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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서기슬 May 31. 2019

이렇게 재미있는 방식으로 불편할 줄이야,

영화 '기생충' 관람기

*여러분은 지금 서기슬씨의 '과장법 쾌락주의 리뷰'를 읽고 계십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exaggerated



<기생충, 2019> 감독 봉준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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읽는 이에 따라 스포일러가 될 수도 있는, 영화 '기생충' 리뷰입니다, 의도적인 스포일러를 담지는 않았지만, 영화 관람 전에 읽는다면 어떤 관점에서는 재미를 저하시킬 수도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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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단 이 영화는 '과장법 쾌락주의 리뷰'의 취지에 꼭 맞아떨어지지는 않는 작품이다, 극단적 재미나 영상미를 함유한 작품도 아니고, 과장법으로 칭송할만한 부분도 뚜렷하게 보이지 않는, 그러니까 상당히 잘 짜여지고 촘촘하게 의미와 재미가 날씰과 씨실로 엮인 영화이지만, 글쓴이인 나 자신에게 농담이건 진담이건 과장법을 통해 수사할 때의 작문적 짜릿함을 주기에는 그다지 '과장법 쾌락주의 리뷰'의 대상으로 적합하지 않은 작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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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럼에도 불구하고 이 영화는 매우 훌륭한 작품이므로 그 불편함에 대해 한번 과장되게 서술해보고 싶어졌다, 예술이라는 것이 결국은 사람을 불편하게 하는 것이라면, 그러니까 불편한 방식으로 무언가 아름답게 만들거나, 혹은 아름다운 방식으로 무언가 불편하게 만드는 것이 예술이라면, 이 영화는 상당히 예술적이다, 이 리뷰의 제목을 쓸 때에 재미있는 방식으로 불편하다고 쓸 것인가, 불편한 방식으로 재미있다고 쓸 것인가 아주 잠시 고민했으나, 조금만 생각해도 상당히 명확하다, 이 영화가 주는 감상의 핵심은 불편함이다, 재미는 도구와 기법이고, 주된 심상은 불편함이다, 그 불편함은, 영화 스크린 너머에서 우리가 한 번도 느낄 수 없는 그 어떤 후각적 심상을 통해, 혹은 그 후각적 심상을 전달하는 대사나, 배우들의 표정으로, 생생하게 전해온다, 극중 배우들이 주고받는 이질성이나 괴리 만큼이나, 역시나 소외된 자들 사이에 알게 모르게 전해지는 공감과 교감, 이것들은 아주 잘 짜여진 직조 기계처럼 구석구석 작동하여 불편함이라는 거대한 천을 펼쳐내는 것 같다, 그 무거운 천을 답답하게 내내 덥고 있어야 한다, 이 영화를 보는 동안 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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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도 모르게 어떤 실린더나 태엽 같은 것이 끊임 없이 움직이는 기계의 심상이 떠오르는 이유는, 이 영화가 소위, 영화적 장치 혹은 기법이라고 불리는 것을 아주 구체적이고 명확하게 활용하고 있음이 눈에 계속 들어오기 때문이다, 영화이기 때문에 가능한 등장, 이를테면 그 '돌'의 시작과 끝도, 어설프게 함축이나 상징 놀이를 하는 것이 아니라, 그래, 작중 대사처럼, 내가 돌을 끌어안고 있는 것이 아니라 돌이 나에게 달라붙는 것처럼, 장면과 서사 속에 녹아있다, 봉준호 감독에 대한 이런 식의 찬사와, 그에 대한 발견 혹은 확인은 이제 굳이 부연하기 서먹할 정도로 당연한 것이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렇게 뻔할 수 있거나 어색할 수 있는 영화적 장치들을, 그야말로 영화이기 때문에 작동할 수 있는 시나리오적 방법을 통해 배우와 배경 사이에 녹여내는 것은, 날카로움이 교차하는 기예를 연상시킨다, 내가 기계 중에서도 직조 기계를 떠올린 것은 천을 짜는 데에 날카로운 바늘이 움직이기 때문일 수도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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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적인 체험으로는 아주 기묘하게도, 마침 양쪽에 모르는 남성이 착석하게 되었고, 둘 중 누구인지는 모르지만 진짜 영화 관람에 방해가 될 정도의 냄새를 풍기고 있었기 때문에, 어쩐지 영화 속에 등장한 냄새의 메시지에 대해 더 각별하게 생각하게 되었다, 의자 뒤로 기대어 앉으면 그 해수욕하고서 며칠은 안 씻고 나타난 것 같은 냄새가 내가 앉은 자리 전후로 침투해서 나는 의자 앞쪽 끝부분에 걸터 앉아서 몸을 앞쪽으로 잔뜩 숙이고 영화를 볼 수 밖에 없었다, 대한민국 수컷들은 진짜 좀 씻고 다녀야 한다, 영화의 중후반부에 이르러 새삼 나 역시 누군가에는 설명하기 힘든 불편한 냄새를 풍긴 적은 없을까 반성하게 되기도 했지만, 나는 냄새로 인한 불편함이 작동하는 씬에서 슬쩍 양 옆의 남자들을 둘러보며 킁킁거리는 제스쳐를 취하는 것으로 메시지를 주려는 시도까지 하게 되었다, 부디 그 메시지가 전해졌길 바란다, 인기 영화를 개봉일 좋은 시간대에 본다는 것은 나같은 예민충에게 이런 종류의 도전을 포함하고 있다, 한적한 시간대라면 피할 자리가 있었을 것이다, 내가 극장에서 양 옆의 남자 중 한 명의 냄새 때문에 고생한 얘기를 이렇게 길게 쓰고 있는 것은, 마침 그것이 영화의 장치와 연관되기 때문이기도 하지만, 진짜 토나올 것 같은 냄새 때문에 영화 보는 도중 심각한 생각을 많이 했기 때문이다, 하지만 계급의 냄새, 공간의 냄새이자 생활의 냄새는 극복하기 힘든 것이고, 그것은 그들의 언어나 행동, 때로는 그 어떤 지표보다 명확하게 계급적인 것이다, 이런 메시지가 관람 후에 떠오르는 교훈이 아니라, 영화 그 자체로서 명확하게 작동하고 있다는 것이 영화의 훌륭한 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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절대 두 번 보고 싶은 영화는 아니지만, 역시나 그 어떤 불편함을 상기시키고, 그것으로 인해 작품을 감상하고 오는 내내 생각에 잠기게 만들거나 자기 전에 글을 쓰게 만드는 것이 하나의 좋은 예술 작품의 기준이 된다고 할 수 있을 때에, 영화 '기생충'은 훌륭한 예술 작품이다, 감상 과정이 주는 감각적 만족이나, 혹은 웃음이거나 눈물이든 그 어떤 감정적 카타르시스를 기준으로 보면 이 영화는 정말 꽝인 편이지만, 그럼에도 지루하지 않는 전개와 빈틈 없는 인물, 그리고 그들의 연기, 그 짜임새만으로 끝까지 끌고나갔다는 점도 돌이켜보면 대단하다, '기예' 같은 것이다, 춤이나 공연, 눈에 보이는 움직임으로 '저것은 기예다'라는 감상을 주는 것은 오히려 수월할지도 모르지만, 복잡한 함수의 집합인 영화에서, 감독의 기예를 느끼게 되었다는 것은 역시나 그 자체로 무척 대단하다, 이런 감상을 '모국어' 영화를 통해 느낄 수 있게 해준, 봉준호 감독 외 모든 제작진과 출연진에게 감사의 마음을 전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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