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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슬 Mar 10. 2019

'신사동 그 사람' by 유튜브 주현미tv

30년의 공력, 만 번을 부른 곡조의 힘

https://www.youtube.com/watch?v=RovrTvFMeEQ



이제는 주현미 선생님을 유튜브에서 만날 수 있다. 


바야흐로 유튜브의 시대다. 소위 주류 연예인들이 유튜브에 진출하는 것은 어제 오늘의 일이 아니다. 개그맨들이 먼저였던 것 같다. 방송의 편집 아래 펼치지 못했던 입담들은 쉽게 구독자들을 사로잡았다. 한 편 유튜브의 상위 컨텐츠를 차지하고 있는 것은 '노래하는 사람'들이다. 지금은 전 세계적인 유튜버가 된 제이플라만 보아도, 유튜브만의 매체적 특성은 기존의 방송과 다른 매력으로 다가온다. 뮤직비디오나 라이브 무대와는 또 다르게, 마이크를 가까이 놓고 몰입하고 심취하며 부르는 모습을 클로즈업하여 보는 것, 그것은 시청자에게 감정을 전하는 또 다른 소통 방식이다. 때로는 정말 그 녹음실에 함께 있는 것만 같다. 그런데 주로는 젊은 재능들의 향연이던 유튜브에 주현미 선생님이 나타났다. 게다가 바로 그 유튜브의 편집 방식이다. 옛노래들을 자신만의 스타일로 커버하며 부르는 영상들을 연이어 보자면, 가수 주현미 혹은 주현미씨가 아니라 '주현미 선생님'이라는 말이 입에 절로 붙는다. 



30년의 공력, 만 번을 부른 곡조의 힘.


그 중에서도 개인적인 애청곡을 꼽자면 '신사동 그사람(1988)'이다. 주현미 선생님은 이 곡을 몇 번이나 불렀을까? 처음 나오고 30년이 흘렀다. 하루에 한 번도 안 부른 날도 있겠지만, 행사며 공연이며 그 리허설까지 해서 여러 번 부른 날도 있을테니, 셈해보면 족히 만 번은 불렀을 것이다. 그러니까 이건 단지 '노래'라는 큰 범주에 가둬서 표현할 수 있는 무언가가 아닐 수도 있다.  

만화나 무협지를 보면 십 년 동안 정권 지르기만 만 번을 하니 깨달음을 얻었다거나 이런 얘기가 있다. 주먹을 그냥 휘두르는 것도 정자세로 만 번을 하면 세상의 이치가 손 끝에 모이고 바위를 꿰뚫는다는데, 30년 동안 같은 노래를 만 번 불렀다면 어떨까. 날카롭고 단단하면서도, 부드럽고 유연한, 음성과 감정이 전파와 신식 매체와 보급형 스피커를 타고 오는데도, 듣는 이의 마음을 꿰뚫는다. 발성과 발음에 그 꺾고 죽이는 곡조까지, 이건 오리지널이다, 라는 생각이 뚜렷하게 다가오는 노래다. 이것이 원본인 동시에 재해석본이고, 창조인 동시에 응용인 '오리지널 주현미'의 소리. 

바닷가에서도 부르고, 강가에서도 불렀을 것이다. 어마어마한 무대에서도 부르고, 작은 업소에서도 불렀을 것이다. 얼마 전에 케이블 방송의 '미스 트롯'이라는 프로에서, 심사위원 역할을 하는 가수 장윤정이 이런 말을 했다. 트롯트 가수는 언제 어디서든 부를 수 있어야 한다고, 나무 판자 하나 놓고 그게 무대라면 무대인 줄 알고 불러야 하고, 카펫 하나 깔아놓고 그게 무대라면 불러야 한다는 그런 얘기였다. 전국 방방곡곡, 노래를 듣는 사람들을 찾아다니는 여자 트롯트 가수의 삶이란 그리 만만한 것이 아님은 분명하다. 

주현미 선생님도 '신사동 그 사람'을 그렇게 30년 불렀을 것이다. 편안한 실내에서만 부른 만 번이 아니라, 어떤 날은 바람 부는 데 부르고, 어떤 날은 비 오는데 불렀던 노래, 그러니 온 몸에 힘을 빼고 흥을 타며 부르는 듯 보이는데도, 마디마다 문득 단단함과 질긴 무언가가 느껴진다. 그러니 영상에 담긴 것은 한 번의 노래만은 아니다. 



한국의 소리, 한국의 목소리.


트롯트의 기원이 일제시대에 유입된 엔카라거나, 그 발달사에 대한 얘기는 차치하더라도, 분명히 2019년 시점에서 주현미의 '신사동 그 사람'은 '한국의 소리'라 부르기에 부족함이 없어보인다. 어느 지방, 어느 세대의 사람이 들어도 가사가 또렷한 그 발음이며, 맺고 끊는 고유한 발성이 있다. 

그러니 분명히 흥을 타는 노래인데도 다 듣고 나면 담담한 이야기를 들은 것 같은 느낌이 자연스럽게 든다. 국어를 발음하고 발성하는 하나의 고유한 방식으로서의 '소리' 같다. 필자가 노래의 전문가는 아니지만, 가사에서 특히 '신사동 그 사람~~~' 부분을 부를 때에 입을 다물고도 깊게 이어지는 바이브레이션은 단순한 노래 기법이 아니라 감정을 표현하는 모종의 발화법처럼 들린다.

가사를 보면 '신사동 그 사람'은 그렇게 즐겁고 신나는 내용은 아니다. 설레는 사랑의 느낌이 있지만, 기다림의 아쉬움이 더 크다. 결국 노래 가사 속에서는 아무런 인연도 맺어지지 않는다. 그런데 그 노래의 시작인 1988년에는 어땠을지 정확히 알 수는 없지만, 30년이 지난 2018년의 노래에 담긴 주현미 선생님의 감정 표현은 그 뒷 얘기를 모두 알고 잇는 것만 같다. 그것은 마치 처음 마주친 그 날 밤으로부터 30년이 지난 후에, 다시 그 때를 회상하는 설렘과 추억만 남은 '신사동 그 사람'이다. 해피엔딩인지 새드엔딩인지 알 수는 없어도, 노래 속의 주현미 선생님은 30년이 지나 이미 그 전개와 결말을 다 알고 있는 것만 같다. 아마도 해피엔딩이었거나, 혹은 중간에는 새드엔딩이었더라도 다 지나가고 난 후에 추억만 남고 세월에 소화되어버린 또 다른 해피엔딩의 의미일 것이다. 그러니 몇 번을 자정마다 기다리고, 그것이 만 번을 지나도, 회상 속의 '신사동 그 사람'은 밉지 않고 그 아쉬움도 '그땐 그랬지' 같은 재미처럼 읊게 되는 노래, 그런 노래가 된 것 같다. 

이런 식으로, 스쳐갔거나 떠나간 님 얘기하면서도 흥겨운 가락을 붙이는 것이야말로 민요의 특성 중 하나이고 한국적인 것 아닐까. 게다가 수십 년 동안 색도 톤도 별로 변하지 않은 것 같은 주현미 선생님의 목소리는 그야말로 문화재처럼 느껴진다. 다시 수십 년 후에 한국의 근현대사를 학습할 때에, '한국의 목소리'를 꼽자면 그 중의 하나가 바로 이 노래 속 목소리일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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