해변에서 수습한 존재들의 이야기
"여기요! 이쪽에 물고기가 죽어있어요!"
궁평리 해수욕장에서 쓰레기를 줍고 있는데 참여자 한분이 멀리서 소리를 높여 나를 불렀다.
오늘은 여기저기 비명 같은 외침이 많은 날이다.
조금 전에는 웬 우산대와 양말이 엉켜있는 것 같다는 외침에
다가가보니 갈매기의 사체가 백골이 되어 있었다.
“갈매기 사체예요”
내가 말했다.
“갸아악!”
그렇다. 어른이고 남자고 여자고 할 것 없이 사체를 처음 보면 소리를 지르기 마련이다.
(이번 글에는 동물의 사체 사진이 더러 나오니 유의하시기 바랍니다.)
뭐 나라고 오죽했을까.
조그만 바퀴벌레가 하나 나와도 아파트 주민들이 다 튀어나올 정도로 소리소리를 지르며 덜덜 떨었다.
내가 죽던 바퀴벌레가 죽던 이판사판이다며 바퀴벌레 약을 한통 다 들이부어 미이라를 만들고는 그 하나를 치우기까지 4시간이 넘게 걸린 적도 있다.
조금 더 멀리, 높이 뛰는 곱등이는 또 어떻고.
일단 곱등이가 나타나면 약이고 뭐고 비명을 동반한 줄행랑이 급선무다.
곱등이가 출몰한 지역은 범죄현장이라도 된 양 며칠 동안 접근 금지구역으로 지정해 곱등이가 스스로 서식지를 이동할 때까지 덜덜 떨며 기다리곤 했다.
인간과 다른 존재와의 예기치 못한 만남은
누군가에게는 신비함, 누군가에게는 호기심이지만
누군가에게는 감당할 수 없는 두려움이 된다.
나와 다른 존재에 대한 두려움은 누구나 가질 수 있는 원초적인 두려움인 것이다.
그런데 다른 존재의 사체라니.
충분히 무섭고 소름 끼칠 수 있다.
터지는 비명이 자연스럽게 느껴질 정도다.
여기저기 들리는 비명을 뒤로하고 나는 갈매기 사체를 수습했다.
작년과 달리 올해 해변에는 유독 동물들의 사체가 많다.
‘올해 몇 마리의 갈매기 사체를 수습했더라.‘
생각이 많아졌다.
해변에서 발견된 사체는 멸종위기종이 아닌 이상 바다쓰레기로 분류된다.
다른 쓰레기들과 함께 마대자루에 넣어 쓰레기 수거장으로 보내는 것이다.
도시의 떠돌이 동물들도 크게 다르지 않다. 종량제 봉투에 넣어 생활 폐기물로 배출한다.
생명을 가지고 존재로써 생을 살아가는 것.
우리와 별반 다르지 않은 존재임에도 우리는 그들의 죽음을 그저 처리할 대상으로 볼 수밖에 없는 환경에서 살고 있다.
이렇게 보면 존재라는 것은 참 덧없다.
죽음 뒤에 애통해하고 기억해 주는 이가 없다면
인간도 바다의 모래와 하나 되는 이 존재들과 다른 게 무엇일까.
복잡하게 밀려드는 생각을 삼키며 벙쩌 내쪽을 바라보고 있는 분에게 뛰어갔다.
'하다 하다 이제는 물고기의 사체까지 치우는구나.
식탁에서 자주 접하는 생선과 다르지 않을 텐데. 많이 놀라셨나 보네.'
목도하는 환경에 따라 인간이 다르게 지각할 수 있다는 것은 바다에 나와 활동을 하며 몸으로 배웠다.
고등어든 삼치든 우리가 평소에 익숙하게 알고 있었던 존재라도
예기치 못한 곳에서 만난 그의 사체는 일단 걷어내버려야 하는 이질적 대상인 것이다.
그곳이 그들의 생의 터전이었음에도 말이다.
도착해 보니
이미 백골화가 한참 진행된 물에서 살아 움직였던 그 존재는
한눈에 무엇이라 알아보기 쉽지 않았다.
물고기처럼 보였으나 지느러미가 배 아래쪽에 있었고
드러난 살 아래 포유류의 것으로 보이는 단단한 척추가 튀어나와 있었다.
이 존재에서는 비릿한 썩은 냄새가 아닌
사람과 더 가까운
우리의 죽음에 더 가까운
무겁고 어두운 냄새를 풍기고 있었다.
죽음의 자리에 가장 이른 손님, 쇠파리가 주변을 날며 윙윙거렸다.
상괭이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