냉장고 없는 삶

욕망을 덜어낸 민낯으로 살아보기

by 한유사랑

갑자기 냉장고가 멈췄다.


사실 몇 개월 전부터 냉장고에서 오토바이 엔진 소리가 나기는 했었다.

그렇지만 이렇게 급작스럽게 냉장고가 멈춰버리다니. 뭔가 배신감(?) 알 수 없는 열패감이 들었다.

조금은 더 버텨줄 줄 알았는데 내 생각과는 다르게 냉장고의 수명은 빠르게 소진되어 급기야 멈춰버렸다.


인테리어의 일부처럼 보이게 하는 빌트인냉장고는 2000년대 초반부터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의 대명사 같은 느낌으로 아파트, 오피스텔, 원룸 등에서 많이 사용되었고 지금도 많은 원룸과 오피스텔에 사용되고 있다.

이 빌트인의 문제점은 냉장고가 고장 나거나 교체를 해야 할 때 이 귀찮은 인테리어 문짝들을 다 떼어내야 한다는 것.


아무나 할 수 없다는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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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가 오래되어 부품이 없다는 서비스센터의 대답을 받았다.

'부품을 구하는 것보다 교체가 싸게 먹힐 것'이라는 말에 부아가 났다.

냉장고를 통으로 바꾸는 게 왜 더 싼 가격이란 말인가.


나는 냉장고를 교체하고 싶은 마음이 없다.

그저 고쳐서 오래도록 쓰고 싶은데 센터는 부품생산을 본사에서 중단했기 때문에 방법이 없다고 했다.


2023년, 기술의 발전이 극에 달하는 시대에 냉장고 부품이 없어서 냉장고를 못 고친다니.

나의 냉장고는 고작 10살 먹은 아직 어린 친구인데..(죽어도 못 보내)


그때부터 틈날 때마다 유튜브를 찾았다.

빌트인냉장고를 고치는 많은 유투버들이 있었고, 냉동고 뒤쪽의 냉각판에 성애가 끼거나 얼음이 얼었을 때 냉장고로 냉기가 들어오지 않는 경우들이 더러 있었다. 하루이틀 전원을 끄고 얼음을 녹여보니 정상작동했다는 여럿의 간증(?)을 보고 날을 잡았다.


결과는 실패였다.


어쩔 수 없이 이 친구를 떠나보내야 하는구나 싶어 업체를 알아봤다.

앞서 말한 미니멀리즘 인테리어의 대명사 빌트인 냉장고가 바로 나의 냉장고다. 귀찮은 인테리어 문짝들을 다 떼어내야 고치던 교체를 하던 할 수 있는 것이다.


냉장고 본체 가격보다 빌트인 인테리어를 떼어내 보수공사를 하는 견적이 더 크게 나왔다.

고작 부품하나의 문제로 냉장고를 통째로 교체해야 하고, 냉장고를 교체하기 위해서 빌트인 가구를 떼어내고 보수 공사를 해야 한다니. 너무나 비효율적이고, 비상식적이고, 불공정하며, 불평등하고, 불불불.. 불만.. 아무튼 나는 이런 상황에 봉착해 버렸다.


물건을 만들었으면 일정 부분에 있어 책임을 지는 것이 만든 사람의 의무라고 생각했건만 대기업은 모르쇠, 사설업체는 부르는 게 값이었다. (우리에게 전자기기를 고쳐쓸 권리를 보장하라!)


냉장고를 교체하기에는 재정난이 너무 심각했다. 사실 이건 핑계고, 대대적으로 공사를 하기에는 나의 삶이 너무 지난하고 여유가 없었다.


지구를 위해 냉장고를 일부러 없애는 분들도 계시는데 이왕지사 이번 여름은 한번 냉장고 없이 살아보자 싶었다. 다행히 나에게는 아직 냉동고가 남아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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쉬운 마음으로 시작한 냉장고 없이 살기는 벌써 5개월째 접어들고 있다.


나는 냉장고 안에 있던 고인 물들을 정리 했다.

8년 전 이 집에 이사를 들어오며 쟁여두었던 명이나물, 깻잎 장아찌는 보기에는 아직 신선도가 높아 보였으나 뚜껑을 열고 젓가락으로 집자, 마치 환영인양 스르르 사라져 버렸다.

2020년 엄마가 농사를 지어 담가주신 5000장 정도의 깻잎지도 거의 다 먹은 줄 알았는데 웬걸, 냉장고의 고인 물이 되어 있었다. 유통기한이 지난 갖은양념과 언제 샀는지 기억도 안나는 가공식품들, 선물 받았던 온갖 종류의 단 것들, 먹다 남은 알코올 등을 모두 걷어냈다.


8년 동안 냉장고는 나의 욕망을 가득 채우고 있었다.

