롯데리아에서 역대 가장 맛있었던 와규버거 단종에 부쳐
*여러분은 지금 서기슬씨의 '과장법 쾌락주의 리뷰'를 읽고 계십니다.
https://brunch.co.kr/magazine/exaggerated
(이것은 2019년 현재 시판 중인 '와규버거 에디션2'가 아닌 과거 출시 당시의 최초의 와규 버거에 대한 얘기임)
터놓고 얘기하자면 롯데리아 와규버거는 맛있었다, 대한민국에서 햄버거라는 이름을 붙이고 있는 것들의 맛 평가 지표를 줄 세워 놓았을 때에 중앙값에서 제법 맛있는 쪽에 위치할 수 있을 정도로 맛있었다, 故와규버거가 제대로 평가받지 못한 이유는 딱 두 개라고 생각한다, 첫 째는 롯데리아라는 것, 둘 째는 비싼 가격이다,
故와규버거가 처음 나왔을 당시에, '롯데리아로서는 최선을 다 했지만 이 가격이면 수제버거를 먹으러 간다'는 반응도 있었다, 고백컨데, 좋은 재료를 쓴다고 수제버거를 표방하고 깔끔한 맛을 제공하지만 막상 육즙과 치즈가 절절하게 느껴지는 미국식 버거도 아니고 특색도 없이 애매해져버리는 몇몇 서울식 수제버거보다, 롯데리아의 故와규버거 훨씬 맛있었다, 물론 지점마다 차이가 있었지만 FM으로 만들 경우 확실히 맛을 보장하는 레시피였다,
과장을 더하자면 나는 처음 와규버거를 먹었을 당시에, 롯데리아에서 버거를 먹고 이렇게나 '맛있다'라고 느낀 것에 대해 복잡 미묘한 감정, 일종의 굴욕감 같은 것과 약간의 기쁨을 동시에 느꼈다, '거봐, 하면 되잖아' 라는, 뭐랄까, 중학교 때에 몸도 굼뜨고 어딘가 지능적으로도 빠릿하지 못해서 반 대항 체육 경기를 하면 늘 구멍이었던 학우가 어느 날 체육부장이 알려준 자세와 메뉴얼을 그대로 실행하다가 팀에 혁혁한 공을 세우는 장면에서나 느껴지던 약간의 카타르시스, 꼴지 팀이나 신생 팀이 스포츠에서 성장하며 승리하는 모든 드라마나 영화에서 느껴졌던 감동마저 다가왔다,
나는 새삼 얼굴 한 번 본 적도 없는 롯데리아 신메뉴 개발부 직원의 뜨거운 감정 같은 것을 떠올렸다, 큰 기업에 종사하는 일이란 그렇다, 자기들이 내놓는 제품이 시장에서 어떤 욕을 먹는지 알면서도, 어떤 문제가 있는지 생생하게 알고 있으면서도, 기업의 논리란 결국 생산 단가와 이익을 따라가고, 그 외에 브랜드나 유통에 관한 정치적 문제까지 포함하여, 제품 기획자의 능력이나 취향이나 진정성 같은 것은 소비자에게 제대로 전달할 수 없게 마련이다, 그런데 마침내 성공한 것이다, 롯데리아 버거가 '먹을 것 없으면 먹는' 버거 취급을 받고 세트는 치즈스틱 셔틀 취급을 받는 동안에, 버거다운 맛있는 버거 레시피를 만들고 그것을 출시하는 것까지 말이다, 복잡한 감정과 역시나 알 수 없는 감동 속에서 첫 롯데리아 와규버거 세트를 다 먹었을 때, 나는 곧 이 버거를 다음에도 또 먹고 싶다고 생각했다, 롯데리아에서는 처음 느껴보는 감정이었다,
충분히 담백하고도 고소한 빵과, 빵 사이에서 식감과 풍미를 더해주는 양파튀김, 과하지 않으면서 패티와 치즈를 살려주는 소스, 그리고 무엇보다도 '소고기 냄새가 난다'는 것이 느껴지는 패티, 이 조합은 실로 이전까지 롯데리아 버거에서 맛볼 수 없던 것이었다,
