히 보이는 관종'인 보컬은 특히 인디 밴드계에서는 인기가 별로 없다, 사람들은 ‘오혁’같이 말도 어눌하고 내성적으로 보이지만 마이크만 잡으면 분위기 뿜뿜하는 스타일을 좋아한다, 나르시스트인 보컬은 건반과 보컬 둘 만의 조합으로 이루어진 곡으로 무대에 서 본 적이 있다, 다만 보컬이 팀내 제일의 나르시스트라면 밴드에서 좋은 연주자들을 구하기 어렵기 때문에, 종종 보컬들은 팀내 제일의 나르시스트 자리를 기타리스트에게 넘겨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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드럼, 나는 겉보이기와 다르게 드럼을 친다, 왜 겉보이기와 다르다고 하냐면, 심지어 내가 드럼 치는 것을 여러 번 본 사람들도 내가 드럼을 친다는 사실을 종종 까먹기 때문이다, 드러머들은 대개 노출증이 없는 사람들이다, 보컬과는 반대라고 할 수 있다, 관종이거나 나르시스트일 수는 있지만, 기본적으로 무대 뒤쪽에 배치되는 구도를 즐기지 않고서는 드러머가 되기 힘들다, 다만 솔로 드럼 중에 굳이 스틱을 돌려본 적이 있다면 노출증에 해당된다, 가끔 성공한 드러머 중 노출증적 기질을 지닌 이들이 드럼 세트를 전면에 내세우는 만행을 저지르기도 하는데, 극소수일 뿐이며 그마저도 호응을 얻지 못한다, 드러머들 중에는 상당히 순도 높은 관종이 많이 발견된다, 드러머가 노출증은 없지만 관종인 포인트는 이런 부분인데, 기타리스트들이 '나는 기타를 친다' 라는 말을 굳이 하고 다니지 않는 것과 달리(물론 그들은 기타 가방이나 하드 케이스로 말할 수 있다), 드러머들은 '나는 드럼을 친다'라는 것을 얘기하고 싶어하는 경우가 많기 때문이다, 이 문단 앞줄의 나처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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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타리스트, 가장 관종인 부류를 고르자면 역시 기타라고 할 수 있다, 기타리스트인데 인생에서 한 번이라도 머리를 길러 본 적이 있다면 그는 죽을 때까지 관종인 것으로 판정된다, 기타리스트는 대개 나르시스트이지만 종종 아닌 자들도 있는데, 구분하는 방법은 어렵지 않다, 이를테면 자기 얼굴이 클로즈업 되지는 않더라도, 자기가 아끼는 기타 바디의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떼깔이 주목 받기는 바라는 기타리스트가 그런 경우이다, 기타를 치면서 한 번이라도 굳이 다리를 넓게 벌리고 서지 않아도 되는 포인트에서 다리를 벌린 적이 있다면 그는 나르시스트인데다가 노출증인 기타리스트다, 관종 기질과, 노출증, 나르스시트 기질을 가장 골고루 갖고 있고 그 총합이 가장 큰 포지션이라면 역시 보컬보다는 기타리스트 쪽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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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이시스트, 이 포지션은 누군가가 '야, 관종, 노출증, 나르시스트, 그런 건 누구나 다 조금씩 갖고 있는 거 아냐? 그런 거 없는 사람들이 어딨어?'라고 물었을 때에 '베이스가 있잖아'라고 대답할 수 있도록 존재하는 포지션이다, 보컬을 겸하는 베이스를 제외하고는 이들은 무대에서 가장 눈에 띄지 않으며, 가장 몸을 적게 움직이는 이들이다, 하지만 그들은 관종도 아니고 노출증도 아니고 나르시스트도 아닌데, 왜 굳이 무대에 서는 취미를 유지하는 것일까? 