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벤져스: 엔드게임 후기
'어벤져스: 엔드게임'을 보면서 뚜렷하게 느낀 것 한 가지는, 결국 컨텐츠가 가야할 길은 팬들이 보기에 감동스럽도록 조져야 한다는 것이다. 조지다라는 말이 속어처럼 느껴지겠지만 이 말은 강하게 때린다는 뜻의 표준어다.
그렇다, 가히 엔드게임은 마블빠라면 마블뽕을 맞고 눈물이 흐를 정도의 순도 높은 마블 엑기스를 보는 이의 대뇌 전두엽에 침투시킨다. 그러면 전두엽에 침투한 이미지들은 단지 하나의 이미지로 남는 것이 아니라, 시냅스 사이에서 발화를 일으키며 온갖 추론과 감정을 촉발시키고 회상 기억 속에 담긴 지난 장면들을 시지각 정보들과 연결시킨다. '아는 만큼 보이는 영화'라는 것이 이런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 영화에서 쓰일 수 있는 표현일지 모르겠지만, 가히 마블팬들에게 이 영화는 3시간의 서사가 아니라 10년의 서사로 다가온다고 해도 과장이 아닐 것이다.
인터넷에서 극장 근처의 카페에서 자기들끼리 떠들면서 본의 아니게 스포일러를 해대는 관람객들의 이야기를 보았는데, 이제서야 왜 영화를 보고 나오다가 자연스럽게 스포일러를 할 수 밖에 없는지 알게 되었다. 그 행동의 의미는 무엇인지, 그 때에 왜 그런 대사가 나왔는지, 각자가 갖고 있는 추론과 감정과 회상 기억에 의해, 관람 후의 감상과 감동은 다시금 재조직될 수 밖에 없는 그런 구조.
굳이 이 영화의 단점인 부분들을 덧붙이자면, 그런 아름다운 결말을 위해, 굳이 그렇게 지루하게 끌었거나 과잉이었어야 했냐고 되물을만한 몇몇 장면들이 포함되었다는 것 정도이다. 이 글을 쓰고 있는 본인은 그리 마블팬은 아니며, 그리 영화광도 아닌, 사실은 영화는 극장에 가서 보는 것보다 예고편만 보고 스포일러를 찾아보는 것을 더욱 자주하는 사람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영상의 연출보다 영화를 둘러싼 설정이나 극작의 의도를 더욱 즐기는 성격을 지닌 것인지도 모른다. 그런 면에서 엔드게임은 두 번 볼 영화는 아니지만, 한 번 보고나서 더욱 고민하고 찾아볼 거리를 많이 주었다, 혹은 그 고민거리 때문에라도 두 번 보게 되는 영화가 아닐까. 이는 해리포터 시리즈라거나 스타워즈 시리즈 같이 그 자체로 훌륭하고 인기있더라도 상대적으로 좀 더 직선적인 서사 구조를 갖고 있는 다른 프랜차이즈 블록버스터들은 줄 수 없는 즐거움으로, 마블, 그것도 구체적으로 MCU 만이 만들어낼 수 있는 수 년의 작업이라 할 수 있다. 그 장면이 왜 멋진지, 그 대사가 왜 대단한지를 설명하려면, 잘 모르는 사람들에게 한참을 구질구질하게 설명해야만 하지만, 아는 사람들에게 오 맙소사, 하면서 가슴 속 깊이 두드리는 언어로 다가오는 설계들, 스탠 리를 비롯하여 그 과정에 기여한 모든 이들에 감사와 찬사를 보낸다,
*덧, 이런 면의 메타(Meta) 서사를 즐기는 입장에서 최고의 명대사는 역시, '하일 하이드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