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러분은 지금 서기슬씨의 '과장법 쾌락주의 리뷰'를 읽고 계십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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현대철학을 듣던 시절 교수님께서 시뮬라크르를 설명하실 때에 하겐다즈 벚꽃맛이 있었다면 정말 더 쉽게 이해할 수 있었을텐데, 라는 생각이 드는 것이다. 복제의 복제, 이미지의 이미지, 기의와 관계없는 기표, 하지만 그런 복제된 이미지가 원본을 대체하는 현실, 그럼에도 그런 것이 가치절하되지 않은 현대, 이것이 우리가 살고 있는 포스트모던이다.
봄이면 인산인해를 이루는 벚꽃거리에 가본 사람들이라면 누구나 알겠지만 벚꽃은 무향무미에 가깝다. 아무 맛도 안 나고 아무 향도 안 난다는 것이다. 벚꽃맛이라는 것은 인간의 상상력이 더해지고 특히 벚꽃을 너무 사랑한 일본인들의 근성에 의해 창조된 쪽에 가깝다. 간혹 좋은 마카롱이나 젤라또에서 사용하는 장미향은 실제 장미에서 유래한 천연 오일을 이용한 것이기 때문에, 실제로 맛보아도 놀랍도록 ‘장미’인 경우가 많다. 하지만 벚꽃맛은 전혀 그렇지 않다. 심지어 하겐다즈 한정판 벚꽃맛이 팔리던 시기에 스타벅스에서는 무려 벚꽃 음료를 팔고 있었다. 봄 분위기와 시장 니즈 훈풍이 마치 벚꽃축제에 가서 어떤 향을 맡아본 양 착각하게 만드는 것이다.
아이스크림 케이스에는 벚꽃잎이 그려져있고 ‘체리 블라썸’과 ‘체리’는 제법 거리가 있어 보이며, 벚꽃 열매인 버찌는 사실 그 체리맛이 전혀 아님에도 불구하고, 애초에 이것은 이미지의 이미지라는 점을 여실히 보여주는 부분이다(체리블라썸과 체리는 같은 ‘과’나 ‘목’일 수는 있겠지만 열매의 ‘맛’을 먹어보면 복숭아와 살구 만큼의 사이도 아니고 서로 제일 비슷한 게 이름인 것 같다). 그런데 정말 더 놀라운 점은, 그 체리향마저 실제 체리와는 상당히 거리가 있는, 체리 성분은 극소량이 들어있으며 나머지는 별도 성분 조합으로 이루어진 향이라는 것이다. 나는 체리도 과일로서 상당히 좋아하는데 우루과이라운드 때문인지 WTO 협정인지 FTA인지 뭐시기 때문에 싱싱한 남미산 체리가 마트에 들어오기 전까지는, 그전에 알던 체리맛이 다 사실 가짜라는 것을 모르고 있었다. 혹은 통조림 체리의 그 향은 내가 모르는 다른 품종이나 성분이 있는 것일까, 그래봤자 실제 생과일 체리의 그것과는 제법 먼 것이다. 그러니 이 하겐다즈 아이스크림 한정판은 케이스에 아티스트와 콜라보한 예쁜 벚꽃을 그려놓고서, 체리의 가상적 복제인 체리향으로 빚어낸 가상의 벚꽃맛으로 포장하여 팔리고 있다.
이미 많이 알려진 사실이지만 하겐다즈는 미국인이 ‘유럽스러워보이는’ 이름으로 의미 없는 철자의 조합으로 지은 이름이라, 저런 철자를 쓰고 굳이 하겐다즈로 읽는 유럽 지역은 없는데다가, 제작 공장은 프랑스에 있고 심지어 요즘 나오는 하겐다즈 파인트는 메이드인 프랑스라고 프랑스 국기를 케이스에 그려 놓았지만 유럽식 유제품 가공법과는 전혀 상관없는 아이스크림이다. 프리미엄 마케팅과 광고의 산물로 빚어진 아이스크림의 대명사일 뿐이다.
하겐다즈는 자주 먹기에 좀 비싸다 싶지만, 약간 저렴하게 나오는 나*루 초코맛 아이스크림을 사먹었다가 ‘아, 이 익숙한 고향같은 초코맛은 무엇인지, 코에 감기는 들뜨고 가벼운 초코 향기, 이것은... 쌍쌍바?’ 같은 기분을 느끼고 나면 계속 하겐다즈 애호가로 남게 된다. 이게 바로 현대이고, 포스트모던이며, 자본주의이고, 이미지가 실재를, 복제가 원본을 대체해버린 21세기이다. ‘진짜’인 세상의 본질과 원본성을 따지는 식자들의 유구한 역사를 해체하고 복제의 복제를 새롭게 해석하기 시작한 것이 현대철학의 시작 중 하나였고, 내가 그래서 하겐다즈 벚꽃맛에 거창한 의미를 부여하고자 하는 것은 아니지만, 이것이야말로 시뮬라크르를 맛보고 느낄 수 있는 훌륭한 사례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