본디 롯데리아 버거 메뉴 전체를 아우르고 있는 감성은 '애매한 한국식 패스트푸드맛'이다, 허기짐에 따라 어찌 맛있게 먹을 수도 있지만, 어느 버거를 먹어도 뚜렷하고 뾰족한, 뇌리에 남는 미각적 기억을 형성하지 못한다고도 쓸 수 있다, 어쩌면 그렇기 때문에 전국 방방곡곡 뿌리내려 영업 중인 것일 수도 있다, 좀 나쁘게 표현하자면 휴게소맛이거나 매점맛이다, 그러던 와중에 故와규버거는 그 자체로 대단히 훌륭해서가 아니라, 그저 '햄버거'라는 이데아의 기본과 기초에 부합하는, 진정성 있는 소고개 패티 맛에 처음으로 도달한 롯데리아 버거였다고 생각한다, 브랜드 떼고, 블라인드 테스트로 버거만 놓고 붙었다면 역시나 어느 브랜드에고 쉽게 뒤지지 않았으리라 생각한다,
물론 가격에는 변명의 여지가 없었다, 만 원에 육박하는 세트 가격은, 패스트푸드로서도 그렇고, 특히 롯데리아로서, 그리고 그저 한국에서 먹을 수 있는 식사 한끼의 가격으로도 싸지 않은 축에 속한다, 그 가격이면 버거킹을 간다거나, 다른 무슨 메뉴를 먹는다거나, 가성비가 폭망이라거나, 그 모든 이야기들이 다 일리있는 반응이었다, 하지만 마지막으로 한 번 더 故와규버거를 변명하자면, 대한민국에는 버거킹이 없는 곳도 많고, 아예 튀김에 콜라가 함께 나오는 햄버거 세트 자체를 롯데리아 외에는 접할 수 없는 지역도 많다(물론 맘스터치가 약진하였고 여전히 확산 중이지만), 모든 사람이 수도권 혹은 광역시에 사는 것이 아니다, 군 단위 소재지에선 롯데리아가 맛집이다, 그런 곳에서 좀 비싼 값을 내더라도 버거다운 버거를 먹을 기회가 제공된다는 것 자체는, 넓게 보자면 조선반도의 식문화에 상당히 멋진 일이라 생각했다, 돈 몇 천원 더 내고서라도 제대로된 맛을 느끼고 싶은 사람도 세상에는 많다,
하지만 결국 와규버거는 떠났다, 나 또한 떠나고 나서야 이런 글로 故와규버거를 기리고 있지만, 종종 어떤 것들은 떠나고 나서야 그 가치를 헤아릴 수 있다,
며칠 전에 롯데리아에 들렀다가 기존의 와규버거는 이제 안 나오고 와규버거 에디션2가 나왔다는 얘기를 카운터에서 접했을 때, 가격이 너무 싸서, 이게 와규버거인게 맞냐고 몇 번이나 확인할 때에 느꼈던 불안함은, 버거가 나오고 한입 베어물고 나서 차가운 현실과 비애로 다가왔다, 이제 롯데리아 와규버거(에디션2)는 좀 비싸고 그럭저럭한 불고기 버거 중 하나가 되어버렸다, 그 맛은 딱 롯데리아적인 맛이고, 상상할 수 있는 그 맛이니 굳이 궁금하다고 해서 돈 내고 확인할 필요는 없다, 미안한 얘기지만 이전의 故와규버거처럼 다시 생각날 것 같진 않다,
아마 메뉴 변경에 있어서 롯데리아는 합리적인 판단을 한 것이리라 생각한다, 가성비 때문이든 인식 때문이든 판매량은 안 나왔을 것이고, 제조의 어려움 등에 비해서 본사에나 지점에나 유리한 메뉴가 아니었을 수도 있다, 롯데리아가 혹은 우리 사회가 故와규버거를 포용하고 살아가기에 조금 이른 것일 수도 있다, 언젠가 다시 메뉴로 살아나길 기도해본다, 그래도 롯데리아는 한 번은 제대로 보여주었기 때문에, 나처럼 몇 명 정도는 롯데리아에 대한 총체적 인식을 바꾸게 된 사람도 있으리라 생각한다, 허탈함과 그리움으로 글을 마친다, 혹시 故와규버거를 개발했던 롯데리아 제품 개발 담당자분께서 이 글을 보신다면 함께 식사 한 끼하며 떠나간 故와규버거에 대한 얘기를 나누고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