비밀은 사실 이들이 겉으로는 그렇게 보이지 않지만, 앞선 모든 포지션보다 강력한 나르시스트일 수 있다는 데에 숨어 있다, 그런 이들은 자기가 음악을 콘트롤 오버한다고 생각한다, 수많은 관종들과 함께 밴드를 하면서 개인의 인기에는 별로 관심이 없어 보이지만, 눈 감고 리듬 타며 목을 움직이는 모습을 보자면, 역시 나르시스트라는 동기 없이 나오기 힘든 장면들이다, 5현 베이스까지는 보통인 범주이지만 6현 베이스부터는 관종을 의심해봐야한다, 굳이 프랫리스를 쓴다면 백프로 나르시스트다, 정말로 셋 중 아무 것에도 해당하지 않은 베이시스트들도 많이 있는데, 이들은 모든 밴드 멤버를 등에 이고 산을 오르는 지게꾼 같은 존재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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색소폰, 밴드를 하면서도 꾸준히 정통 관악단이나 관현악단에서 활동하는 이들은 아주 준수하고 건실한 인물들이니 남편감이나 아내감으로 삼아도 좋은 이들이다, 하지만 색소폰을 불면서 한 번도 관악단 공연은 해본 적이 없고 빅밴드에서도 본인의 솔로 연주 파트가 없는 공연은 서지 않는 부류가 있는데, 기타리스트보다 심한 관종, 노출증, 나르시스트의 경우이니 조심하는 게 좋다, 알토, 소프라노 색소폰을 연주한다면 더욱 그렇다, 테너는 아닐 확률이 높다, 바리톤은 더욱이 그런 사람들이 아니며 조직을 위해 헌신할 줄 아는 건실한 인물들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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스트링, 바이올린이나 첼로 같은 클래식 악기를 다루면서, 재즈나 퓨전 등등을 하며 밴드와 어울리는 자들은 상당한 노출증을 갖고 있는 부류이며 그 중에서도 좀 더 변태적인 취향을 갖고 있을 확률이 높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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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보디스트, 건반악기를 연주하는 이들은 앞서 언급한 세션들과 달리 농담으로나마 일반화하기 어려울 정도로 아주 보통이고 선량한 사람에서부터, 아주 악질적인 관종, 노출증, 나르시스트까지 다양하게 분포한다, 굳이 필요 없는 자리에서 한 번이라도 일부러 메이저 세븐이나 디미니쉬 세븐 코드를 잡아본 적이 있다면 후자 쪽에 가까워지고, 메트로놈 틀어 놓고 본인 파트를 연습해오는 사람이라면 전자 쪽에 가까워진다, 물론 나르시스트가 특정 수위를 넘어서면 아주 열심히 연습을 해오는 모습으로 드러난다, 노출증은 퍼포먼스나 솔로 테크닉 위주로 연습해온다, 관종이기만 하면 연습을 안 해온다, 아주 내향적이며 보통사람처럼 보이지만 어떤 면에서 섬뜩할 정도로 나르시스트인 자들이 있는데, 이들은 직장인 밴드나 아마추어 수준치고는 상당한 연주 실력을 갖고 있기도 하며, 누가 잘 친다고 칭찬하면 굳이 ‘어렸을 때에는 전공하려고 했었다’ 같은 말을 덧붙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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농담이니, 괜히 뜨끔하시거나, ‘난 아닌데?’ 같은 진지한 반응은 보이지 않으셔도 됩니다, 이건 어디까지나 관종, 노출증, 나르시스트의 교집합과 여집합을 설명해보기 위한 저의 예시였는데요, 실로 사회 생활을 하며 만나는 인간 군상들을 상대하는 데에 좋은 프레임과 인사이트를 제공해줍니다, 관종에겐 관심을, 노출증에겐 스팟라이트를, 나르시스트에겐 칭찬과 아부를 주면 됩니다, 물론 삼박자는 조금씩 상관 관계를 갖고 비슷한 방향으로 움직이는 경우가 더 많은 듯합니다,
2018년 4월에 작성,
2018년 11월에 영화 '보헤미안 랩소디' 관람 계기로 공개함,
한 편으로는 퀸이 원년 멤버로 장수하고 사이가 좋았던 것은, 그 모두가 개성이 강한 와중에 '관종, 노출증, 나르시스트'의 조합이 좋았기 때문이라는 생각도 합니다. 이건 농담이 아닙니다.
이 글을, 은근히 수줍음이 많은 성격이었지만 조명 받을 때에 가장 행복해보였던 역사상 최고의 노출증 보컬 프레디 머큐리에게 바칩니다.
이 글은 에세이집 『연소일기: 삽십 대 편』에 실렸습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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