냉장고를 비워내니 그제서야 내 욕망의 민 낯이 보였다.


“살아간다는 것”은 많은 욕망을 수반한다.

내가 잘 먹고 싶고 잘 누리고 싶은 욕망, 나아가서는 내가 사랑하는 사람들까지도 잘 먹고 잘 사는 것을 욕망한다. 타인의 기대에 부응하고 싶어 하는 욕망과 누군가의 선 넘은 호의조차도 놓기 어려운 욕망.


나의 냉장고는 욕망과 사랑의 경계의 알 수 없는 덩어리들이 엉겨 붙어있는 철 지난 갈증의 저장고였고, 저장하기를 멈춰버린 이 작은 공간은 그 어떤 빛나는 것이 존재할 수 없는 욕망의 악취를 풍기는 쓰레기통이 되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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냉장고를 정리하고 난 이후부터는 먹을 만큼의 식재료를 구입하고, 보관을 요하는 음식들을 어쩔 수 없이 피하게 되었다. 조금이라도 욕심을 내서 구매한 채소들은 지렁이들의 배를 불려주는 역할을 하는데, 지렁이밥을 만드는 것도 쉽지 않은 일이기 때문에(지렁이는 이빨이 없어서 음식물을 잘게 다져주어야 한다.) 마트에 들어가서 포장된 정량을 사는 것이 부담이 되었다.


마음을 굳게 먹어야만 가능한 먹을 만큼만 사기, 시장 장바구니 사용하기를 자연스럽게 실천하게 된 것이다.

채소와 과일만 취급하는 동네 가게에 가서 한 바구니에 1000원 2000원 하는 과일 채소들을 바구니에서 꺼내 하나씩만 골랐다.

“집에 냉장고가 없어서 이렇게만 사고 싶어요.”

주인아저씨는 별 잡놈을 다 보겠다는 식으로 한번 쓱 쳐다보고는 내 장바구니에 물건들을 담아주었다.


처음에 아저씨는 500원을 비싸게 불렀다.

정량을 파는 건데 내 마음대로 골라냈으니 어쩔 수 없다 싶어 계좌이체로 500원을 더 입금했다.

사기를 당한 거 같이 기분이 좋지는 않았지만 금세 썩어버리는 채소를 쟁여두는 것보다 500원을 더 내고 정량만 사는 게 나았다.


사람이라는 게 참 얄궂다.

처음 보는 이상한 잡놈이었던 나는, 하나씩 덤을 받아오는 놈이 되었다.


햇볕이 내리쬐는 폭염의 더운 날에도, 폭우가 쏟아지는 궂은날에도 먹고살기 위해 자주 가게에 들렀다.

꿋꿋하게 찔끔찔끔 샀고, 장바구니가 없는 날에는 무가 되었든 파가 되었든 그냥 손에 들고 집까지 걸어갔다.

한사코 비닐을 거절하며 제멋대로 골라 사가는 나를 보며 주인아저씨는 '얘는 진짜 냉장고가 없는 불쌍한 애구나. 쯧쯧..' 생각하게 된 것 같았다.


아저씨는 싸게 들어오는 제철 과일이나 못생기고 시들기 직전의 채소들을 하나씩 더주곤 한다.

두 개를 담아주면 냉장고가 없어서 다 못 먹는다고 하니 꼭 하나만 챙겨준다.

가끔은 그도 거절하니 이제는 "줘?" 먼저 묻는다.

500원어치보다 더 많이 챙겨주고 먼발치에서 가게로 오는 나를 발견하면 눈으로 반긴다.


냉장고 없이 살다 보니 덤을 챙겨주는 동네 아저씨와 얄궂은 우정이 생겼다.







+


매일매일 가게에 들러 하루치의 식재료를 확보하는 것이 쉽지는 않았다.

정량을 사서 비슷한 음식을 해 먹어도 종종 남은 식재료는 처치곤란이 되었다.


나는 이제 엄마집에서 가져온 아이스박스에 얼음을 채워 일주일치의 식재료를 보관한다.

냉장고가 많이 보급되지 않은 북한의 김치움처럼.


신선도를 유지해야 하는 종류의 식재료는 얼음과 함께 묶어두고 너무 차가워지면 안 되는 잎야채는 통에 따로 담거나 수건을 두른다. 얼음은 만 하루이상 버티지 못하기 때문에 아이스팩, 생수통을 얼려 매일 교체한다.


욕망을 갈무리하며 살다 보니 저절로 지구를 위하는 작은 일을 하게 된다.


살다 보면 결국 또다시 욕망이 쌓여 그 욕망에 치이게 되겠지만

아직 나의 일주일치 욕망은 10L 아이스박스정도면 충분히 견딜만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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