약속이 있어 오랜만에 가로수길을 찾았다. 불과 몇 년 전만 해도 사람들로 붐비던 거리는 한산했고, 식당과 상점으로 가득했던 건물 사이로 빈 매장이 눈에 띄었다. 짧은 시간 동안 무슨 일이 있었던 걸까. 최근 공실률이 높아졌다는 뉴스를 접하긴 했지만, 서울 한복판의 대표 상권이 이렇게 빠르게 쇠락할 수 있다는 사실은 여전히 놀라웠다.
가로수길뿐 아니라 강남, 이태원처럼 한 때 호황을 누리던 전통적인 상권들 역시 비슷한 어려움에 직면해 있다고 한다. 올해 1분기 기준 공실률이 가로수길 41.6%, 강남 18.9%, 이태원 10.8%에 달한다. 반면 성수동, 을지로, 망원동 같은 지역은 새로운 중심 상권으로 떠오르며 많은 사람들을 끌어모으고 있다.
오프라인 상권은 클릭 한 번으로 옮겨갈 수 있는 온라인 마켓에 비해 락인 효과가 강하다고 여겨져 왔다. 그래서 온라인 업체들이 멤버십이나 부가 서비스로 고객 이탈을 막기 위해 치열하게 경쟁할 때도, 오프라인은 상대적으로 안정적이라는 인식이 있었다. 하지만 이제 상황은 달라졌다. 온라인에서 고객이 손쉽게 다른 플랫폼으로 이동하듯, 오프라인에서도 사람들은 더 이상 특정 지역에 묶이지 않고 자유롭게 움직인다.
“부동산은 첫째도 둘째도 입지”라는 말이 있듯, 전통적으로 상권의 가치를 결정하는 핵심은 입지였다. 오피스 밀집지나 주거 단지와의 거리, 교통 접근성, 그리고 그에 따른 유동인구가 수익성을 좌우했고, 부동산 가격도 이에 연동되어 움직였다.
예전에는 매장 앞을 오가는 사람이 많으면 매출도 자연스럽게 늘어났다. 사람들이 많이 사는 동네나 직장인들이 매일 오가는 길목에 가게를 열면 손님이 많을 수밖에 없었다. 상인들은 같은 상권 안에서 다른 매장 대비 시설이나 서비스 경쟁에만 집중했지, 길을 오가는 사람들이 어느 가게에도 발길을 들이지 않을 가능성은 별로 생각하지 않았다.
그러나 온라인 플랫폼의 성장은 이 공식을 순식간에 무너뜨렸다. 음식은 배달앱으로, 물건은 이커머스로 주문하는 방식이 일상이 되면서 오프라인 매장을 찾는 이유가 ‘상품’에서 ‘경험’으로 바뀌었다. 필요한 대부분은 온라인에서 해결하고, 즐기는 것만 오프라인에서 누리는 현상이 뚜렷해진 것이다.
이제 오프라인 상권의 가치를 좌우하는 것은 더 이상 입지가 아니다. 어떤 콘텐츠로 어떤 경험을 제공하느냐가 매출을 결정한다. 그리고 그 콘텐츠를 만들어내는 핵심 주체는 유명 유튜버, 블로거, 인스타그래머 같은 인플루언서다. 이들의 움직임에 따라 고객은 끊임없이 이동하며, 상권이 흥하기도 쇠락하기도 한다.
작년 10월, 성수동에서 뷰티 크리에이터 레오제이가 선보인 ‘셀렉트스토어’에는 약 3주 동안 4만 6천 명이 넘는 방문객이 몰렸다. 하루 최대 5천 명 이상이 다녀갔고, 방문객 다섯 명 중 한 명이 실제로 화장품을 구매하며 약 18%의 전환율을 기록했다. 올해 5월 더 큰 규모로 열린 세 번째 행사에도 하루 6천 명 이상 고객이 몰리며 연속 흥행에 성공했다.
한편으로는 올해 7월, 여행 유튜버 ‘유난히 오늘’이 여수의 한 백반집을 방문했다가 불친절한 응대를 받은 영상이 퍼지며 논란이 일었다. 해당 식당은 결국 문을 닫고 자필 사과문을 내걸었으며, 여수시는 관내 음식점 5천여 곳에 손님 응대 지침을 내리기까지 했다. 아이러니하게 이 식당은 얼마 전까지만 해도 맛집 유튜버 풍자가 ‘여수 1등 맛집’으로 극찬하면서 손님이 몰려드는 행운을 누렸던 음식점인데, 또 다른 인플루언서의 부정적 경험으로 하루아침에 큰 타격을 입게 되었다.
이처럼 인플루언서는 매장과 상권의 성패를 좌우할 만큼 강력한 영향력을 지닌다. 그들의 경험과 콘텐츠는 팔로워들의 행동과 구매로 이어지고, 온라인 트래픽은 실제 오프라인 유동인구로 전환된다. 방문객은 다시 SNS에 후기를 남기며 이야기를 확산시키고, 이러한 선순환 속에서 새로운 ‘핫플’이 탄생한다. 양질의 콘텐츠가 축적될수록 매장의 수익성과 상권의 가치, 나아가 부동산 가격까지 동반 상승하는 셈이다.
결국 인플루언서가 어디를 방문하고 어떤 경험을 공유하는가에 따라 상권의 운명이 달라진다. 그 영향력이 점점 더 커지고 있기에, 플랫폼은 인플루언서를 적극 발굴·육성하며 자사 생태계 안에 머물게 하기 위해 힘을 쏟는다.
최근 네이버는 ‘피드메이커’ 3기 프로그램을 진행하며 열정과 역량을 갖춘 블로거 1,400명을 모집했다. 모집 분야는 패션, 여행, 뷰티, 스포츠, 리빙, 엔터테인먼트, 맛집, 테크, 지식, 경제, 아웃도어 등 총 12개로, 우리가 일상적으로 소비하는 거의 모든 영역을 아우른다. 네이버는 이 프로그램을 통해 잠재력 있는 창작자를 체계적으로 액셀러레이팅하여 인플루언서로 육성하고, 자사 생태계 안에서 활동하는 강력한 군단으로 활용하려 한다.
대규모 인플루언서 집단을 보유한 플랫폼은 막강한 힘을 가진다. 특정 식당이나 미용실, 노래방, 팝업스토어는 물론 한 지역 상권 전체를 띄우거나 몰락시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인플루언서 한 명의 콘텐츠가 수천, 수만 명의 유동인구를 끌어들이고, 이들이 또다시 콘텐츠를 생산하며 방문객을 불러들이는 과정에서 플랫폼의 영향력은 기하급수적으로 커진다. 인플루언서가 촉발하고 팔로워가 확장하는 이 '콘텐츠 생산 순환 장치'는 재무제표에 잡히지 않는 무형자산이지만, 실제로는 기업의 수익 창출을 좌우하는 핵심 자원이 된다.
조너선 해스컬은 <자본 없는 자본주의>에서 이러한 무형자산의 네트워크 효과를 플랫폼 권력의 원천으로 지적하며 다음과 같이 말했다.
현재의 디지털 기술 물결에서 진정으로 네트워크 효과가 큰 것은 실은 무형자산이다. 우버의 운전기사들과 에어비앤비의 집주인들과 인스타그램 사용자들의 네트워크 또는 HTML과 수많은 웹 표준의 위력은 유형자산이 아닌 무형자산에 기초하고 있다.
네트워크 효과를 발휘하는 무형자산은 기계나 도구처럼 쓸수록 가치가 줄어드는 유형자산과 달리, 사용할수록 가치가 커지고 확장된다. 이러한 무형자산은 플랫폼의 실질적 영향력으로 전환되고, 광고·마케팅 등 다양한 부가 사업의 수단으로 활용된다. 그 결과 플랫폼은 오프라인 상권의 ‘목줄’을 쥐게 된다. 매장 주인들은 플랫폼이 제공하는 긍정적 콘텐츠에 의존하거나, 반대로 부정적 콘텐츠(또는 외면)의 타격을 두려워할 수밖에 없다. 인플루언서를 레버리지 삼은 플랫폼이 부동산 가치를 결정하는 새로운 권력으로 자리 잡은 것이다.
쇠락하는 상권이나 지역 사람들은 보통 정부나 지자체에 도움을 요청한다. “새로운 도로를 놓아달라”, “철도역이나 공항을 지어달라”, “주변 시설을 정비해달라”는 식이다. 물리적 인프라의 개선이 상권 회복과 부동산 가치 상승의 열쇠라고 믿어왔기 때문이다. 물론 이런 요인도 여전히 중요하지만, 오늘날 상권과 부동산 가치에 더 큰 영향을 미치는 것은 인플루언서와 그들이 활동하는 플랫폼 생태계다.
문제는 정부 정책은 민주적 통제 아래 공개적으로 결정되지만, 플랫폼의 의사결정은 그렇지 않다는 점이다. 플랫폼의 정책이 어떤 방식으로 정해지고 앞으로 어떤 방향성을 가질지는, 정작 그 영향을 직접 받는 사람들조차 알기 어려운 사항이다. 게다가 정부가 공공적 외부 효과까지 고려하는 것과 달리, 플랫폼은 자사의 수익에만 집중하기 쉽다.
따라서 앞으로 쇠락한 상권과 지역을 되살리기 위해서는 정부의 정책뿐 아니라 플랫폼의 영향력도 함께 고려해야 한다. 공공 정책을 설계·시행할 때 플랫폼과의 협업을 적극적으로 모색하고, 그들이 만들어내는 콘텐츠와 네트워크의 힘을 어떻게 활용할 수 있을지 고민해야 한다.
개인 차원에서도 플랫폼과 인플루언서의 영향력을 어떻게 자신의 삶과 자산 관리, 영업 활동에 유리하게 적용할지 끊임없이 탐색해야 한다. 이미 플랫폼이 부동산 가치를 좌우하는 핵심 주체로 자리잡은 만큼, 그 힘을 외면하거나 피하기보다는 현명하게 활용하는 전략을 세우는 편이 더 나을 것이다.